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리병원 허용 대법 판결
    시민사회 “분노와 허탈감”
    "정부, 영리병원 설립 명백한 책임”
        2022년 01월 18일 03: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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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제주도의 개설 허가 취소가 위법하다는 2심의 판결을 확정했다. 시민사회계는 대법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 설립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심리조차 하지 않고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영리병원 설립에 협조한 문재인 정부에도 “명백한 책임이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법원 특별1부는 지난 13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외국 의료기관의 개설 허가를 취소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낸 소송과 관련해 제주도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은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제주도의 상고에 충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녹지제주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앞서 녹지그룹은 2017년 8월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부지 내에 녹지병원 건물을 완공하는 국내 첫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는 도민을 대상으로 공론화 조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공론화 조사 결과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더 높게 나왔으나, 원희룡 전 지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외국인 진료만 허용한다는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의 개원을 허가했다.

    녹지병원은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에 반발하며 개원을 거부했다. 제주도는 개설 허가가 나온 이후 3개월 이내에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 취소가 가능하다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2019년 4월 17일 청문 절차를 거쳐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이에 녹지그룹 측은 ‘내국인의 진료를 제한다는 위법한 조건 붙였다’며 같은 해 5월 20일에 개설 허가 취소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20년 10월 20일 열린 1심은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녹지 측이) 개설 허가 조건에 위법이 있음을 주장하며 별도 소송을 제기했더라도 개설 허가가 이뤄졌기 때문에 의료법에 따라 3개월 이내에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며 “하지만 업무 시작을 거부했기 때문에 개설 허가에 위법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허가 취소 사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은 “제주도의 개설허가 취소 처분은 위법하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와 허가 지연으로 인해 개원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3개월 이내에 개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개원 지연의 책임이 녹지병원 측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제주도는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 역시 녹지 측의 승소 판단을 내렸다.

    국내 첫 영립병원 개설을 막아온 시민사회계는 녹지병원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영리병원에 우호적인 판단이 나오기까지 정부와 제주도의 정치적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원희룡, 대국민 사과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과 참여연대는 18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내 첫 영리병원의 존속 여부가 달린 중요한 사안임에도 대법원은 심리조차 하지 않고 녹지그룹의 손을 들어줬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영리병원 설립에 힘을 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 전 국민이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고 규탄했다.

    우선 원희룡 전 지사가 공식적으로 사과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오늘의 사태는 3개월간의 공론조사에서 제주도민이 내린 ‘영리병원 불허’ 권고를 무시하고 허가한 것이 낳은 결과”라며 “이번 일의 가장 큰 정치적, 실질적 책임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에 있다, 당장 이 사태에 전 국민 앞에 사과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도가 영리병원 설립을 강행 추진한 데엔 문재인 정부의 협조가 깔려 있다는 주장은 녹지병원 조건부 허가와 취소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나온 주장이다.

    영리병원 반대는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17년 영리병원을 내국인이 이용해도 건강보험제도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사실상 영리병원 설립에 우호적인 입장을 냈고, 이듬해엔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에 대해 “의료법상 문제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사실상 원 전 지사의 녹지병원 설립 추진에 힘을 실어준 셈이었다. 이에 앞서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JDC는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시행자 자격으로 공론조사에서 녹지 측을 대리하는 토론자로 참석하기까지 했다.

    이 단체들은 “이번 대법원의 결정도 영리병원 반대라는 정권의 단호한 의지가 있었다면 쉽사리 내려질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공공의료를 무시하고 의료영리화를 추진했다. 이런 사실이 판결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 없다”고 질타했다.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개설 허가 취소와 관련한 법원 판단은 마무리됐지만 녹지 측이 함께 제기했던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 허가에 대한 법적 판단은 남아있다.

    시민사회계는 “남은 조건부 허가 소송에서는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차기 정부는 영리병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현행 영리병원 허용조항을 삭제하는 법제도적 절차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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