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 95%가 사회주의자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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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6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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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동학교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조상이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나 자신도 이전에 쓴 글에서 동학문제를 거론하면서 ‘조병갑’이란 이름을 거론한 적 있었기 때문에 조기숙 전 수석이 조병갑의 증손녀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계속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친일파 논쟁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친일파 후예들

    몇 년 전, 신기남 의원, 이미경 의원의 부친들은 모두 일제시대에 헌병대 출신으로 밝혀져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 있다. 그리고 김희선 의원의 부친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의 특무경찰로 활동했다는 주장이 <조선일보> 측에 의해 제기돼왔다.

    물론 조선일보의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지만 이 신문의 보도내용에 대해 김희선 의원 측에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 대부분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권 인사들의 족보를 뒷조사하는 조선일보의 의도는 명백하다. 친일파 인사들이나 자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진흙탕 속에서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일제시대 당시에는 모두 진흙탕에 빠져 있었다는 논리를 은근히 퍼뜨리면서 친일파 논란을 피해가려는 의도이다.

    외국에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시 신기남 의원의 부친이 일제시대에 헌병오장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을 때의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연로하신 독립운동가를 직접 만나 당시의 헌병오장이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는 말문이 막혔던지 아예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 주체 정치권에는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한다면 과거사 청산의 주체가 정치권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정치권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잠시 거론했다가 덮어버리는 관행을 반복해왔다. 참여정부에서도 과거사 문제는 이런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  2005년 8월 29일 열린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박찬승(앞줄 가운데) 편찬위 상임부위원장이 선정기준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현재 과거사 청산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사람을 들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논란이 될 수 없는 사실이 논란이 되는 비이성적인 일이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공적과 다른 대통령들에 비한 월등한 선호도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박대통령의 개인사는 한반도 역사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어쨌든 박대통령은 일본제국주의의 장교출신이기 때문에 친일파에 속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일제의 장교출신이 친일파가 아니면 누가 친일파에 속하는지 되물어보고 싶다.

    박정희 친일파는 논쟁 여지조차 없는 사실

    1947년에 대구에서 일어났던 10.1항쟁을 연로한 세대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해방 후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민중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일제시대 때의 경찰과 군인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일하고 있었던 데 있었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오히려 일제의 주구노릇을 했던 군인들이나 경찰들이 버젓이 승진한 계급장을 달고서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민중들을 다시 탄압했던 것이다. 민중들의 분노는 바로 이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1917년에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서 전 세계는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병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글줄이나 읽을 줄 알면 모두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했고 사회주의 사상을 신앙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은 전 세계 민중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불씨를 던져줬다.

    조선이 망한 뒤,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은 이씨 왕조의 복원을 원하지 않았다. 일제의 군대를 불러들여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수십만의 농민들을 학살한 뒤 나라를 팔아넘긴 조선왕조로의 복귀를 단연코 거부했다.

       
      ▲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독립군
     

    당연히 독립운동가들은 새로운 체제를 꿈꾸었는데 이것이 바로 당시에 유행했던 사회주의 세상이었다.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였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박정희 시대 때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직접 만나 이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는 95% 이상의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물론 5%는 종교인들로 추정할 수 있다. 일제에 항거해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해방이 되자 경제 분야에 몰두하면서 진보운동과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 시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경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면 고문과 구타를 시작했는데, 사상범이라면서 항상 머리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고 한다. 투옥되면 대부분은 열악한 수형환경으로 인해 80% 이상의 독립운동가들은 감옥에서 죽든지 아니면 출옥 후에는 병치레로 인해 죽어갔다.

    내가 헌병오장에 대해 질의했던 연로한 독립운동가도 수형생활 중 동상을 얻어 다리를 절단할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살해했던 일을 주로 했던 고등계 형사들이나 일제헌병대의 헌병들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조선인들이었다. 바로 이들이 해방이 되면서 대한민국 군대의 장군이나 장교로, 경찰조직의 서장이나 간부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20년 전에 그렸던 민주화 세상은 아직 안 왔다

    일제가 물러가면서 막다른 골목에서 사경을 헤매던 친일 잔재들을 구제해준 곳이 바로 미군정청이었다.

    당시에 이들이 그렇게도 철저하게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했던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의 주구가 돼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자신들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때문에 해방 후에는 재판절차도 없이 체포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했다. 잡아들인 빨갱이들은 모두 트럭에 싣고 어딘가에서 학살해서 묻었다. 최근 들어 학살 장소들이 발견되면서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의 가정은 파탄되고 자손들은 비참한 환경 속으로 내던져졌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일제의 주구들은 해방이 된 뒤에는 친미반공세력으로 변신해 남한사회의 주류로 다시 등장했다.

    미국과 반공이 이들을 살린 것이다. 또한 이들의 자손들 대부분도 고등교육을 받은 뒤 사회의 상층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소위 민주화운동 출신이 중심이 돼 만들었다는 열린우리당에서까지 친일파의 직계자손들이 활개를 쳤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에서 친일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민주화는 단지 군부의 인사가 민간인으로 대체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잔재들이 청산되는 것도 민주화의 중요한 내용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의 민주화 문제도 과거사 청산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반민족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되지 않는 나라에서 땅투기 정도야 범죄 축에 끼지도 못할 것이다. 당연히 ‘론스타 사건’처럼 국가의 관료들이 외국회사의 뇌물을 받고 국가의 부를 팔아넘긴 반민족적인 사건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2007년의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이면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수많은 학생들과 노동자. 농민들, 도시빈민들이 민주화투쟁을 하다 군부독재에 의해 죽어갔고 감옥으로 끌려가고 두들겨 맞았다.

    민주화는 그렇게 싹이 텄다. 하지만 20년 전 우리가 꿈에도 그렸던 민주화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 당시에 바랐던 민주화가 이뤄졌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대답은 여전히 “아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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