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과 함께 지샌 진지하고 뜨거운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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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3일 0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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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연대와 실천』을 종간합니다. 더불어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14년여에 걸친 활동도 이제 마감합니다. 그동안 함께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1994년 2월 문을 열었습니다. 연구소는 우리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면서, 특히 우리 노동운동이 기업별노조 체제를 극복하고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미흡하나마 우리 연구소의 모든 구성원들은 스스로 천명한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 임열일 소장

    돌이켜보면 우리는 참으로 무모하다고 할 만한 과제의 해결을 스스로 자임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별노조 체제에서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한 사례가 전무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에 필요한 모든 이론, 정책, 실천과제들을 스스로 제기하고 답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제를 연구소의 연구위원들과 노동 현장의 현장위원들이 함께 밤새워 토론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말 그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열과 성을 다하여 이 과정을 함께 한 부산, 양산, 마산, 창원, 거제, 울산, 대구, 경주 등 지역의 모든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갑갑하고 암담하기도 했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이 적은 밑거름이 되어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한 단계, 한 단계 진전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너무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 연구소가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금속산별노조의 건설은 올해 상반기 대기업노조들의 대대적인 산별전환으로 이제 그 첫 단계 조직화의 과제를 완결해가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까지를 포함하여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고, 그 선두 주자로서 금속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공 등 여타 조직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금속의 뒤를 잇고 있음을 봅니다.

    물론 우리 누구도 산별노조 건설이 이제 성공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습니다. 지금의 산별 전환은 말 그대로 기존의 기업별노조들을 산별노조의 형태로 재편성하는 첫 작업일 뿐이며, 그것도 매우 불안한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지들은 앞으로도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서도 우리 연구소가 함께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임을 요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구소 활동을 마감하기로 한 것은 우리가 이 책임을 회피하고자 함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단지 이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의 내용과 성격, 무게를 감안할 때 지금까지와 같은 연구소의 틀 속에서는 그것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대로 우리는 스스로 낡은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틀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그 새 틀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연구소가 어느덧 잃어가고 있었던 초창기의 모습, 즉 노동문제 전문가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활동하였던 역동적인 운동성을 지금의 조건에 맞게 다시 일구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겠습니다. 우리의 이 고민이 더 무르익어 다시금 서로 손잡고 일해보자고 모든 동지들에게 힘차게 제안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임을 믿습니다.

       
     
     

    지난 12월 15일의 이사회에서 연구소는 두 가지를 결정하였습니다. 2006년 12월 호를 마지막으로 『연대와 실천』을 종간함과 더불어 연구소는 해소하며, 약간의 남은 재정과 기타 자산은 창원의 <노동사회교육원>으로 이관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틀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까지, 14년에 걸친 연구소의 활동을 정리하고 약간의 후속작업을 진행하며 이후 문제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하는 과도기적 과정은 노동사회교육원의 틀 내에서 진행될 것임을 뜻합니다.

    회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 모두를 모시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토론하여 연구소의 새 진로를 모색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연구소 사무국과 이사진의 고민과 어려운 결정의 내용은 그동안 직접 간접으로 많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앞으로 여러 계기를 통해 부산, 양산, 마산, 창원, 진주, 거제, 울산 등 우리 회원 동지들이 지금도 고군분투하는 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지역과 조직들에서 일하는 동지들도 찾게 될 것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다시 아래로부터 뜻과 의지를 모아가는 과정을 밟고자 합니다.

    회원 동지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특히 연구소 마지막을 함께 마무리해주고 있는 박장현, 이성철 두 부소장님, 허민영 실장님, 연구소의 막내이자 새 세대의 희망인 양솔규 사무국장에게 감사드립니다.

    2006년 12월 19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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