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과 기록,
    독일 국가폭력 현장 답사기
    [책]『악을 기념하라』(김성환/ 보리)
        2021년 12월 18일 08: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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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역사 청산을 제대로 못 한 우리와 달리 독일은 끔찍했던 나치 폭력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교육하여 다시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노력해 왔다. 이 책은 국가가 저지른 폭력과 공포의 역사를 독일이 어떻게 청산하고 바로잡아 왔는지 낱낱이 보여 준다. 숱한 유대인이 죽어 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조차 독일 시민들은 악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장소로 남겨 두었다. 그 현장들을 답사하고 똑같은 독재와 폭력의 장소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보며 저자는 말한다.

    “악을 기념하라. 다시는 그 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카체트, 죽음의 강제 수용소

    카체트는 나치가 독일과 유럽 곳곳에 세운 강제 수용소를 이른다. 그곳에서 숱한 유대인이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 갔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을 틈타 영리하게 세력을 잡은 히틀러와 나치는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유대인을 전부 죽여서 유대인 없는 세계를 만들” 결심을 한다. 그것이 바로 나치의 최종 해결책, 이른바 유대인 ‘절멸’ 정책이었고, 끔찍한 악(국가폭력)의 시작이었다.

    청산 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서 먼저 바닥에 가라앉은 뒤 점차 차오른다. 이때 (가스실의)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으로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독가스를 피하려고 한다. 결국 먼저 죽은 시신들을 밟고 올라선다. 그들이 죽으면 다음 사람들이 그 위로, 또 그 위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인간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는 노인과 아이들이, 그 위층에는 여자들이, 가장 위에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차지했다. 그 광경을 상상하며 가슴이 울컥해지는 순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손톱으로 가스실의 벽면을 긁은 자국들이 내 눈을 긁었다. (398~390쪽)

    남영동, 국가폭력의 범죄 현장

    우리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1987년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가 놓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망언을 한 독재 정권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고문과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박종철처럼 학생운동가였고, 남영동 인권기념관추진위원회 공동 대표이자 역사 편집자이기도 한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저 불행했던 과거의 현장을 보존한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벗어나, 이 땅에 다시는 밀실에서의 고문이 횡행하는 독재 국가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게 민주주의에 방심하면 그 틈을 비집고 독재 권력이 성장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남영동 대공분실은 우리에게 그 답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에 그 답을 구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치즘과 동독 공산주의 체제가 저지른 국가폭력 범죄를 독일은 어떻게 ‘기념’하고 있는가.”

    오랜 과정 끝에 찾은 기념이라는 해법. 그리하여 독일의 국가폭력 기념관들을 답사하고 분석하며 남영동 대공분실의 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 바로 이 책, 《악을 기념하라》이다.

    기념하고 기억하라, 국가폭력의 고통을

    우리나라에서 ‘기념’이란 말은 흔히 좋은 것을 기리거나 추도할 때 쓴다. 하지만 독일에서 ‘기념’은 말 그대로 생각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기념관’이라고 했을 때 그곳은 ‘생각하는 장소’, 반성하는 장소가 된다. 무엇을 생각하냐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폭력을, 고통과 죽음을, 또는 그것을 외면했던 부끄러움을.

    (수용소의) 참상을 목격한 바이마르 시민들은 모두 얼굴이 어두워지고 굳어졌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곳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결같이 “나는 몰랐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막사에 들어갔을 때 침상에 누워 있던 수감자가 발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어서 보여 주었다. 발가락들이 모두 썩어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나 있었다. 바이마르 시민들은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면서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314~315쪽)

    독일의 거의 모든 강제 수용소는 그 원형을 보존한 채 강제 수용소 ‘기념관’이 된다. 한때 죽음의 수용소였던 곳은 개방되어 시민들을 들이고, 그곳에서 시민들은 날것 그대로 악의 실체를 만난다. 그리고 깊이 성찰하며 다짐한다. 다시는 악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그렇게 기념하고 기억해 미래를 바꾸고자 한다. 거기에서 ‘기념관교육학’이라는 학문까지 생겨났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이야말로 “글로 진행된 기념관교육”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드러내는 데서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독일이 처음부터 반성하고 기념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오랜 세월과 기나긴 논의의 과정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한, “시민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섞인 헌신”이 있었다.

    독일인들의 나치 청산은 적어도 그 첫 단계에서는 마치 우리가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것과 똑같은 이유와 정치 정세로 말미암아 실패했다. ……암흑기를 거쳐 다시 나치 청산을 햇볕 아래로 호출해 낸 힘은 학생운동에서 나왔다. 좀 더 보편적으로 규정하자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 소수 사람들의 헌신에 의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 운동, 곧 ‘사회운동’의 힘에서 나왔다. (58~59쪽)

    마치 공포의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날 수 있게 추진한 힘이 ‘촛불시민’에게서 나왔던 것과 같다. 저자는 남영동이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일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아픔은 아픔 그대로 드러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할 때 비로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된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상처를 감추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함께 고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며 진정한 과거 청산이자 미래의 시작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어떤 이들은 미래가 중요하므로 지나치게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과거를 기억하는 주체는 오늘을 사는 피해자 세대가 아니라 미래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 세대의 행복 조건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과거와 같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476쪽)

    (그러므로 과거) 청산 작업은 끊기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이다. (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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