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진한 식당아줌마의 위대한 반란
        2006년 12월 28일 0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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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는 우리 화성공장 식당 아줌마들의 신화예요. 언니가 없었으면 아마 지금도 뜨거운 국물에 뼈가 익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을 거예요. 200명 조합원들이 모두 언니를 믿고 신뢰하니까 지침을 내리면 무조건 따른다니까요."

    같은 식당에서 일하는 정정자(42) 조합원은 ‘언니’ 얘기를 꺼낼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어어, 야 왜 그래?"라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식당아줌마 육국자(47)씨.

       
      ▲ 육국자 대의원의 환한 미소
     

    그가 보낸 2006년은 정말 화려했다. ‘개·돼지 취급’을 당하던 식당아줌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난생 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게 만들었다.

    순진한 아주머니들의 떼어먹힌 임금 2억 7천만원을 돌려 받았다. 일하다 다치면 이제 산업재해로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기아차 화성공장 식당노동자들이 ‘노예’에서 ‘사람’으로 환생한 2006년이었다.

    27일 오후 2시 30분 수원시 장안구 수원지방노동사무소 민원인 대기실. 대여섯명의 민원인들 사이로 수다쟁이 아줌마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육 대의원은 "전철역은 앉아서 얘기할 곳도 없고, 노동부 휴게실이 편한데 거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올해만 열 다섯 번쯤 이곳에 다녀간 육 대의원에게 노동부는 ‘편안’한 곳이다.

    "노동부 휴게실이 편한데 거기서 만나요"

    육 대의원은 얼마 전에도 이곳에 다녀갔다. 한국 최대 재벌인 현대차그룹의 식당전문업체인 현대푸드시스템이 떼먹은 임금을 돌려 받기 위해서였다. 1차로 그는 현재 근무하는 사람들의 체불임금 1억3,700만원을 되돌려 받았다.

    지난 8월 조합원들의 통장에 적게는 8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의 돈이 들어왔다. 아줌마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체불이 확실한 연장·야간·주차수당만 이 정도였다. 임금 실효가 3년이기 때문에 그 전에 떼 먹힌 돈은 돌려 받지 못했다.

    "특근을 5개를 했잖아요. 그럼 3개를 줘요. 이걸 틀렸다고 하면 관리자들은 ‘서로 잘못했으니까 하나씩 양보해서 4개로 하자’고 하는 거예요. 수습기간을 3개월이 아니라 1년으로 잡아서 상여금을 떼먹기도 하구요. 이런 식으로 떼먹은 돈까지 따지면 엄청날 거예요."

    퇴직한 아줌마들 체불임금까지 찾아주다

    지난 12월 7일 퇴직한 58명의 아줌마들 통장에도 체불임금 1억 3천만원이 들어왔다. 1인당 평균 225만원이었다. 그는 200여명의 조합원들에게 "주변에 이 식당에서 일했던 아주머니들 있으면 체불임금 찾을 수 있게 10월말까지 연락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실효기간이 지난 사람을 빼고 58명이 신청을 했다.

    "우리 것도 다 돌려받지 못했는데 나간 사람까지 챙기려고 애쓰느냐?"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육 대의원은 단호했다. 그는 직접 노무사에게 이를 요청했고, 노동사무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결국 12월 7일 1억 3천만원을 돌려받게 됐다. "회사를 나간 사람이지만 당연한 권리이고, 나중에 다른 회사에 들어가면 이 일을 기억하지 않겠어요?"

    그는 2004년 7월 이 회사에 들어왔다. 젊은 관리자들은 어머니 뻘 되는 사람들에게 늘 반발을 지껄였고, 바가지와 국자를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앞치마가 떨어져 사달라고 하면 "당신 돈 내고 사라"고 말했다. 형부 회사에서 5년 동안 경리 일을 하고 장사를 하면서 돈 문제에 ‘빠삭’했던 그의 눈에 월급을 떼먹는 회사가 보이는 건 당연했다.

    "주동자를 찾아라"

    육 대의원의 ‘위대한 반란’은 작년 말 시작됐다. 육 대의원은 지난 해 연말 홀로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한 후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 2월 대식당에 노조가입원서를 돌렸다. 숨죽여 살아왔던 식당 아줌마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화성공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낸 회사는 ‘회유’에 들어갔다. "생전 전화 한 통 없었던 모 과장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식사도 하고 술 한잔 하자면서요.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2년 치 월급은 받겠더라구요. 하지만 글씨도 쓸 줄 모르는 아줌마들이라고 무시하고 속이는 걸 보면서 그냥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전쟁은 시작됐다. 관리자들이 노조에 가입한 아줌마들을 감금한 채 노조탈퇴 협박을 했던 사건이 터지고 난 후부터 아줌마들이 대거 노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터기에 손가락이 잘려도, 뜨거운 국물이 쏟아져 뼈가 다 드러나도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5월부터 회사와 교섭이 시작됐다. 매주 목요일 교섭장소로 나가 하늘처럼 높아 보였던 관리자들과 당당히 얼굴을 맞대고 교섭을 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점점 불어나 100명을 넘어섰다.

    식당아줌마 파업에 들어가다

       
     
     

    회사는 "다른 건 다 들어줘도 파업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섰다. 회사는 "식당 아줌마들이 먹을 거 가지고 장난한다"며 정규직 노동자들과 이간질을 했다. 육 대의원은 "애도 열 달을 품어야 나오는데 쬐끔 싸우고 성과를 바라냐?"며 흔들리는 아줌마들을 다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8월 31일 ‘역사적인’ 파업을 벌였다.

    결국 회사가 손을 들었다. 9월 6일 23차 교섭에서 조합활동과 고용안정, 임금, 노동시간 등 59개 조항에 달하는 단체협약에 합의했다. 또 노조전임자 3명과 하계휴가비 15만원, 명절 귀향비 10만원, 수당 3만원 등을 따냈고 마지막 쟁점이었던 파업권도 확보했다. 현대푸드 305개 영업소 중에서 처음이었다.

    그는 단체협약에 잠정합의하고 몸살을 크게 앓았다. 밤새 링거를 맞으면서 끙끙거렸다. 그러나 누워있을 수 없었다. 아침에 탈탈 털고 회사로 나갔다. 그렇게 조합원들을 만났고, 조합원들은 어느새 200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는 퇴직한 노동자들의 체불임금까지 받아낸 것이었다.

    그가 가방을 열더니 가스총을 살짝 보여준다. 집이 외진 곳에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고, 미행도 몇 번 당해서 호신장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달 전에는 회사에서 누군가 집에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그가 외도를 하는 것처럼 말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가 회사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이들이 저지른 소행임은 분명하다.

    가스총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

    그와 211여명의 식당노동자들은 한미FTA와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총파업에도 빠지지 않았다. 조합원들 모두가 두 개 조로 나눠 서울 집회를 다녀왔다. "연대투쟁을 다녀오고 나서 우리 조합원들이 왜 연대가 중요한 지 절실히 느끼는 것 같아요." 정정자 소위원의 말이다.

    "잃어버렸던 우리 권리를 찾은 거죠. 다치면 산재처리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관리자들의 횡포도 없어졌구요. 이제는 분위기를 아니까 옛날같이 집어던지고 발등 밟고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게 됐죠." 그의 말에 노동부 민원실에서 ‘호출’을 기다리며 우리의 얘기를 듣던 한 아주머니가 "정말 대단하세요"라며 거든다.

    "정말 정신 없이 1년이 지나갔어요.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해 엄청 험한 길을 걸었죠. 정직하면 이긴다는 거, 진실이 꼭 이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의 돈 벌기가 쉽나, 더러우면 그만 둬야지’라고 생각했던 아줌마들이 이제 달라졌어요. 우리가 일한 대가는 정당하게 받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75만 식당노동자의 인간선언을 꿈꾸며

    그는 차를 몰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얼마 전 식기에 유독성 세제를 사용한 회사를 노동부에 고발했다. 이날 아침 이 문제로 노사가 교섭을 벌였고, 회사가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여 식당노동자들을 넘어 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까지 지키고 있었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음식업 종사자는 193만명이고, 이 중 임금노동자는 75만명이다. 그러나 노조 가입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우리는 노동부 휴게실을 나오면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식당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 현대푸드 305개 영업점을 넘어 전국 식당노동자들의 인간선언으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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