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의 묵인
    By tathata
        2006년 12월 22일 0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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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구조조정이 휩쓸고 간 이후 노조의 조직력은 겉잡을 수 없을만큼 산산이 부서졌다. 조합원들은 파업으로도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한 노조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으며, 민주노조는 존립기반마저 위태롭게 됐다.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어용노조’는 조합원들의 통제를 벗어나 ‘자발적 복종’을 강요했다.

    코오롱노조가 지난 21일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경북 구미공장에서 열린 노조 조합원 총회에서 코오롱노조는 조합원 799명 중 790명이 참가해 95.4%인 754명이 ‘상급단체 가입 조항을 삭제하는 규약 변경의 건’을 가결시켰다.

    회사 구조조정 성공은 노조 조직력까지 타격 줘

    코오롱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지난 2004년 GS칼텍스노조, 그리고 최근 대림산업건설노조에 이어 세 번째. 코오롱노조는 2005년 2월 1,430여명 가운데 431명을 강제 희망퇴직시키고, 이어서 78명을 정리해고 시켰다.

    이에 앞서 코오롱 노조는 지난 2004년 회사의 아웃소싱 계획에 반대해 64일간 파업을 전개했고, 회사측으로부터 “더 이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코오롱은 단협을 깨고 이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리해고자 명단에 포함된 최일배 현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정투위) 위원장이 지난해 7월 임원선거에 당선됨으로써 논란은 확산됐다. 당시 선거에는 현재 코오롱노조 위원장인 김홍열 위원장도 출마하여, 최 위원장이 50.4%의 찬성률로 당선됐다.

    그러나 사측은 최 위원장이 정리해고자라는 이유로 그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에 코오롱정투위는 ‘부당 정리해고 행정소송’, ‘코오롱노조 선거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코오롱정투위는 구미공장과 청와대 앞 고공농성에 이어 이웅렬 회장 자택 침입 및 자해소동, 단식농성 등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며 원직복직을 요구해왔다.

    문제는 김홍열 코오롱노조 위원장이 당선되는 과정에서 회사의 지배개입이 만성적으로 벌어졌다는 점. 정투위 측의 주장에 의하면, 지난해 7월 선거에는 사측이 조합원에게 날인한 투표용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제출하게 하거나, 회사의 관리자가 투표함 앞에서 지키고 서서 날인 여부를 확인한 다음 투표함에 제출하게 했다는 것이다.

       
    ▲코오롱정투위 해고자들이 지난 5월 청와대 앞 건설현장의 크레인에 올라가 "노무현 대통령님 코오롱 해고자는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가 현수막을 펼치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의혹이 불거지자 코오롱노조는 지난 7월 재선거를 실시했으나, 후보등록 절차도 생략된 채 김홍열 위원장의 단독출마로 찬반투표만을 물은 채 진행됐다. 최근에는 황일섭 정투위 부위원장의 결혼식에 참여한 3명의 조합원이 “정리해고자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회사에 시말서를 써야만 했다.

    정리해고자 결혼식 참석했다고 시말서

    코오롱노조의 김아무개 사무국장은 지난해 7월 노조 선거 당시 대구의 모 단란주점에서 회사의 법인카드로 선관위원과 일부 조합원들에게 680만원어치의 술값을 계산해 현재까지도 검찰의 불구속 정식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김홍열 위원장은 또 지난 2004년 파업을 주도한 전직 지도부를 조합원에서 제명시켰으며, 회사는 이들을 포함하여 150여명을 김천, 경산공장으로 전보배치 발령을 내렸다.

    정투위에 따르면 사측이 노조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며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물론 투표과정에서도 투표용지를 검열할만큼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합원들도 현 노조의 이같은 행위를 ‘묵인’하는 분위기다. 폭풍과 같은 구조조정이 물러간 뒤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는 조합원들은 노조활동 자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또 혹여나 ‘반(反) 노조행위’로  회사에 찍히지는 않을까하며 노심초사하는 조합원도 있다.

    회사, 투표 용지까지 검열 

    익명을 요구한 코오롱노조의 한 조합원은 “지난 2년여 기간동안 겪은 일로 조합원들은 노조에 더 이상 기대하는 것도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눈치 보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오롱정투위가 바깥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데, 도와주고도 싶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구조조정에서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다”며 "가슴이 많이 아프고,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지만 가족들 때문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원들은 노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반대하면 회사로부터 ‘잘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노조에 숙이고 들어간다”며 “그같은 결과로 이번 94.5%에 이르는 압도적인 찬성이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묵인 속에서 코오롱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이뤄진 것이다.

    한편, 코오롱노조는 상급단체 탈퇴 이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며, 앞으로 조합원들의 복리후생에 더욱 힘쓴다는 계획이다.

    송필섭 코오롱노조 교선부장은 “2004년 파업 당시 회사측과 타협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강경한 방침으로 밀고나가서 피해만 입었다”며 “노조는 돌아오는 것 없이 민주노총에 끌려다니기만 했고 이용만 당했다”고 말했다. 송 부장은 또 “상급단체 납부금을 이제 조합원 경조사비와 자녀학비보조금에 쓰는 등 조합원들의 실질이득을 보장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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