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그들은 극단으로 달려갔나?
    이슬람주의의 극단화, 그 배경과 원인
    [책소개] 『이슬람주의. 와하비즘에서 탈레반까지』(양경규(지은이)/ 벽너머)
        2022년 01월 15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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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11 사건 이후 지난 20년간 인류사회는 테러라는 공포를 일상으로 달고 살았다. 그것이 배고픔에 대한 저항이건, 빼앗긴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건, 영토를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이건 아랑곳없이 서구의 이익과 미국에 위협이 되는 모든 무장투쟁에 테러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대테러 전쟁이란 이름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리비아, 시리아, 체첸, 소말리아, 수단 등지에서는 전쟁이 벌어졌고, 팔레스타인의 합법적인 정치 조직인 하마스나 레바논의 실질적 집권 조직인 헤즈볼라, 아프가니스탄의 국정운영 주체인 탈레반이나 이집트 최초의 민선정부였던 무슬림형제단조차도 알 카에다나 ISIL과 같은 테러 조직으로 간주하면서 무슬림 민중들의 원초적 권리를 내동댕이쳤다. 무엇보다 이러한 테러와 과격 투쟁의 배후에는 예외 없이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서구는 끔찍한 테러 결과에 집착해 이를 궤멸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지만 테러의 근원적 발생 원인과 역사성, 그들의 과오에는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한 예로 9·11 테러로 인류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알카에다는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인도양 진출을 막기 위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급성장한 테러조직이었다. 미국의 군사 지원과 사우디 왕정의 든든한 재정 후원으로 소련의 남하를 막아 걸프해 석유라는 미국의 핵심 이익을 지켰지만, 적대관계로 돌아서면서 미국에 부메랑이 된 것이다.

    ISIL라는 조직도 따지고 보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잘못된 이라크 전쟁이 배태한 악의 씨앗이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몰락한 사담 후세인 잔당이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를 만들었는데 이들이 ISIL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격한 이슬람주의나 테러의 원인이나 배경에는 무관심한 채 유대계 중심의 주류언론들과 헐리우드가 양산해 내는 이슬람 악마화의 늪에 빠지면서 우리사회도 “무슬림 난민=테러=사회적 위해 세력”이라는 이슬람포비아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단비 같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무분별한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담론을 비판적 시각에서 수정하고, 촘촘하고 논리적인 자료분석과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이슬람 세계의 끝나지 않는 전쟁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슬람 과격 운동의 근대적 뿌리가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과 극단적 이슬람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의 실체, YMCA같은 풀뿌리 시민사회 조직 성격이었던 무슬림형제단이 과격화 되는 시대적 상황과 사상적 스승역할을 한 하산 알 반나와 사이드 쿠틉의 종교투쟁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의 패배와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전격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촉발된 이슬람 세계의 좌절과 충격이 1979년을 전후해서 세계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배경과 과정을 숨가쁘게 묘사하고 있다.

    1979년 2월에 이란에서 팔레비 왕정을 뒤엎는 아래로부터의 위대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호메이니 신정정권이 취한 강력한 반미주의는 중동에서의 기존 구도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가 이슬람주의자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되고, 11월 4일에는 이란의 미국대사관을 점거하여 대사와 직원들을 무려 444일간이나 억류하면서 미국에게 견딜 수 없는 충격괴 치욕을 안겨주었다. 그해 11월 20일에는 이란 혁명 지지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 최고의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사원을 점령하고 성지 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이슬람 사회의 분열은 물론 사우디와 이란이 극악한 관계로 돌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주재 미 대사관의 점거와 12월 25일에 시작되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르기까지 1979년을 이슬람주의에 입각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 격동의 시작으로 본 저자의 분석도 탁월하다.

    이 책은 이슬람주의의 전개과정과 강대국들의 침략전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실들을 담담하면서도 유려한 필체로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을 뿐만 이니라, 이슬람주의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저자는 정치적으로는 식민지화, 경제적인 착취, 또 그로 인한 도덕적 피폐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시작된 이슬람주의의 흐름과 급진화 과정에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유린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미국이 지금까지 행한 것과 같은 일방주의, 패권주의, 제국주의적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혐오와 적대로 무장한 이슬람 근본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중동과 이슬람권 문제는 국제법, 인권, 자유, 평등, 가치 지향의 문제가 아니라 냉엄한 힘의 강약 논리 속에서 강자의 양보란 허울 좋은 명분에 약자가 수긍해야 하는 현실만 남아 있다. 그들의 자존심 손상을 최소화하고 물러날 명문을 만들어 주며, 먹고사는 현실적 어려움에 화답하는 방식이 최적이다. 슬픈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진행형이다. 역사를 절절히 기억하는 집단과 획득한 현실을 포기하지 못하는 집단과의 대결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슬람주의의 급진화를 줄이기 위한 이 책은 결론은 명료하다.

    “중동지역 국가들이 제국주의 지배에서 기인한 폐해들을 극복하기 위해 줄기차게 시도했던 세속주의 근대화는 독재와 인권 유린, 경제적 불평등, 서방에 의한 경제적 종속으로 실패했다. 그것이 이슬람주의가 극단적 경향으로 변화되는 토양이 되었다. 결국, 이슬람주의의 근본주의적 흐름의 확산을 막는 것은 종교적 문제가 아닌 비종교적 삶의 문제, 사회경제적 정치적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이다… 다자주의와 선린우호를 통한 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함과 동시에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의 성찰도 필요할 것이다… 모든 종교인들이 각각의 종교가 가지는 근본주의적 성향에 대해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성서든 쿠란이든 그것이 갖는 문자적 의미와 역사적 해석 간의 소통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주의의 등장과 전개과정에 대한 근대사의 역동적인 모습들을 이처럼 고뇌하면서 판에 박힌 관점에서 벗어나 적확하게 그려낸 국내 서적을 만나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제시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전망하고 인류사회가 가져야 할 해법에도 우리 모두 한번쯤 진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추천사 :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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