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혹 우려스런 노동계 일각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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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2일 06: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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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발표된 우리은행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 사회적 확산 주목’에서부터 ‘비정규법 현실 적용에 긍정적’ ‘2류 정규직화는 고민할 과제’까지 다양하다. 서둘러 환영 입장을 밝힌 조직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완전한 정규직화’이기 때문에 논평 내기를 꺼려하는 조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차별철폐 투쟁하는 노동자들 노력 헛되게

    ‘임금 동결’이라는 정규직노조의 과감한 결단에도 불구하고 20일 발표된 우리은행 정규직화 계획은 ‘비정규직 철폐’ ‘차별철폐’를 주장하고 투쟁해 왔던 노동자들의 노력을 헛되이 만드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쌍수들어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어 <레디앙>에 기고하게 됐다.

    우선, 임금을 동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한 정규직 노조의 결심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은행은 2004년 1조9천억원을 비롯해 2005년 1조4천억원, 2006년 상반기 84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는 8,000여명 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3,100여명의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언론의 관심조차 못받고 있는 800여명의 파견노동자들이 일궈낸 땀의 결실이다. 그렇기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동결’ 선언은 그 결과를 떠나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라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빛을 발한다고 본다.

    분리직군제는 황영기 행장의 고육지책일뿐

       
     ▲ (사진=노동넷)
     

    하지만 정규직노조의 동의나 임금동결이 없었더라도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은 차별직군제를 도입했을 것이다. 지난 11월 강행처리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일명 ‘기간제법’)이 시행되는 2007년 7월 즈음에는 3,100여명에 달하는 비정규직들을 정규직화할 건지, 아웃소싱할 건지, 2009년 7월 전에 해고할 건지 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창구텔러, 고객만족, 사무지원직군의 인력들이 급작스레 대량해고되거나 2년 주기로 교체된다면 은행업무의 연속성이나 생산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황 행장이 정규직화, 더 정확하게는 분리직군제를 선택한 것은 ‘정규직화 의지’가 아닌 기간제법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임금, 승진 차별 해소 계획 없어

    또다른 문제는 우리은행의 정규직화 계획이 불완전한 정규직화이자 차별을 고착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차별직군제라는 것이다. 황영기 행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별도의 직군제로 분리되는 여성비정규직들의 처우가 점차 개선되도록 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우리은행 사측은 올해 초부터 비정규인력 제도 개선을 위한 TF팀을 운영해왔고 9월경「계약인력 인사제도 개선안」(이하 ‘개선안’)이라는 문서를 제출했다. 이미 언론에 발표됐듯이 3,100명의 비정규직들은 텔러(창구), 고객만족, 사무지원 등 기존의 정규직과는 별도의 직군으로 관리한다는 내용이 개선안에 포함돼 있다.

    개선안 7쪽을 보면, 텔러행원 1년~18년차는 행원⇒계장⇒대리 등 자동 승진되지만 과장급은 19년차 이상된 자 중에서 선발하고 그 이상의 승진은 없다. 20년이 됐든, 30년이 됐든, 정년까지 만년 과장인 셈이다. 선발이 안 되면 만년 대리일 수도 있다.

    임금도 기존 정규직과는 달리 개별연봉제로 운영되며, 현재 정규직의 40%인 임금수준의 개선도 요원하다. 매년 비정규직 임금 인상율을 정규직 인상율의 두 배로 할지라도 해가 갈수록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반쪽짜리 정규직화’는 차별을 개선하기는 커녕 구조화하도록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상시 필요 인력’에 대한 고용보장은 당연

    “그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하는 최우선 과제인 계속고용이 보장된 것만도 큰 성과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맞다. 큰 성과이다. 그러나 그 성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온 것 뿐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황영기 행장이 기간제법 때문에 할 수 없이 ‘반쪽짜리 정규직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3,100여명 비정규직들의 업무가 파견직이나 2년마다 인력을 교체해도 되는 ‘비상시적인 업무’가 아니라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력을 위해서라면 ‘상시 필요 인력의 업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빼앗겼던 권리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분리직군제는 여성차별직군제

    노동부가 여성노동자들로만 구성된 하나은행의 FM/CL직군제가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성차별적 제도라며 개선을 지시했지만 하나은행은 차별직군제를 개선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도 FM/CL직군제와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제도이다. 혹시 우리은행이 남성텔러를 몇 명 채용한 후 “텔러직군에 남성도 있다”고 주장할 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호박에 줄긋고 나서 수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은 기간제법 강행처리를 전후해 사무금융연맹 소속 사업장에서 발생한 두 가지 사례다.

    2003년 서울보증보험에서 분사한 SG신용정보는 3년 동안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노사간 협의를 해왔다. 2006년에 이르러서야 비정규직 170여명에 대해 정규직화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는데, 기간제법이 강행처리되고 나서 사측은 그동안 진행된 논의를 무시한 채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SG신용정보 비정규직 노동자와 노조는 완전한 정규직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간제법 때문에 반쪽짜리 정규직으로 전락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은 기간제법이 통과되자 18명의 비정규직(운전기사) 중 계약기간이 2년이 안된 5명에 대해 재계약을 거부했다. 나머지 13명은 3~12년차 비정규직이며 재계약이 거부된 적 없이 반복갱신해 왔다. 한국은행은 한 술 더 떠 계약해지 대상자들에게 “운전직을 점차 외주화할텐데 용역계약에 동의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기간제법이 1~2년차 비정규직의 재계약을 막고 파견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구실을 제공한 것이다.

    기간제법 차별 고착화, 파견직 확산, 2년미만 해고 유도

    이와 같이 사용사유를 제한하자는 노동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노무현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기간제법 등 비정규악법은 가뜩이나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분리직군제(차별직군제)를 통해 차별을 받거나, 파견직으로 전환되거나, 2년이 넘기 전에 해고 당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우리은행같은 정규직 전환 바람이 은행권만 아니라 보다 많은 사업장에 확산되길 기대한다”는 일부 노동계의 주장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위험스럽기까지 하다. ‘온전한 정규직화’ 논의를 가로막고 대다수 비정규직들을 차별직군제로 가둬놓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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