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정 15500킬로미터,
    어제·오늘·내일의 중국을 보고 생각하다
    [책소개] 『레드 로드』 (손호철(지은이)/ 이매진)
        2022년 01월 01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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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중국을 만든 붉은 길, 어제의 대장정을 따라가다

    2008년, 중국은 뜨거웠다. 티베트 소요 사태가 터졌고, 쓰촨 대지진이 일어났고, 한여름을 뜨겁게 달군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다. 그해 봄 정치학자 손호철(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 교수)은 마오쩌둥과 홍군이 걸은 대장정 길을 50일에 걸쳐 따라간 기록을 담은 여행기 《레드 로드》를 펴냈다. 2021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중국은 차갑다. 시진핑의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끝날 줄 모르고, 김치 대 ‘파오차이’와 한복 대 ‘한푸’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인권 탄압 때문에 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지금, 손호철은 《레드 로드》를 새롭게 펴낸다.

    여행하고 기록하는 정치학자 손호철은 21세기를 이해하려면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핵심은 대장정이라고 말한다. 《레드 로드 ― 대장정 15500킬로미터, 중국을 보다》는 2008년에 티베트 사태 때문에 못 간 쓰촨 성 구간을 다시 다녀와 보강하고(9장 〈3년 뒤, 대장정을 마무리하다〉), 자잘한 오류도 바로잡았다. 그사이 한국과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됐다. ‘세계의 공장’이라던 중국은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지만, ‘한한령’과 ‘혐중 정서’ 사이는 장정 최대 난코스의 하나인 루딩 교처럼 멀기만 하다. 지금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중국에 어떤 사건인지, 티베트 사태 등 소수 민족 문제를 중국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란 중국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홍군의 후예인 중국 공산당은 고도성장에 뒤처지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20세기 마오의 대장정과 21세기 손호철의 대장정, 오늘의 중국을 보다

    장정, 또는 대장정은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주로 농민으로 구성된 홍군 8만 5000명을 이끌고 중국 남부 장시 성을 떠나 장제스와 국민당군의 추격을 피해 1934년 10월 16일부터 1935년 10월 18일까지 368일 동안 1만 킬로미터를 이동한 사건을 가리킨다. 쑨원이 창당한 국민당보다 8년 늦게 창당한 중국 공산당은 장정을 발판 삼아 ‘역사의 승자’가 됐고, 현재의 중국을 만드는 주역이 됐다. 장정은 ‘중국을 만든 붉은 길’인 셈이다.

    손호철은 ‘중국을 만든 붉은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갔다. 1년 반 동안 중국어와 영문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했고, 6개월 동안 베이징에서 실전 중국어를 배웠다. 2008년 3월 14일 오후,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키 큰 정치학자, 중국에 관해 모르는 게 없는 오 선배, 몸무게 100킬로그램이 넘는 조선족 김문걸 군, ‘완전 소중한 애마’를 보호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중국인 운전기사는 중국 남부 장시 성 난창을 떠났다. 2011년 여름에 떠난 2차 여행까지 합쳐서 모두 1만 5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손호철의 장정’이 시작됐다.

    마오쩌둥, 류사오치, 펑더화이의 생가,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 때 하방당해 일한 트랙터 공장, 공산당이 봉기를 일으킨 난창과 창사, 마오쩌둥이 유격전을 벌인 징강 산, 장정 출발지인 루이진과 위두, 마오쩌둥이 권력 실세로 등장한 무대인 리핑과 쭌이, 생사를 건 전투가 벌어진 싱안, 우 강, 러우산관, 투청, 자오핑두, 리하이, 루딩, 홍군이 국민당군보다 더 힘겨워한 마오얼 산, 다쉐 산, 쓰구냥 산, 류판 산 등 고산준령들, 장정 종착지인 우치, 장정을 끝내고 공산당이 자리를 잡은 즈단과 홍군의 수도 옌안, 시안 사변의 현장인 시안, 중국이 자랑하는 절경인 단샤 산, 리 강, 펑황 고성, 황궈수 폭포, 산봉우리 1만 개의 숲 완펑린, 다랑논으로 유명한 위안양, 투린, 사보터우, 후커우 폭포, 뜨거운 감자가 된 소수 민족 마을인 룽성, 싼장, 자오싱을 모두 들렀다. 홍군에 참여한 98세 노인, 《아리랑》의 주인공인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아들 까오잉광을 비롯해 오늘의 중국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시진핑의 중국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내일의 중국을 생각하다

    중국인 말고 처음으로 대장정 전 구간을 답사한 사람은 1984년 미국의 언론인 해리슨 솔즈버리다. 손호철은 대장정 전 구간을 답사하고 여행기를 쓴 최초의 비중국계 동양인이다. 대장정 구간은 대부분 험준한 오지이고 당국이 여행을 통제하는 곳이라 외국인은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레드 로드》는 중국 공산당과 현대 중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현지 답사기이면서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 힘든 풍광과 소수 민족의 삶을 기록한 오지 탐험기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회주의 중국’을 만든 뿌리로서 장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주주의, 분배, 민족, 환경 등 오늘날 중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과 장정이 내세운 목표가 단순히 부국강병이 아니라 오랜 계급 지배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사회 혁명이라면,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자랑하는 고도성장 뒤에 숨겨진 여러 문제들, 곧 경제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점점 심각해지는 소수 민족 갈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환경 파괴를 해결하는 데 더더욱 장정 정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일의 중국도 장정이 만든 중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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