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값싸고 맛있는 노동자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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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3일 08: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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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주변 사람들이 내게 값싸고 맛있는 집을 알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뜬끔 없는 질문을 받을 때면 이른 바 대략 난감할 수밖에 없다 ^^;; 그 많고 많은 음식과 맛집 중에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 뿐더러, 물어보는 사람의 식성과 취향을 모르니 무턱대고 안내를 해준다면 낭패가 아니겠는가.

    사실 낯선 곳을 여행 하거나 방문할 때, 또 그 지역 먹거리에 대한 특별한 정보도 없고, 마땅히 먹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내 나름대로 써먹는 식당 선택 기준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관공서 주위의 음식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만약 시골이라면 안정적인 소득과 매식을 하는 집단은 대개는 공무원일 테고, 이들 공무원에게 몇 안 되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점심에 무엇을 맛있게 잘 먹느냐 하는 것일 테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해서 관공서 주변으로 음식점이 비교적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두번째는 기사식당을 찾는 것이다. 기사식당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칠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기사식당은 싸고 맛있는 집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의식은 ‘기사'(특히 택시기사)들의 특수한 노동환경과 기사들의 특성에 음식점들의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주변에 커다란 건설 현장이 없나 찾아보는 일이다. 이른바 ‘함바집’을 찾는 일이다. 이 일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돈을 아껴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좀 유익하다.

    요즘은 음식점이 대형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이 기준이 딱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하여튼 이들의 공통점은 ‘싸고’, ‘맛있고’ 게다가 ‘양 많은'(나야 소식을 하니 해당사항이 안되지만)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는 점과 이들 모두 그 형태가 어찌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식당이다.

    이번에는 기사식당을 매개로 한 자본주의 발전이 가져온 생활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공간과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 좀 말해 볼까 한다.

    기사를 위한 원스톱 토탈 네트워크

    어릴 적 살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칼국수를 전문으로 하던 ‘기사식당’이 있었다. 부모님께서 늦게 돌아오거나 하면 이 식당에 가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집에는 모시조개가 듬뿍 들어간 칼국수에 손으로 맛깔나게 비벼 내온 맛김치가 전부였는데, 조개를 하나하나 건져 먹는 재미도 있거니와 칼국수와 맛김치를 한 젓가락에 집어 후루룩 먹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엿보게 된 기사식당의 내부 풍경에는 나름 재미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여타의 식당과는 달리 몇몇 기사 분들이 모여 앉아 고스톱을 치거나 토론을 하는 모습들이였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기사식당은 한 끼니를 해결하는 곳을 넘어 기사들만의 오락과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즉 기사식당은 기사란 직업적 동질성을 기반으로한 오락, 정보의 네트워크로서 기능하지 않았나 싶다.

    기사식당이 이렇게 발전된 이면에는 (택시)기사의 노동형태가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의 다른 노동과는 달리 고립된 형태의 노동을 하는 직업인 까닭에 직업상의 필요한 정보와 동질적인 감성을 공유할 만한 마당이 필요 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사들의 노동형태와 심리적 특성을 재빨리 간파한 기사식당 ‘사장님’들이 기사들의 업무를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춤으로써 하나의 고유한 음식점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즉 가장 먼저는 차를 용이하게 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승객들에게 환전을 해줄 수 있는 잔돈 서비스, 또한 간단한 세차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등이 그것이다. 또한 식후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기사식당은 한 곳에서 기사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토탈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기사식당에 준하는 서비스는 아주 오래 전에도 있었다. 지금은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말죽거리, 노량진에 몰려 있었던 마방(馬房)이 그것이다. 말이 없이 걸어 다니던 과객들이야 주막에서 땟거리와 잠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한양 장터로 가기 위해 말에 짐을 잔뜩 실은 마부들은 자신의 먹거리는 물론 말을 먹일 쇠죽이 필요했다.

    요즘 이 마방집의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지만, 미사리를 지나 하남에 가면 ‘마방’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집이 있기는 하다. 이 집의 된장찌개와 석쇠불고기는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하여튼 그곳에 가면 한 푼이 아쉽고 배고픈 마부와 말이 머무르던 옛 마방의 희미하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겠다(지금은 꽤 비싼 집이다).

    자동차의 발달과 기사식당

    이런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기사식당을 ‘맛있는’ 집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 그 부족함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고리는 아무래도 자동차의 영향일 듯싶다.

    자동차라는 교통수단은 기사들의 공간적인 영역을 크게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신속한 이동을 가능케 했다. 70~80년대 초 자동차가 희귀했던 시절, 기사들은 주어진 공간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선택을 해야 했던 다른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그 만큼 선택의 폭이 넓었던 것이다.

    즉 일찌감치 기사는 혀끝으로 맛을 느끼고 음식을 선택할 수 있었던 자유(?)가 보장된 직업인 셈이다. 더구나 이 시기 자동차를 몰 수 있었던 ‘기사’는 노동자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특권’을 가진 노동자가 아니었던가?

       
     ▲ 한상 가득한 상차림이 단돈 오천원. 정말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 맛이 없다면 다른 식당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기사식당 대부분은 안정적인 경영을 위한 백화점식 메뉴가 아니라 한 두가지로 승부하는 전문점의 형태를 띄게 된다는 점이다. 기사식당으로 유명한 남산과 성북동의 왕돈까스, 역삼동의 북어집, 잠실의 김치찌게집, 북한산의 순두부집 등 대부분이 한두가지 음식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동차의 보편적 보급은 기술을 가진 장인으로서 기사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하락시켰고 또한 기사식당의 성격 역시 변화시켰다. 유명한 기사식당들은 그 옛날 기사들이 누렸던 자유를 즐기려는 식객들로 넘쳐나는 한편 기사식당의 그 ‘명성’에 편승하려는 많은 음식점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 여론의 메신저 택시기사?

    여담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여론을 알려면 ‘택시기사’에게서 들으라고 얘기들 한다. 제한적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면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여론의 전파자로서 역할은 그 옛날만큼은 아니지 싶다. 즉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노동 환경과 기사식당란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되고 단련되었던 소양들이 기사식당의 고유한 역할의 축소와 더불어 약화되고 있다고나 할까?

    영국의 사학자 톰슨은 ‘계급은 교육과 사회체험에 따라 형성되는 역사적 존재’라며, 그렇게 형성된 문화는 계급적 동질감과 다른 집단과의 차별성의 보이는 실체라는 점을 말한 바 있다. 너무 비약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기사식당’이란 공간은 ‘맛’과 ‘자동차’를 통해 그렇게 택시 노동자를 동질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였던 일종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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