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왜 좌파가 되기로 했을까?
    [책소개]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네이선 로빈슨/ 동녘)
        2022년 01월 08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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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가난한 세대, 밀레니얼!
    1988년생 밀레니얼 청년이 쓴 사회주의 선언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으며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버니 샌더스가 급부상한 이후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사회주의 붐’이 일고 있다. 과거 ‘선한 미국 자본주의’와 ‘악한 소비에트 사회주의’ 구도로 극심히 대립하던 미국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변화다. 대체 무엇이 젊은이들을 사회주의에 열광하게 한 것일까?

    저자 네이선 로빈슨은 평범한 1988년생 밀레니얼 세대 청년이다. 2015년, 학자금 대출이 15만 달러가 있는 스물여섯 살 사회학과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그는 좌파주의에 대한 잡지 《커런트어페어스》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가 ‘사회주의자 같은 것’이 되었는지, 왜 청년들이 점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등을 돌리고 있는지를 유쾌하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밀레니얼 세대의 불만은 2008년 금융 위기에서 시작됐다. 수많은 실패와 파산을 목격하며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더 이상 자본주의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오늘날 많은 청년이 ‘자본주의’라는 단어에서 진보가 아니라 위기를 떠올린다. 결국 밀레니얼 세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런 게 자본주의라면 나는 다른 걸 택하겠어.’ 하버드정치연구소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온전히 긍정적인 지지를 표현한 집단은 50세 이상뿐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인원수를 자랑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더 나은 길을 찾기로 했다.

    로빈슨은 모든 사람이 정치적 좌파에 합류해 자신이 민주사회주의자임을 밝혀야 한다고 독자를 설득한다. 그는 좌파 정치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원리에 따르면 우리는 좌파와 사회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좌파와 사회주의 같은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좌파의 이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흔한 비판들을 파훼한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 어떻게 민주사회주의가 득세했는지 설명하고, 사람들을 좌파로 만드는 정치적 변화도 꼼꼼히 살펴본다.

    지긋지긋한 자본주의, 지독한 신자유주의!
    이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바로 ‘사회주의자’다!

    로빈슨이 사회주의자가 된 첫 번째 단계는 불평등에 대한 의문이었다. 왜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질병으로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는 페라리가 널려 있는지, 왜 뉴욕에 수만 명이나 되는 노숙자가 있는데 부자들이 투자용으로 구입해 비워둔 호화 콘도는 수만 채에 이르는지, 왜 일용직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수당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 명품 판매업체에서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파는지에 대한 의아함이었다. 로빈슨은 세상이 이렇게 끔찍해진 이유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꼽으며 사람들이 왜 이 모든 것에 분노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지금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무서운 시대라는 것이다.

    자유 시장과 사회적 위계를 옹호하는 자들은 솔깃한 신화를 제시한다. 자신의 경제적 성과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이라거나,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성공 신화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성공 신화들은 사실 거짓말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는 투자한 자본의 양에 따라 돈을 분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있기 때문에 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세계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거대 기업의 막대한 시장가치와 우리의 가난을 비교하면서,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낙수 효과’가 없는지 의아해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아이를 키우거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 시간과 돈이 없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자신을 건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짚는다. 또한 솔직하고 인간적인 눈으로 이 세상을 보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불의와 합리화에 불만을 품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자연스레 띠게 된다고 설명한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능이자 유토피아에 대한 꿈
    좌파에는 고유의 이론과 계보가 있고, 기성 정치 파훼할 의제와 전략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공감한다고 말할 때, 그들은 정확히 무엇에 동의하는 걸까? 로빈슨은 그들이 특정한 경제체제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 그저 탐욕과 편견, 불평등과 위계질서에 대한 합리화를 거부한다고 설명하며, 사회주의는 일종의 인간 본능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세상을 바꿀 명확한 방법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전쟁과 위계가 없는 세계, 불평등과 빈곤이 없는 세계,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세계를 꿈꾼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력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세계를 실현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국경이 없는 나라, 감옥이 없는 사회를 제시한다. 또한 이상을 꿈꾸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면, 추상적이고 공허한 관념을 넘어 현실적으로 추구한 만한 계획을 발견할 수 있다며 세상을 바꿀 야심찬 포부를 드러낸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좌파에도 고유의 역사가 있다. 로빈슨은 오랜 시간 동안 정립돼온 이론과 사상가들의 계보를 소개한다. 그는 먼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같은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는 단어들을 정의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창시한 마르크스부터, 엠마 골드만과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까지 사회주의의 계보를 짚는다. 또한 예수의 철학에서 비롯된 기독교 좌파의 면모와, 헬렌 켈러부터 샌더스로 이어지는 미국의 자생적 사회주의의 흐름도 보여준다.

    사회주의자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꿔야 하는 동시에, 세계를 면밀히 살피고 단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세울 만큼 현실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다. 로빈슨은 장기적으로는 국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실생활에 도움이 되며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좌파가 종종 비현실적인 몽상가로 치부되지만, 지난 몇 년간 사회적·경제적 문제의 가장 구체적인 해결책은 좌파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 금리 인하, 기후 위기 대책, 아동 돌봄 정책, 유급 가족 휴가 보장, 보편적 기본소득 등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제안한다.

    이 책에서는 기성 정치 체계를 파훼할 좌파의 의제들과 전략도 제시한다. 오래 전부터 보수 진영은 많은 자금을 들여 여론을 형성해왔고, 중도 진영은 좌파의 이념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주장해왔다. 로빈슨은 좌파 미디어와 콘텐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좌파 풀뿌리 조직들을 소개하며 희망과 연대를 보여준다. 또한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공직에 진출함으로써 미국의 정치적 담론이 좌파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짚으며 좌파의 미래를 낙관하고 다음 세대를 격려한다.

    보수주의는 천박하고, 자유주의는 비겁하다
    결국 세상을 바꿀 방법은 사회주의! 이제 모두 함께 용감하게 좌회전할 시간

    로빈슨은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서서 냉소하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와 논리의 허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왜 꼭 사회주의여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대답을 던진다. 좌파에 대한 흔한 비판에 답하고, 그런 비판의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왜 그런 종류의 비판을 거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먼저 로빈슨은 약자와 소수자의 고통에 대한 보수주의의 냉담함을 비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척하며 피해자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린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우파의 논리를 거부하며, 우리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약자를 도울 의무가 있다는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음으로 그는 자유주의의 안일함을 비판한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를 예시로 들며 진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못 보며 대대적인 변화에 주저하는 자유주의의 면모를 고발한다. 그리고 힘 있는 자와의 맞대결 회피, 사회운동 구축의 결여, 초당파성에 대한 허상적인 믿음 등 자유주의적 정치의 교활함을 꼬집는다. 더불어 이 책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흔한 주장 몇 개에 답을 제시한다. ‘사회주의자는 자유를 싫어하고 불평등에만 관심이 있다’, ‘정부가 경제를 통제하면 사회주의고 그 결과는 항상 재앙이다’, ‘사회주의자는 집단적인 것을 중시하고 개별적인 것은 무시한다’, ‘사회주의자는 따분하다’ 등의 비판에 재치 있고 날카로운 반론을 펼친다.

    마지막으로 로빈슨은 젊은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꾼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사회주의자들이 이룬 진보를 보여준다. 이 책은 사회주의가 위험하거나 무서운 사상이 전혀 아니며, 사회주의자들이야말로 기성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다. 로빈슨은 이렇게 선언을 끝맺는다. “이리 와서 좌파와 함께하라. 우리에게는 더 재미있고, 더 좋은 계획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 것이다. (…) 사회주의가 승리할 것이고,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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