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양비론에 돌 던질 사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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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9일 01: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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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좌파의 부흥을 꿈꾸지만 가끔은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한다. 지역에 있으니, 당연히 당원들과 많이 접하게 된다. 북핵문제가 터졌을 때, 소위 일심회 사건이 터졌을 때, 논쟁은 극에 달한다.

    어느 때는 공식회의 자리에서 논쟁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술자리를 겸해서 토론을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자주계열의 당원들과 만남을 가지게 되면, 다른 쪽으로부터 “왜 위원장은 엔엘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 “정경섭은 엔엘이랑 너무 친해.”

    난, 자주파의 활동방식, 그리고 사상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대놓고 얘기할 때도 많다.

    “아니, 왜 저번에 있지. 몇년 전 우리나라에서 아시안 게임 할 때, 비오는 날 북한 응원단이 와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김대중이랑 국방위원장이랑 악수하는 현수막보고, 버스에서 내려서 ‘장군님이 비 맞고 계신다’고 현수막 걷으면서 울 때 말이야, 그게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난 정말 끔찍했어. 훌륭한 지도자라면, 자국의 인민이 그런 사고(思考)를 하게 만들면 안되는거 아냐. 그리고 왜 아이들까지 그렇게 지도자에 충성하게 만들어. 아무 문제의식 없어. 비판적 성찰, 이게 좀 필요한 거 아냐.” 이러다 격해지기도 한다.

    “수령론, 난 잘 모르니까. 수령론 좋다 이거야. 그런데 3, 4, 5대 세습해도 된다고. 이거 미치겠네. 우리가 통일된 다음에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어떤 분은 국방위원장이 선거에 나와야 한다는 말하기도 한다) 그래? 그런 생각이야 말로, 통일을 가로 막는 거 아냐. 그거 남쪽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런 체제에서 남쪽 사람들이 퍽이나 통일하자고 하겠다.”

    결국 양쪽에게 다 비판을 받는다. 얘기를 끝낸 자주파는 자주파대로, 내가 자주파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마땅한 좌파는 좌파대로.

    색깔이 없는 정치인은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반엔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앞세우고 지지를 획득하는 건, 가장 고민 없는 방법이자 손쉬운 일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과 그에 모순되지 않는 행동을 통해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해야 하다.

    또한 비전과 철학을 언제든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뜨거운 여름, 하중근 열사 투쟁 때, 썰렁한 서울의 연대 모습을 수시로 목격했다. 집회 참석 자체만으로도 진보가 되는 때였다. 비정규직개악안이 통과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그 많은 좌파는 다 어디로 갔나.

    <레디앙>에 실린 영국노동당 당원의 대거 탈당을 기사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현재 민주노동당의 상황이 교차 편집 됐다. 요즘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만나면, 입당하는 사람보다 당을 박차고 나가는 당원의 수가 더 많다고 걱정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송년 인사겸, 송년회 참석 독려도 할 겸, 당원들에게 전화를 걸면 탈당하겠다는 당원이 나온다. 또한 탈당하겠다는 전화가 먼저 온기도 한다. 당비 영수증 발급을 해달라고 전화를 한 김에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전 방위적인 탈당의사 표시.

    물론 그렇다고 수십명씩 탈당의사를 표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처음 접하기에 당혹스럽다. 비록 탈당을 하지는 않지만, 당에 엄청난 불만을 표시하며 그야말로 억지로 눌러 있는 당원도 많다. 이중에는 당이 갈라서기만을 기다리는 당원들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과거 학생운동에서 비껴나 있는 당원들의 경우, 공히 불만이다.

    난, 자주파에 대해 거는 기대가 높지 않기에 그들에 대한 비판은 생략했다. 문제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좌파다. 속칭 자주파가 당내 다수를 점했고, 그에 대한 활동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당원들이 폭발 직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당이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에는 좌파의 무능도 간과할 수 없다. 좌파가 유능했다면, 이렇게까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난 좌파가 현 상황 속에서 어떤 비전을 제시했는지 궁금하다. 자주파가 다수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역할만 자처했던 건 아닌가.

    유능한 좌파라면, 그래도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당원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참여는 없이, 말만 많은 것 아닌가. 그것도 공론의 장 바깥에서.

    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내게도 책임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진보의 가치를 지역 정치활동을 통해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해 냈는가. 나, 역시 할 말이 없다.

    예전에도 당이 위기라는 말은 있었다. 그때에 난, 활동가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당은 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당원이 줄어든 적이 창당 이래 한번도 없었어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아직 위기는 아니죠. 입당자보다 탈당자가 많아지게 되면, 그땐 정말 긴장해야겠죠.” 그런데 ‘그때’가 왔다. 생각보다 훨씬 일찍. 난 이제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 이 글을 쓴 필자는 민주노동당 마포지역위원회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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