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 법안 '역풍' 벌써 몰려온다
    By tathata
        2006년 12월 29일 06: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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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약직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비정규직법안이 내년 7월 1일부터 발효되는 가운데,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사업장에서 기존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어 대량해고 사태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또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더라도 정규직과 다른 별도의 직군으로 관리하려는 사업장도 나타나고 있어 정규직 내의 차별을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노동계 일각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은행이 최근 비정규직 3,100명을 별도의 직군인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사례처럼, 상시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완전한’ 정규직이 아닌 ‘무늬만 정규직’의 경우도 늘어나고 있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비정규양산법’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통과된 이 법안에 대해 정부와 보수언론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다”고 선전했지만, 법 시행 이전부터 비정규법안의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 사례 1. 법원, 계약직 직원 해고 용역직 전환

       
     ▲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비정규직법안 시행관련 지침.
     

    법원행정처는 지난 22일 ‘비정규직 보호법률 시행 관련 당부의 말씀’이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 문건은 “각급법원 청사방호업무를 위하여 2006. 12. 31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민간경비요원(직접고용계약)에 대한 계약은 2006. 12. 31자로 종료됨을 알려드린다”고 밝혀, 직접고용 비정규직 경비요원의 계약을 종료할 것을 지시했다.

    또 “2007.7.1부터 시행하는 ‘비정규직 보호법률’과 관련하여 향후 법원 내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경비(검색)업무 종사 기간제 근로자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하고, 운전업무 종사 기간제 근로자는 용역근로자로의 전환을 추진하며, 파견근로자는 파견기간 종료시 재계약 억제 또는 용역근로자로의 전환을 추진하도록 방침을 내렸다.

    법원의 이같은 조치로 인해 전국의 법원에서 경호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경비원들은 대부분 계약해지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 서울지역 법원의 민간 경비원 5명은 지난해 7월부터 일을 시작해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해왔지만, 재계약 시점에 해고를 당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들을 내년까지 고용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다. 

    # 사례 2. 제주대 병원, 정규직 내 별도 직군

    제주대병원은 12월 초 간호사, 진료지원부서 직원 등 비정규직 73명을 별도의 직군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기간제 계약을 하여 업무능력을 평가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재계약을 통해 기한을 1년 연장한다. 2년 이상이 되면 이들은 ‘무기계약직’이 되는데, 이 때에 이들은 정규직과는 다른 임금체계를 갖는 별도의 직군으로 분류된다.

    무기계약직이 되면 정년은 보장받게 되지만, 근속년수가 9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더 이상 기본급은 인상되지 않아 장기근속을 하더라도 임금이 인상효과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수당 또한 정규직과 달리 차별적으로 지급된다.

    제주대병원은 우리은행 경우와 달리,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병원은 이들을 ‘고용직원’으로 부르는 등 차별화하고 있어 노조의 단체협약 적용마저도 불투명한 상태여서 정규직내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유남미 의료연대노조 정책국장은 “무기계약직제가 도입되면 병원은 앞으로 신규채용 인력을 계약직 직원을 고용한 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실제 정규직은 점차 줄여나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례3. 강원과학고, 상시직에서 2년 계약직으로

    강원과학고등학교는 최근 상시직으로 채용하던 행정보조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기한의 기간제로 전환시켰으며, 광명시청 또한 많게는 6년 이상 근속한 상시일용직 광고물 단속원을 2년 단위 계약직으로 재고용했다.

    상시직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무기계약의 형태로 고용되어 비교적 고용안정성을 보장받아 왔다. 하지만 비정규법안이 시행되면 강원과학고등학교와 광명시청은 상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므로, 이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서 2년 계약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들 사업장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2년 계약직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계약직 노동자들은 2년 후가 되면 계약해지를 당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는 셈이다.  

    사례4. 기계연구원, 일단 재계약을 유보

    기계연구원은 12월 초 내부 공문을 통해 기간제로 고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재계약을 금지하고, 파견노동자 또한 새로이 채용하지 말 것을 내부지침으로 정했다. 비정규법안이 시행되면 기계연구원이 고용한 기간제 노동자 또한 정규직화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데,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통과된 비정규법안은 단서조항으로 “전문적 지식 · 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에 대해서는 2년 이상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하더라도 정규직으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했는데, 기계연구원은 시행령이 정해지는 바에 따라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1월 30일 비정규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분노하며 국회로의 진입을 시도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이처럼 통과된 비정규직 법안은 법원, 학교 비정규직 교사, 지방자치단체 상시일용직,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 연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량 계약해지의 바람으로 몰아넣고 있다. 또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정규직 내의 이중적 차별장치를 설치하여 정규직과 동등한 처우를 애초부터 배제하고 있다.

    노조 뾰족한 대응책 못 찾아 

    비정규직법안의 ‘역풍’이 서서히 몰아치고 있지만, 노동조합으로서는 뾰족한 대응책을 찾기가 쉽지 않아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만성적인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조직률도 2%대에 머무르고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체적인 대응수단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규직 노조들이 적극적으로 비정규직 차별처우 개선과 정규직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의료연대노조 제주대병원지부는 임금, 단체협상에서 정규직 내의 차별을 공고히 하는 무기계약직 도입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노조 이광호 정책국장은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철폐하고, 상시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단체협약으로 신속하게 보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등 노조 내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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