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율 바닥 대통령의 막강 정치력 원천
        2006년 12월 27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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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 언론의 정치 관련 보도는 해석학 아니면 심리학에 몰두해 있다. ‘말’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양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론 정치 보도는 정치인들의 ‘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공자의 ‘정명론’까지 들먹거릴 필요는 없겠지만, 명징성보다는 모호성이 도드라지는 정치인의 ‘말’은 생산적이지 않다. ‘공적 짜증’만 생산할 따름이다. 

    현직 정치인 중 문제적 발언을 가장 많은 생산하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지난달 말 ‘임기 발언’을 시작으로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노대통령의 ‘말의 정치’는 정치부 기자들을 해석의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

    투명한, 그러나 난데없는…

    무릇 누군가의 정치적 발언을 기사화하려면 발언의 이유와 배경 따위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경우엔 이게 쉽지 않다.

       
     

    표현 자체는 완전히 투명해서 별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거냐"는 발언에 대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반대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맥락에 대해선 좀체 감을 잡기 어렵다. 자신이 지명한 전직 총리를 두고 난데없이 "실패한 인사였다"고 말하는 게 ‘상식적’이진 않다. 정치부 기자들의 고달픈 해석놀이가 시작되는 건 이 지점에서다.

    발언의 의중이 뭘까. 어떤 복선이 깔려있을까. 이렇게 계속 파고들다 보면 종국에는 일종의 음모론으로 귀결된다. 노대통령이 모종의 ‘마스터플랜’을 갖고 착착 수를 두고 있다는 식이다. 항간에 나돈 ‘노대통령-이명박’ 연대론이 단적인 예다.

    이런 접근법은 무의식중에 노대통령을 전지전능한 ‘기획자’로 전제한다. 때문에 이런 식의 해석이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현실 정치에서 노대통령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대통령을 전지전능한 기획자로 만드는 ‘음모론’ 

    그리고 이렇게 확대된 존재감은 해석학적 접근을 보다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일종의 ‘자기충족적’ 해석인 셈이다. 최근 작심하고 ‘말’을 꺼내기 시작한 뒤 노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적어도 한자릿수 지지율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이렇게 해도 뭔가 말끔히 설명되지 않으면 심리분석이 기다린다.

    이를테면 "노대통령은 피해망상과 애정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잘 한 일 칭찬해주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26일 발언 같은 것이 그렇다. 노대통령 집권 이후 심리학자들의 정치적 논평이 많아진 것은 흥미롭다. 이런 접근법은 노대통령의 ‘심리적 결함’에 주목한다. 곧 노대통령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절하다.

    두 가지 접근법은 공히 노대통령의 ‘말’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전제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현상의 배후에 놓인 본질을 찾으려는 근대적 사고법의 한 양상 같다. 반면 노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화법은 ‘말’의 바깥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 ‘포스트모던’한 정치화법의 한 사례로 비친다.

    때문에 일체의 해석을 배제한 채 노대통령의 ‘말 자체’를 최대한 존중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달 30일 이후 노대통령이 한 발언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1) 민주당과의 합당을 전제로 한 통합신당은 안 된다 2) 지역구도 극복을 위해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3)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감’이 아니다. 이 중 둘은 ‘-는 안 된다’는 것이고, 하나는 ‘-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는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를 해야 한다’는 발언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받아들여졌다. 노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대통령의 권력이 ‘뭔가를 이룰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를 좌절시킬 정도는 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노대통령이 한자릿수의 참담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여권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밀이 숨어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노대통령의 네거티브 정치력

    노대통령과 고 전 총리의 이번 ‘설전’이 고 전 총리의 지지율 상승에 보탬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단기적으론 그럴 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인 영향에선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반노’ 일각이 고 전 총리에게 힘을 보탠다고 해도 ‘반노’의 본류인 한나라당 후보를 넘어설 수는 없기에 그렇다.

    특히 지금처럼 이명박 전 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선 기존 여권의 모든 자산을 탁탁 털어 담아야 그나마 해볼만한 싸움이 된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야 한다. 그게 대회전을 위한 최소한의 전열정비다.

    이게 가능하려면 노대통령이 "나를 밟고 가라"고 누워줘야 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음을 이번에 분명히 했다.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미묘한 상황이라는 것도 계산에 넣을 필요가 있다.

    통합신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대통령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 힘은 없지만 통합신당의 흐름에 제동을 걸 힘은 충분하다는 게 점차 입증되고 있다.

    이른바 ‘친노세력’이 배제된 가운데 고건 전 총리, 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 시민사회 세력 일부 등이 힘을 합쳐 통합신당을 만들 경우 지역주의로의 회귀라는 규정을 피할 도리가 없다.

    통합신당파인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이 최근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신당은 언제 어떻게 추진하건간에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며 "사실 이걸 가장 완화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한 것은 대단히 솔직한 상황인식이다.

    통합신당파의 원죄와 노대통령의 영향력

    노대통령의 ‘네거티브 정치력’이 힘을 발휘하는 건 카운터파트인 통합신당파나 고 전 총리 모두 명분 없는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장과 고 전 총리가 왜 ‘통합’해야 하는지 적어도 명분의 차원에선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히 경제정책에서 한나라당 못지 않게 ‘실용적’ 성향을 보이는 여당 실용파가 ‘반한나라당’을 위해 ‘통합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른바 ‘민주세력’의 최근사에 대한 짖궂은 희화화이자 모독으로 보인다.

    이런 자가당착과 명분 부재의 정치공학적 셈법이 난무하는 판에서 노대통령의 ‘네거티브 정치력’은 여전하고, 앞으로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노대통령을 끌어들여야 하는 통합신당파의 정치공학적 셈법이 작동하는 시점에서 노대통령을 위한 정치적 공간은 본격적으로 열릴 공산이 크다.

    이른바 통합신당파의 자가당착과 명분없음이야말로 노대통령의 정치력을 배양하는 숙주가 아닐까. 만약 노대통령발 ‘음모론’이라는 게 있다면 그 무의식적 기획자는 통합신당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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