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법은 통과되고 그들은 소주집으로 갔다
    By tathata
        2006년 12월 22일 07: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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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끝입니까? 뭐 없습니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직 예약한 전세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습니다. 오늘 저녁 늦게까지 집회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1시간만에 끝나니 좀 당황스럽습니다.”

    22일 오후 4시 국회 앞 풍경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재석의원 167명 중 찬성 152명, 반대 10명으로 통과되자, 조합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멍’하다”는 사무금융연맹의 한 조합원은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지 못하고 동료들과 술을 마시러 갔다.

    계획대로라면  총파업의 불이 타올라했던 날이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아주 조용한 집회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투쟁의 현장이 아니라, 여의도 주변의 소주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패배했다"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노동법이 개악됐는데도 이렇게 조용하게 끝나다니…”라며 말끝을 흐렸다. 누구를 향한 비판이라기보다 깊은 자책의 말로 들렸다. 그도 함께 온 동지들과 술자리로 직행, 쓰디쓴 소주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랬다. 전투가 끝난 전장에는 패자의 회한만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에 조합원 5백여명이 참가한 ‘노동법 개악저지, 비정규날치기법 무효화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동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는 긴박한 시점이었지만, 긴장감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된 22일, 민주노총은 조합원 5백명이 참가한 집회를 개최했다.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가 많은 투쟁을 했는데, 왜 안 될까, 정말 왜 안 될까 생각했다. 먼저 850만 비정규직의 요구와 80%가 넘는 정규직을 가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요구가 가슴으로 일치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연맹의 요구와 총연맹의 요구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라고도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대, 기아, 쌍용차가 한 달을 파업해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해야 한다”며 “다시 파업할 때는 철도와 발전을, 현대차와 기아차, 금융과 모든 조직을 멈출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 4시 5분. 국회 모형을 본 뜬 구조물의 화형식이 시작됐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순십간에 모형을 불태웠고, 곧바로 집회는 끝이 났다. 민주노총은 지난 11월 15일부터 전면 총파업과 전 간부 상경투쟁 및 노숙투쟁, 위원장 단식농성 등 강경투쟁으로 맞서왔지만, 막상 법안이 통과되는 이날은 이처럼 쓸쓸하고도 허탈한 마무리를 맺었다.

    가슴 속에는 풀리지 못한 맺힌 무엇이 있었지만, 그것은 분노로, 행동으로  표출되지 못했다. 상경한 간부들의 표정은 오랜 투쟁으로 인해 지쳐있는 듯 보였다. 그들은 국회 밖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미 받아들인 듯 했다.

    민주노총의 핵심 관계자는 “이미 싸움이 정리가 다 되어가고, 총파업도 더 이상 어려워 물리적인 충돌을 벌인다는 것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자 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금속을 제외한 다른 연맹의 투쟁동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총파업 지침을 내리기에도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필수공익 사업장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파업은 금속연맹의 대리전을 넘어서기 힘들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빠져나간 여의도 집회장소에는 화형식의 검은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9월 11일 노경총 합의부터 석달동안 과연 민주노총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무엇을 남긴 것일까. 사람들이 빠져나간 국회 앞에서 내내 머리를 맴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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