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사1촌 아니라 노-농 연대로
    By tathata
        2006년 12월 26일 03: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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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기업과 농촌마을 사이의 결연을 통한 교류활동을 목표로 하는 ‘1사1촌’ 운동을 보고 있으면 마치 망해가는 우리 농촌이 모조리 구원받을 수 있을 것처럼 그 기세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2004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1사1촌 운동’이 올해로 3년째인데, 자매결연 수가 2004년 2,404건에서 2005년 8,677건, 올해 6월말 현재 11,351건으로 늘어났고, 교류금액도 2004년 43억원->2005년 454억원->2006년 6월말 741억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2004년 43억원에서 올 상반기만 741억원으로

    그 형태도 여러 가지이다. 처음엔 기업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던 것이 차츰 관공서와 공공기관으로, 그리고 최근엔 학교(1교1촌)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되고 있고, 교류활동도 단순한 일손돕기와 체험활동에서부터 농산물 사주기, 재해피해 복구지원, 농촌생활 개선지원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 < 1사1촌 운동 단계별 추진 전략 > (출처: 농림부)
     

    이처럼 1사1촌 운동은 그동안 농촌과 농민에 대해 무관심했던 도시민들이 농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농촌과 농민을 지원하며, 나아가 서로 상부상조하는 좋은 취지를 갖고 출발하였고 또 실제로 가시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칭찬하여 장려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넘어가기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이 글에서는 1사1촌에 대해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한다.

    FTA 대책 활동 일환으로 시작

    첫째, 운동의 시작 동기에 관한 것이다. 1사1촌 운동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월 사이였다. 바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정부와 농민-시민단체 간의 공방이 가장 치열했던 때였다.

    2003년 11월 4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경제4단체 대표, 농민단체 대표(전농은 빠졌음)와 함께 처음으로 1사1촌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합의한데서 논의가 본격화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한-칠레 FTA로 인한 수혜를 독식하게 될 자본이 농민들을 달래기 위한 무마책으로 1사1촌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현재도 전경련의 1사1촌 게시판은 FTA 게시판 아래에 있으면서(http://www.fki.or.kr/curiss/fta/chon/list.aspx), 전경련의 FTA 대책팀에서 1사1촌 운동을 관장하고 있다.

    물론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수혜를 독식하는 자본이 농촌의 붕괴와 농민의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1사1촌 같은 자발적인 선의에 의존하는 국민운동 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 오히려 문제를 왜곡시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발적 선의 의존하는 국민운동은 이데올로기 기능

    이러한 책임회피에서 정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의 농업과 농촌 회생의지는 실종된 상태로 지금도 농업의 희생을 전제로 각종 FTA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발적인 ‘1사1촌 운동’에 우리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건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애초에 시작이 기업의 농촌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농민 회유책 내지는 선전 전술로 시작된 것이다 보니, 그 내용이 내실있게 진행되기가 어려웠다. 화려한 수사와 화면, 그리고 부풀려진 수치로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그 실제 내용까지 가리기는 어렵다.

    기업들 농촌 가서 사진찍고 생색내기 급급

    정부와 농협은 실적을 홍보하기에 바쁘고, 1사1촌 운동에 참여하는 기업은 농촌에 가서 한번 사진찍고 생색만 잔뜩 내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실제로 이는 1사1촌 운동을 관장하고 있는 운동본부가 지난해 결연이 부진했던 1,300여건에 대해 결연을 해지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으며, 한 분석에 따르면 총 결연 수 중에서 약 17% 정도만이 제대로 후속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2004년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는 <문화일보>의 1사1촌 캠페인 배너

     

     
     

    또한 실제 농민들에게 가장 절실하고도 중요한 교류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기업들이 사내 급식 형태를 통해 안정적으로 소비해 주는 것일텐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삼성전기-화천 토고미 마을의 1사1촌 사례에서도 사내 식당에 마을 농산물을 월1회 공급하는 것이 고작이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런 급식 소비보다는 대외 홍보효과가 큰 1회성 이벤트 사업이 훨씬 더 비용대비 효과 만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쥐꼬리만한 돈을 쓰고는 농촌에 담겨있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하는 1사1촌 운동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셋째, 좀 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농촌 개조 의도가 군데군데 엿보인다. 예컨대 “기업의 풍부한 경영 및 마케팅, 조직관리 노하우 등을 농촌에 접목”, 농민들에게 부족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심어주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시절의 새마을운동이 국가가 농업과 농촌 문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리기보다는 농민들의 정신 상태를 탓하면서 정신 개조운동으로 나아간것과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유사성 때문에 1사1촌 운동은 요사이 정부와 기업에서 ‘제2의 새마을운동’이라고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제 2 새마을 운동으로 칭송

    국가보훈처-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간 자매결연식 현장(사진: 국정홍보처) 문제는 대부분의 1사1촌 운동이 이렇게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홍보 효과) 후속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 국가보훈처-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간 자매결연식 현장(사진: 국정홍보처) 문제는 대부분의 1사1촌 운동이 이렇게 시작만 거창하게 하고(홍보 효과) 후속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존하고 있는 운동이다 보니 1사1촌 운동은 애초부터 모든 농촌마을들이 그 수혜를 입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즉 기업들이 교류를 하길 원하는 마을을 찾아서 교류가 진행되는데, 그러다보니 경치가 좋거나 마을에 젊은 리더가 있거나, 아니면 마을의 성격이 기업 홍보에 적합한 그런 마을들이 선택된다. 다시 말하면 돕지 않아도 잘 될 ‘경쟁력 갖춘’ 마을이 1사1촌의 수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돕지 않아도 될 마을 중심 수혜

    써놓고 보니 너무 과도한, 내지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생각될 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기업에 의한 운동이 차츰 정부 및 공공기관과 학교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점은 이 운동의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켜가고 있고, 또한 기업들이 농업과 농촌문제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보단 요즘 ‘기업의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해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도농 교류의 내용을 내실화시켜간다면 굳이 나쁠 것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고 그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는 ‘1사1촌 운동’의 대안은 바로 ‘1사’가 아니라 ‘1노’, 즉 ‘노-농 연대’이다. 즉 자본 주도의 도농 교류가 아닌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간의 진정한 ‘아래에서의 도농 교류’ – 농민의 경제적 생계 보장과 일손 지원과, 노동자 가족의 좋은 먹거리 보장 및 자녀 체험교육 – 말이다.

    그래야만 1사1촌 같은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의 교류가 아닌, 대등한 관계의 교류가 가능해진다. 사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여건을 보자면 오래 전부터 노-농 연대와 교류가 진행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자본에 의해 선점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상황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민중연대 사업의 본보기 삼아야

    광주 기아차 노조와 전남 구례농민회는 2005년 1월부터 민중연대사업을 시작한 바 있다. 자매결연을 맺고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먹는 쌀을 구례농민회와 직거래하고, 또 이를 넘어서 2006년 봄에는 ‘노농 경작단’을 조직하여 함께 볍씨를 틔우고 모내기 품앗이를 하는데 이르렀다.

    더 나아가 ‘1노조-1농민회’ 연대사업을 전농과 민주노총에 제안했다는 것이다. 또한 대구에서는 민주노총과 전교조, 전농경북도연맹이 공동으로 경북 지역 농산물을 상시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기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구례에서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원, 구례농민회, 화엄사 스님등 1백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경작단 사업 일환으로 모내기 행사를 갖고 있다.

       
     ▲지난 6월 18일 구례에서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원, 구례농민회, 화엄사 스님등 1백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공동경작단 사업 일환으로 모내기 행사를 갖고 있다.

     

     

    ‘자본의 시혜와 온정’, 그리고 ‘농민의 기업가화’가 위기에 빠진 농업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소위 ‘한국형 농촌 발전모델’이 될 수 없다. 제도화된 도농 교류와 농산물 직거래만이 이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1사1촌’ 공세를 어떻게 하면 그러한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민중운동 진영에서 지금부터 많이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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