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글픈 성년과 정치적 미성년"
        2006년 12월 29일 04: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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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은 문학적 취향이 남다른 것 같다. 한 의원은 지난 3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런 서정적인 문구를 담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글의 제목은 ‘봄의 유혹’.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이다. (중략)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의 자유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면 어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겠는가"

    ‘꽃’, ‘향기’, ‘순리’, ‘섭리’, ‘아름다움’, ‘본능’, ‘자유’를 노래하는 한 의원의 입에 고상하지 못한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은 ‘미싱’을 들이댔다. 얼마 전 여성주의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언니네’는 한 의원을 올해의 ‘꿰매고 싶은 입’ 1위인 ‘미싱상’에 등재시켰다. 최연희 의원의 동아일보 여기자 성추행을 옹호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의원은 29일 당 홈페이지에 ‘아버지의 그늘 – 대통령님 욕먹지 마세요’란 글을 올렸다. 신경림 시인의 시 ‘아버지의 그늘’을 인용하며 시작되는 이 글에서 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을 "외로우신 분"으로 규정했다.

    한 의원은 노대통령에 대해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비주류에서 주류가 되었지만,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갔고 대통령직에 정을 붙이지 못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언론계, 법조계, 보수단체 등의 득세로 기를 펼 수 없으니 마음을 터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는 인터넷뿐일 것"이라며 "항상 인터넷을 통해 편지를 쓰고, 그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소일한다"고 했다.

    한 의원은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며 통곡에 가까운 호소를 한다. 뜬금없이 한나라당에게 연정을 하자고 제안하고, 대통령 못해먹겠다며 투정을 부린다…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을 사용한다…모든 일이 잘 되고 있는데 매사에 발목을 잡는 야당이 문제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언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의 재창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노대통령을 묘사한 뒤 "그런 대통령이 밉다"고 했다.

    또 "각종 행사장에 나갈 때마다 주민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지역행사에 참여하기가 두려울 때도 많다"며 "동네북으로 전락한 대통령이 창피하다"고 했다.

    한 의원은 "처음엔 나도 ‘우리 대통령 그런 사람 아니다. 대통령이 말실수 한 것 빼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는 것이냐? 깨끗한 정치를 이루어 냈고, 권력기관을 제자리에 갖다놓았으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일정 수준의 성과를 올린 측면이 있지 않은가?’라며 설득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돌아온 것은 눈덩이처럼 커진 불신과 증오뿐이었다"며 "결국 모든 화살은 대통령과 우리당에게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발 욕먹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마시고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 내십시오" "마음에 거슬리는 말 들어도 다 내 잘못이다 하십시오"라고 노대통령에 당부했다. 한 의원은 "대통령은 얼마나 외로울까? 난 대통령의 외로움을 잘 모른다. 그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은 더욱 모른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대통령의 그늘에 있다"고 글을 맺었다.

    한 의원이 도입부에 인용한 신경림 시인의 ‘아버지의 그늘’ 끝막음은 이렇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 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한 의원의 글은 이를테면 ‘내가 본 노대통령’이다. 반면 신경림의 시는 ‘나를 통해 본 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통해 본 나’이다. 신경림의 화자는 어느덧 서글픈 성년이 되어버렸는데, 한 의원의 화자는 여전히 정치적인 미성년자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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