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이슬, ‘공안당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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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2일 06: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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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일심회’ 사건 관련 구속자들의 재판에 다녀온 후 <레디앙>에 실린 참이슬의 독자투고를 읽고 이 글을 보낸다. 책임있게 실명으로 쓴 것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칠까도 생각했지만, 그의 글을 읽고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참이슬은 ‘다함께’가 “민주노동당의 중요 정보를 북한 공작원에 보고(=간첩죄)하며 조선로동당의 이익을 위해 행동(=이적행위)하는 것도 ‘주체사상’에 기반한 행동이므로, ‘사상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용인해야 한다는 경악스러운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갖는 것은 용인해도 “조선로동당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적행위)”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세력 색출을 구실로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에 반대할 수 없다는 얘기와 똑같다.(괄호는 필자)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저항 이데올로기의 일부임을 인정한다면, 누구든 국가의 단속과 탄압 없이 자유롭게 사상을 표명하고 실천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 사상과 실천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논쟁할 자유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이정훈 동지는 어제 모두진술에서 “소위 NL 중에도 주사파도 있고 ML파도 있고 그냥 비주사파도 있습니다. 또한 주체사상파 중에도 주체사상의 일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동시에 북에 대한 입장도 공식, 비공식 직접 관계를 맺어도 좋다는 입장도 있고, 이것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어, 사람과 그룹마다 견해가 다양합니다” 하고 말했다.

    설사 주체주의 사상을 품고 그 사상에 따라 북한 지배자들과 협력하고 지도받는 것이 남한의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활동가가 있다 해도 그것은 우리 운동 안에서 토론하고 검증할 일이다.

    ‘일심회’ 구속자들을 방어하기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일심회’ 사건은 사상의 자유와는 무관한 일이고 자신들은 ‘간첩’ 행위만 문제 삼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지난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역대 정권이 저지른 수많은 주체주의자들 탄압에서 공안기관은 언제나 ‘간첩’ 혐의를 들씌우기에 혈안이었다. ‘영남위’ 사건 때도 그랬고 ‘민혁당’ 사건 때도 그랬다. 어제 열린 ‘일심회’ 첫 재판에서도 검찰은 “시대착오적이고 객관적 시각이 결여된 사고로 편향돼 국가 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피고인들의 사상 자체를 문제 삼았다.

    ‘간첩 행위와 사상의 구분’ 운운하는 것은 ‘일심회’ 구속자들을 방어하지 않으려는 군색한 변명일 뿐이다.

    한편, 참이슬은 이정훈, 최기영 동지가 이른바 ‘간첩’ 행위를 했다는 검찰의 공소 내용을 기정사실인 양 말한다. 그러나 이정훈 당원은 법정에서 “저는 간첩죄와는 무관하며 또한 이 사건 공소장의 중심 근거인 소위 장민호 파일도 상당 부분 사실과 다릅니다”, “저의 민주노동당 활동이 북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저의 정치적 신념과 판단에 따라 움직였고 이는 정당한 정당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다.

    함께 활동하던 구속 동지들의 말은 조금도 믿지 않고, 온갖 조작, 왜곡을 일삼으며 운동 진영을 탄압해 온 국정원과 검찰의 발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구속 동지들을 물어뜯고 ‘마녀 감별사’를 자처하고 있으니 참이슬이야말로 과연 누구 편이냐고 묻고 싶다.

    사실, “조선노동당(이) … 남한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배후조종”했다는 참이슬의 주장은, 우리 노동자, 민중 운동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안당국의 주장과 흡사하다. 또, 주체주의 활동가들을 무슨 반동적 집단인 양 비난하는 참이슬의 태도는 뉴라이트나 우익들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일보>의 류근일도 최근 “좌파 진영(은) … NL적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민주 사회에 적합한 진보파로 거듭나라”고 역겨운 소리를 지껄였다.

    참이슬은 이정훈, 최기영 동지가 민주노동당 주요 당직자들의 신상정보를 북한 당국에 보고했으니 진상조사를 해야 하는데 ‘다함께’가 진상규명을 방해한다며 지금 당장 “진상조사에 협조하라”고 요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상조사 요구는 정신나간 짓이다.

    백보 양보해서 구속자들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주요 당직자들의 신상정보를 북한 당국에 알렸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검찰이 우리 운동 내 정보 ‘유출’을 문제 삼는 것은 구역질나는 위선이 아닌가? 도대체 언제부터 공안당국이 우리 운동의 ‘기밀’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됐는가? 우리 운동의 정보와 진보진영 인사들의 신상을 캐내 탄압하는 게 일상 업무인 공안당국이 민주노동당 정보 유출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이다.

    참이슬은 “외부 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의해 민주노동당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침해당했다”며 구속 동지들을 비난했는데, 지금 진정으로 민주노동당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최악의 외부세력은 국정원, 검찰이 아닌가.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진지한 활동가라면 구속자들을 운동 내 ‘북한 첩자’로 묘사하며 우리 운동을 이간질하려는 공안당국부터 먼저 비난해야 할 것이다.

    참이슬은 ‘그래서 자체 진상 조사하자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진상 조사를 할 것인가? 구속자들이 묵비권 행사를 중단하고 공안당국에 모든 것을 자백해야 하나? 그것은 곧 공안당국에 우리 운동의 정보를 알려주고 스스로 처벌받으라는 말과 똑같다.

    그것이 아니라면 당내 진상조사단이 구속자들을 접견해 조사를 벌여서? 접견 내용을 모두 받아 적어 검찰에 보고하는 교도관의 입회 하에서만 접견할 수 있는데도?

    진상 조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철퇴를 이용해 진상 조사할 생각이 아니라면, 진정 공안당국의 외압으로부터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당내 자체 진상 조사를 하고자 한다면 구속자들의 석방을 외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참이슬은 ‘일심회’ 구속자들을 방어하는 ‘다함께’에게 “지금 당장 ‘주사파’와의 야합을 중단”하라고 한다.
    이것이 참이슬을 비롯한 ‘방어 거부론자’들의 진정한 문제다. 마녀사냥에 맞서면 곧 마녀로 찍힐까 봐 탄압을 묵인, 방조하게 만들고, 운동 진영이 마녀사냥에 위축돼 너도나도 "나는 마녀가 아니"라며 ‘마녀’에게 돌팔매질하게 만들어 운동을 분열시키고 마침내 분쇄하는 것이 바로 공안당국의 진정한 노림수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파주의에 눈이 멀어 오히려 구속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공안당국을 도와주는 짓이며 운동에 끔찍한 해악을 끼치는 짓이다.

    바로 그 점을 이해했기 때문에, ‘다함께’는 주체사상에 전혀 동의하지 않음에도 주체주의자들이 탄압받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것이다. 볼테르의 말처럼, 나는 주체주의자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들의 사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결단코 그들 편에 설 것이다.

    이번 ‘일심회’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기는커녕 호시탐탐 우리 운동을 겨냥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

    참이슬의 왜곡과 달리 ‘다함께’는 “(북한 체제와 관료에 맞선) 저항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함께’는 북한을 자본주의의 한 변종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 보고, 북한 관료 지배계급에 맞선 아래로부터 저항을 지지한다. ‘다함께’는 주체주의자들과 달리 탈북자를 방어해 왔고, 개성공단에서 노동 착취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차이 때문에 주체주의자들에 대한 국가 탄압에 동조할 만큼 분별이 없진 않다.

    ‘공안 당국과 함께’ 할 생각이 아니라면, ‘주사파’까지 포함한 운동 진영 전체가 힘을 합쳐 마녀사냥을 좌절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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