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배신자이고 누가 간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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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4일 1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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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 ‘기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나라, 민족에서 그런 사람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지독한 자기중심성, 독선, 배타성, 폐쇄성, 피해의식과 자존심이 함께 똘똘 뭉쳐진 심성을 가진 민족 가운데서 그런 사람이 태어날 수도 있다니. 혹시 그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소문대로 정말로 ‘신의 아들’이 아니었을까?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 찾아내야 할 고리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부를 때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여 세상의 풍문을 부정하였다. 그러므로 일단은 풍문보다는 그 분 자신의 말을 믿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유대 전통에서 예수로의 단절과 비약의 장막을 헤치고 들어가서 어디선가 연결 고리를 발견해야 한다.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이 남긴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구약의 끄트머리에, 종교회의의 공인을 반쯤 받아서 ‘외경’으로 불리는 기록들이 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세계인이 되었던 사람들, 당시의 국제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온갖 민족들과 어울려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사상적 변화의 ‘민족일기’가 있다.

       
     

    당연히 그런 변화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하여 본국으로, 전 유대민족 사회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사해동포주의는 새로운 조류로 자리 잡아 나갔을 게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가 구약만을 읽은 사람이 아님을 추정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태어나기 오래 전에 중동엔 헬레니즘이 휩쓸고 지나갔다.

    예수의 사상을 온전하게 이해한 사람은 그의 얼굴도 본적이 없는 바울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지적 편력이 바울과 흡사했음을 말해준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읽고 인도 사상의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도 동족의 문화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흐름으로부터 “유대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사상을 이어받았음에 틀림없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은 예수

    예수는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로 유대인들의 헛된 자존심과 독선을 꾸짖는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를 외쳐 숱한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허황된 반로마 무장투쟁의 중단을 촉구한다. 심지어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 놓아라”고 하며 노골적으로 무저항주의를 선동한다. 예수, 그가 혹시 로마의 ‘세작’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열렬한 민족주의자, 열혈당원 유다는 왜 예수 집단에 가담했을까? 물론 예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노선에서는 공통분모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급속도로 커가는 예수 집단의 영향력, 민중 속에서 높아가는 예수의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서 예수의 제자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는 이제 열혈당원이자 동시에 예수의 제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배신자 유다에게도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가 고발한 예수, 제국 로마에 대항하여 무장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유대인의 왕을 자처하는 예수는 바로 그가 바라던 스승의 모습이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 반제 투쟁에 나서지 않는 예수 집단이란 당초부터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 집단은 열혈당의 공작 대상, 2중대일 뿐이다.

    반제투쟁에 나서지 않는 예수집단은 열혈당의 공작대상

    이미 그는 예수 집단의 내부 정보를 열혈당에다 상시적으로 제공해 왔다. 오직 예수밖에 모르는 멍청한 다른 제자들이 그를 ‘간첩’이라고 비난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이 그의 열혈당과의 관계를 추궁하고 의심하고 못살게 굴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야말로 로마 제국주의자들의 압도적 힘 앞에 겁먹은 비겁한 자들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사실은 오히려 ‘배신자’는 예수다.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로서 민족의 해방자로서, 구약에 약속되어 있는 왕으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것이 비단 유다 만이었을까? 어쩌면 그를 따르던 무리들 중 상당수가 그러했을 것이다. 제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 있었을지 모른다. 예수는 그들의, 민중의 기대를 저버리고 배신했다.

    결국 2,000년 전에 태어난 예수는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그는 반란을 일으킬 계획이 없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그의 동족에게 무장 반란의 무모함을 설득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양쪽으로부터 의심받고 버림받아 외롭게 죽어 갔다. 한 때의 대중적 인기는 사라지고 오직 막달라 마리아만이 그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사상, 인간은 모두가 똑같이 귀한 존재라는 사상, “인종도 민족도, 신분도 능력의 차이도 상관없이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다”는 사상만은 길이 살아남았다. 예수 사상은 지난 2,000년 동안 숱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대 정치에서도 좌우를 막론하고 예수 사상의, 다양한 ‘기독교 사회주의’의 영향은 막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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