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목의 변화와 연구소 해산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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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3일 02: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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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가 해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권용목씨에 대한 감회였다. 권씨와는 출범 초기 송년회를 하면서 송정 바닷가에서 조그만 배를 세 내어 새해 아침을 함께 맞았던 기억이 있다.(도피 중이던 단병호의원도 함께 자리를 했었다)

그 날 새벽 겨울 바닷바람은 매우 차갑지만 삽삽하였고 그래서 배 위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희망은 아침 햇살만큼이나 힘차고 신선한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런 권용목씨가 뉴라이트 운동의 전도사로 변한 것을 언론에서 보면서 이제 연구소가 해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연구소의 출범 이후 12년이 경과하였고 그 사이에 흘러간 시간은 단순히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기도 하였다는 감회를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이미 현대자동차의 산별전환 투표 이후 가져오던 것이었고 그것이 권씨에 대한 감회와 더불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었다.

전공이 역사인 까닭에 사물을 보는 방법이 그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내게는 강한 편이다. 역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필연의 산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고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구소의 출범과 해산을 모두 이런 필연성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싶다.

1994년 연구소의 출범은 당시 우리 사회(특히 노동운동)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고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현장과 연구와의 결합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의 조직적 발전이라는 목표가 그것이었다. 연구소는 이 두 과제를 그동안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와 현장간의 결합력은 상당히 높아졌고 올해로 접어들면서 우리 노동운동이 결국 조직발전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필연으로 본다는 점에서 연구소의 이런 성과는 그 과제가 역사발전의 법칙과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우리 노동운동은 바로 그런 역사발전에 부합하는 과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수행해 나갔던 것이다.

내가 이제 연구소의 해산을 당연한 것으로 예감하고 있었던 것도 연구소의 과제가 더 이상 역사발전의 과제도, 노동운동의 요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권용목씨에게서 보듯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변화’하였고 따라서 그 요구도 ‘변화’하였다.

이런 변화는 연구소 구성원들의 개인적 변화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변화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 노동운동은 양적인 발전 위에서 질적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였고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은 그런 변화의 필연성이 강제한 결과로 이해된다.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연구소도 이제는 새롭게 출발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고 따라서 해산은 그런 출발을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이다. 그러나 연구소의 해산을 맞는 감회는 권용목씨를 보는 마음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연구소의 해산이 새로운 출발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노동운동이 역사발전의 법칙에 부합하는 새로운 과제를 인식하고 설정해야 하지만 아직 그런 움직임이나 징후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권용목씨의 변화만큼이나 변화에 대한 치열한 인식의 노력을 우리 민주노조운동 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연구소의 해산이 기존 과제의 종결에도 원인이 있지만 노동진영으로부터의 새로운 요구가 더 이상 제기되지 않는데서 비롯된 바도 적지 않다는 점이 그것을 사실로 웅변해 주고 있다. 변증법이 역사를 움직여나가는 원리라고 믿는 나에게 변화는 인간(의식)과 외부환경(존재)간의 긴장과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노동운동이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부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런 변화가 ‘양에서 질로의 전환’이라는 점과 산별노조가 그 교두보가 되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시원섭섭하다”―연구소의 해산에 즈음한 솔직한 느낌이다. 무거운 짐을 벗는 듯한 홀가분한 느낌에 권용목씨 만큼의 분명한(?) 출발을 아직 우리 노동운동에게서 보지 못하는 서운함이 뒤엉킨 까닭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노동운동과 접촉하면서 얻은 짬밥(!)의 기억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다.

더듬거리고 가끔 헛발길도 하지만 결국은 제 갈 길을 찾아가는 능력이 우리 노동운동에게 있다는 것이 그동안 줄곧 확인되었고 이는 우리의 경험만이 아닌 나의 전공인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야할 길이 저절로 보장된 적 또한 한 번도 없었다는 것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변화는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것은 외부를 향한 투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연구소의 해산과 더불어 권용목씨의 변화를 털어내듯 우리 노동운동이 이 계기를 자신의 변화를 위한 좋은 밑거름으로 삼기를 마음깊이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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