노동자 블루스와 게바라와 그리고...
    2006년 12월 30일 04: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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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노래: 가토 토키코加藤登紀子 – ‘가끔은 옛 이야기를時には昔の話を’

   
▲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사운드트랙

2006년은 헝가리혁명 50주년의 해였다. 지난 1998년, 68혁명 30주년이 지구적으로 시끌벅적하게 치러진 것에 비하면 50이라는 숫자의 남다른 의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당사자인 헝가리가 봉기에 가까운 반정부 시위로 과거를 기념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헝가리혁명은 동유럽 바깥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스탈린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헝가리의 인민들에게 연대의 인사가 아니라 탱크를 보내는 소련을 보면서 스탈린주의와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좌익들 중에 일본인인 구로다 간이치도 있었다.

그는 스탈린주의란 무엇인가,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당시 일본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던 트로츠키의 사상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일본의 첫 번째 트로츠키주의자가 됐다.

비록 일본 트로츠키주의자의 절반은 그를 죽이고 싶어 할 만큼 미워했지만 어쨌든 1957년 이후 그는 일본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그가 2006년 6월 26일 사망했다. 그의 부음을 접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가 가토 토키코 여사의 ‘가끔은 옛 이야기를’이었다.

이 곡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92)”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듯이 이 곡은 우리로 치면 386세대에 해당하는 일본 ‘전공투세대’를 그린 노래다.

지금은 일본의 국민가수 대열에 들어선 가토 도키코는 도쿄대학 재학 중인 1965년 가수로 데뷔해 화제가 됐었다. 60년대말 도쿄대 학내집회에 참가한 그의 모습이 현장의 기자들에 의해 발견돼 대서특필되면서 또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 형무소 면회실에서 결혼한 가토 도키코와 후지모토 토시오 부부, 사진은 출소 후 다시 올린 결혼식 모습이다.

보도를 보고 도지사대학 전학련의 후지모토 토시오 의장이 집회에서 노래를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이것이 계기가 돼서 사랑에 빠졌고 둘은 후지모토가 방위청 습격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1972년 옥중결혼을 해 또 화제가 됐었다.

‘가끔은 옛 이야기를’은 이렇게 시작한다. “언제나 들르던 단골카페 / 마로니에가 창밖으로 보이던 /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보냈지” 남의 나라 노래 같지 않은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흔들리는 시대의 열기에 휩싸여 / 온몸으로 순간을 만끽했지 / 그랬었지…”

무언가 아련한 그림이 떠오른다면 보다 선명하게 그려보자. “모두들 갈 곳이 없었기에 (…)  / 작은 하숙방에 몇 명이나 밀어닥쳐서는 / 아침까지 떠들다 잠이 들곤했지 / 폭풍 치는 매일이 불타고 있었기에 / 숨이 차오르도록 달렸었지 / 그랬었지”

너무 후일담스럽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게 87년 당시 전학련/공투 세대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운동이 막을 내렸다고 사람들까지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는 / 친구들도 많이 있지만 / 그 날의 모든 것이 헛되다고는 / 아무도 말할 수 없어 / 지금도 그때처럼 /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 계속 달리고 있을 거야 / 어딘가에서…”

2007년은 유월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들의 항쟁은 지금도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리며 달리고 있을까?

*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덕분에 블로그 검색을 통해 쉽게 들을 수 있다. 한번 시도해보자.

두 번째 노래: 밥 딜런Bob Dylan – “노동자의 블루스 2번Workingman’s Blues #2”

   
▲ 밥 딜런의 앨범 "모던 타임스Modern Times" 커버
 

음반시장은 장기불황을 넘어 문닫기 일보직전이지만 그래도 2006년 한해 동안 참 많은 음반들이 발표됐다. 해외의 다양한 음악전문지들은 언제나처럼 연말을 맞아 올 한해를 빛낸 앨범을 선정했다.

잡지마다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음반들이 이름을 올렸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본 소수의 앨범중의 하나가 밥 딜런의 신작 “모던 타임스Modern Times”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꽤 긴 침체기를 거쳤던 밥 딜런은 희한하게도 인생의 말년에 접어든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전성기 때 보다 더 뛰어난 음악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모던 타임스”도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곡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노동자의 블루스 2번”이다. 확실히 밥 딜런은 시대의 분위기를 기록하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예술가다.

“저녁 안개가 도시에 드리우면
별빛은 강어귀에 걸리우고
프롤레타리아의 구매력은 급락하는데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기만 하네(…)
저임금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군
외국과 경쟁하려면 말이야 (…)
어떤 이들은 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아
일한다는 게 뭔지도 모르지”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전 세계 노동계급의 삶을 동질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노래: 구동독국가 – “폐허를 딛고 일어서자Auferstanden aus Ruinen”

   
▲ 동독국가를 작곡한 한스 아이슬러의 다른 작품 ‘독일교향곡’과 ‘반파시스트 칸타타’의 합본CD

2006년 가장 화제가 됐던 노래는 뭐니 뭐니 해도 ‘애국가’였다. 처음엔 월드컵 응원가로 선정되면서 과연 국가를 응원가로 쓰는 것이 타당한가 여부에서 나중에는 월드컵 응원의 상업성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그 와중에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성장했던 윤도현밴드의 행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애국가의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애국가의 자격 논란이 벌어졌다. 이는 국가 교체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었다. ‘애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국가’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고 따분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맥락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음악이라는 면만 놓고 봤을 때, 지구상에 존재했던 무수한 애국가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지금은 사라진 나라 동독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1949년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한 동독 국가의 이름은 “폐허를 딛고 일어서자”다. 동독이라는 나라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만 귀를 기울여보자. 파시즘이 파괴한 독일 땅위에서 재건과 평화의 희망을 그리는 민중들의 숨결이 선율 위에 녹아있다.

특히 2절의 “우리가 형제처럼 단결할 때 민중의 적은 패배한다 / 평화의 횃불을 밝혀라 / 그래서 다시는 그 어떤 어머니도 자식의 주검 앞에서 통곡케 하지 말자”는 노랫말은 지금도 인류가 명심해야 할 구절이다.

* 노래의 독일어 원곡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네 번째 노래: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 “빨치산The Partisan”

   
▲ 레너드 코헨의 앨범 "방으로부터 전해진 노래Songs from a Room"의 커버

2006년을 되돌아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라크의 전쟁이다. 미국의 점령은 계속되고 있고 한국군도 여전히 점령군의 일원으로 머물고 있다. 인터넷에는 점령에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의 소식(Iraqi Resistance Report)이 매일 보고되고 있다.

후세인의 사형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들려오지만 후세인의 체포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가져오지 못했듯이, 그의 처형이 이라크에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백악관의 주인만 빼고.

‘빨치산’은 1943년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만들어서 부른 노래다. 레지스탕스 운동이 얼마나 대중적이었는지는 파리가 해방된 후 이 노래를 프랑스의 새 국가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벌어진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레너드 코헨의 녹음은 1969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방으로부터 전해진 노래Songs from a Room”에 실려 있다. 영어가사와 프랑스어가사를 번갈아 가며 부르는데 영어가사는 영화 “사랑과 영혼”으로 유명해진 팝송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의 노랫말을 지은 하이 자렛이 만들었다.

고통 속에서 저항을 이어나가는 이라크인들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

* 노래의 프랑스어 원곡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다섯 번째 노래: 솔레다드 브라보Soledad Bravo – ‘영원하라 사령관동지Hasta Siempre,
Commandante’

   
▲ 솔레다드 브라보의 앨범 "솔레다드Soledad"의 커버

2006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인물 중 후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만큼 찬반이 극명하게 나뉜 사람도 없다. 지금 혁명이 진행 중인 땅 베네수엘라 출신 음악인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솔레다드 브라보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 불기 시작한 월드뮤직 붐을 타고 그의 앨범 다수가 국내 발매되거나 수입되어 우리에게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감미로운 라틴음악 가수로 소개된 그의 음악 이면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유서 깊은 저항의 전통이 숨 쉬고 있다.

1968년 데뷔 무렵부터 라틴아메리카의 민중가요를 앨범에 포함시켰던 브라보는 1973년 쿠바의 노래만을 모은 앨범 “새로운 경향의 쿠바 노래Canciones De La Nueva Trova Cubana”를 발표하기도 했다.

브라보가 부른 ‘영원하라 사령관동지’는 1969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솔레다드Soledad”에 처음 수록됐다. 이 앨범은 칠레와 쿠바, 베네수엘라의 저항가요를 모아 만든 것이다. 체 게베라에게 바치는 노래 ‘영원하라 사령관동지’는 워낙 여러 사람이 녹음했는데, 유독 브라보의 노래가 원작자인 카를로스 푸에블라의 연주보다 유명해진 이유는 1997년 프랑스에 몰아닥친 체 게바라 사망 30주년 열풍을 타고 이 오래된 녹음이 당시 프랑스 차트 상위에 오르는 등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했기 때문이다.

2007년은 체 게바라 사망 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미 벌써부터 지구촌 각지에서는 ‘체 게바라’ 마케팅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가가 얻은 것은 영생이요, 잃은 것은 저작권료라는 말이 있을 만큼 체 게바라는 혁명은 지워진 채 이미지만이 유령처럼 남아 주기적인 유행을 타고 있다.

우리가 베네수엘라 혁명을 주목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차베스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면 얻는 것은 영웅이요, 잃는 것은 혁명 그 자체 일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길은 새해에도 우리가 여전히 눈여겨봐야 할 여정임에 틀림없다. 어느 게릴라의 사망 몇 주년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솔레다드 브라보는 초기에는 차베스의 지지자였으나 지금은 반대진영의 선두에 서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과거에 남긴 녹음들까지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 * *

‘반역의 레코드’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전 세계 투쟁하는 인민들의 더 많은 노래를 소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진 김에 앞으로 한 달 동안은 북유럽 특집으로 꾸미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평등과 평화의 깃발 아래서 연대하는 2007년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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