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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집, 의미를 찾아가는 고독한 여정
    [컬렉터의 서재] 담배꽁초, 사인과 지계 한 장의 의미
        2021년 12월 03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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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의 세계는 고독하다. 거기에 들이는 시간이나 비용보다 수집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의 냉소적인 시선이다. 그들은 늘상 내게 묻곤 한다.

    왜 그런 쓸데없는 것을 모으냐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수집하는 것들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별로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일 모두가 실용적인 것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옛날 유물들을 가득 모아놓은 박물관은 무슨 소용인가?

    그 재원으로 반도체, 2차 전지 만드는 공장을 하나 더 짓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번 글은 컬렉터가 왜 수집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답이다. 모든 컬렉터로 일반화하기 힘들다면 적어도 나에게 수집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컬렉터에게 수집이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교과서에도 실려 잘 알려진 김춘수 시 ‘꽃’의 일부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대상을 인식하기 이전에 ‘그’는 의미 없는 무수한 사물들 중 하나였지만, 내가 대상을 인식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는 ‘나’에게 ‘꽃’이라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수집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유물과 그림, 문서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그것은 그저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이다. 이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를 수집에 적용하자면 ‘의미부여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과거의 자료 더미에서 먼지를 털어내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자료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다가와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다. 사물 속에서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다음 예들을 통해 살펴보자.

    먼저 담배꽁초 이야기다.

    2017년 10월 미국 경매회사 RR옥션에서 시가(cigar) 꽁초 하나가 인터넷 경매에서 1만 2000달러(당시 한화로 약 1350만원)에 낙찰된 일이 있다.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담배꽁초에 금을 발랐나. 무슨 담배꽁초 하나가 1000만원을 넘느냐고.

    [사진] 처칠이 버린 담배 꽁초가 1만 2000달러에 낙찰되었다는 언론 보도(왼쪽)와 쿠바산 시가를 피우는 처칠의 모습(오른쪽)

    담배꽁초가 그런 고가에 팔린 이유는 그것이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피우다 버린 담배였기 때문이다. RR옥션에 따르면 처칠 전 총리가 지난 1947년 5월 11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르부르제 공항에서 이 시가를 피우고 이를 공항 재떨이에 버렸는데 당시 영국 공군 하사였던 윌리엄 앨런 터너가 이 시가를 수거해 보관해 왔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와 사연 때문에 이 담배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윈스턴 처칠이라는 인물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물건이 쿠바산 시가이기 때문에 경매에 나온 그 담배꽁초는 단순한 꽁초가 아닌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시가 사랑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의 손에는 항상 시가가 들려 있었다. 집에서 처칠이 시가를 손에 들기만 해도 고양이가 성냥을 물고 왔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가하면 제2차 세계 대전 때 처칠의 단골 담배 가게가 폭격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날 새벽에 주인이 바로 수상 관저로 전화를 걸어서 “수상께서 피시는 시가의 수량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처칠은 담배를 피울 때 재가 떨어질 듯하면서도 결코 떨어뜨리는 법은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처칠이 연설할 때마다 모여들어 연설도 연설이지만 담뱃재가 오늘은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를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보통의 담배꽁초가 의미 없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이라면, 윈스턴 처칠이 피우다 버린 사연을 담고 있는 담배꽁초는 우리에게 다가와 ‘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매에 나왔던 그 담배꽁초는 그만한 가격에 낙찰됐던 것이다. 처칠이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는 이전에도 몇 번 경매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2010년에 4500파운드(당시 한국돈 840만원), 2006년도에는 365파운드에 낙찰된 바 있다.

    쓰레기는 어떻게 역사로 변할 수 있었던가? 이 신기한 마술이 일어난 것은 그 담배꽁초 속에 윈스턴 처칠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묵직한 무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만 2천 달러라는 낙찰 가격은 꽁초 가격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역사의 가치인 것이다. 그 속에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수상과 그 시대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대양에서도 싸우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영국인들에게 외쳤던 처칠의 체온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 담배꽁초는 아울러 희망과 용기를 환기시킨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닌 처칠의 것이므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타의 담배꽁초와 아무런 차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례이다.

    나의 저서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에서 한 장(章)으로 다룬 적이 있는 손기정의 사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이 사인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지 3일 후에 현지에서 해 준 사인이었다.

    [사진] 위는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직후 현지인에게 해 준 사인지(박건호 소장), 아래는 시상식에서 고개 숙인 챔피언의 모습으로 가운데가 손기정, 왼쪽이 동메달을 딴 남승룡이다.

    손기정 선수의 사인은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작고할 때까지 아마 수천 장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직후 민족적 정체성을 시위하듯 자신을 “Korean”이라고 쓰고, 이름도 일본식 이름 ‘Kitei Son’이 아니라 한글로 “손긔졍”, 또 영어로 “Kichung Son”이라고 쓴 사인이 그 중 가장 의미 있는 사인일 것이다. 이 사인을 통해 우리들은 시상식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금메달리스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인이야말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이어지는 민족 수난사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는 손기정을 가장 손기정답게 증명하는 사인인 것이다. 이 사인이 여타의 손기정 사인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우리 모두는 컬렉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컬렉터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자료들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 때문에 수집한다. 그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고 찾는 긴 여정이 바로 수집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수집을 하다 보면 그 수집품은 그것이 담고 있는 고유한 의미도 의미지만, 그 수집과정에서 겪었던 마음 졸임과 슬픔·기쁨 의 감정까지 곁들여져 하나의 의미 체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컬렉터들의 컬렉션은 그 나름의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가지게 된다. 컬렉터의 수만큼 컬렉션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결코 끝나지 않을 자기 나름의 컬렉션 생태계의 완성을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공(功)을 들이기 때문에 컬렉터는 자신의 컬렉션에 지극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이런 애정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끈끈하다. 컬렉터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자신의 수집품들과 헤어지는 장면을 묘사한 다음 글을 보자. 뭔가 짠한 느낌이 들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그 남자에게 컬렉션의 가치에 대한 내 생각과 예상 가격을 말해주었다. 협상을 조금 해야겠지만 쉽게 흥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의 반응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도 심리적인 동요가 컸다. 완전히 무너진 것 같았다. 그는 계단 맨 아래에, 토머스 제퍼슨이 서명한 작은 문서 아래에 놓여 있던 자그마한 나무 의자에 거의 주저앉다시피 했다. 한숨을 쉬었고 멍하니 앞쪽을 바라보았고 의자 속으로 푹 꺼져 들어갔다.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가 그 순간에 휩싸인 감정은 내가 그와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가 사랑하는 어떤 것, 아무리 높을 가격을 불렀어도 부족했을 어떤 것에 가격을 매긴 것이다.

    내 제안은 아주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다. 나는 그가 그런 막막함을 느낀 것이 컬렉션에 많은 돈을 들였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평생 그 문서들을 수집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우리는 가격에 합의했고 그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내게 화난 것도 아니었고 그저 공에서 바람이 빠진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이 쪼개졌다. 그의 아내가 나를 옆으로 잡아당기더니 말했다.

    “남편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이것들을 아끼기 때문에 저러는 거예요.”

    나는 각 문서를 벽에서 떼어내어 내 차에 실었다. 그곳을 떠나기 전에 몸을 돌려 그 텅 빈 벽을, 물건들이 있던 먼지 묻은 창문들을 바라보았다. 그 아래, 아무 문서도 없는 벽 아래 놓인 의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계속 멍하니 앞을 바라본 채로.

    네이선 라브· 루크 바, 김병화 역, 『역사 사냥꾼』, 에포크, 2021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장면이 이보다 더 애틋할까? 컬렉터이자 자료 중개상인 저자 네이선 라브는 수집품을 매도하는 ‘그 남자’의 상심이 너무 커서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적었다. 컬렉터라면 자신의 수집품과 헤어지는 저 ‘남자’의 슬픔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컬렉터에게 자신이 수집한 물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수집품이 담고 있는 역사도 중요하지만, 컬렉터에게는 그 자료들을 수집하며 겪었던 사연들과 우여곡절까지 그 수집품에 더해지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위 인용문 속의 저 심장이 쪼개진 ‘남자’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가? 혹시 저 남자가 정신병적이거나 과도한 집착으로 보이지는 않는가? 컬렉터와 수집품의 헤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가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런 애착의 마음을 다 가지고 있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은 누구나 쉽게 버릴 수가 없다. 그것들과 헤어지기 위해서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보라. 오랫동안 타던 차를 폐차하기 직전에 소회를 담은 글들이 넘쳐날 것이다. 심지어 조선시대 ‘조침문(弔針文)’에 빗댄 ‘조차문(弔車文)’이라는 글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폐차 전날 그 차 안에서 잤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도 올라와 있다. 왜 사람들은 고철 덩어리로 전락할 낡은 차 앞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그 차에 가족들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차와 이별하면서 이 차와 함께 했던 가족들의 추억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지 그 차의 재물적 가치가 아까워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짜장면이 항상 맛있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짜장면이 맛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짜장면은 모두가 가난했던 50년대∼70년대 보상과 위로의 음식이었다. 그래서 짜장면이 칭찬, 위로, 사랑과 연결되고 그때의 기억을 호출하기 때문에 맛있다는 것이다.

    TV에서 우연히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서울 충무로에서 잘 나가는 쭈구미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에게 피디가 물었다. 주방에 겹겹이 쌓여있는 낡은 양은 냄비를 가리키며 이건 왜 보관하고 있는지를. 가게 사장의 대답은 이랬다.

    “40년 된 이 양은 냄비 못 버려요.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거든요.”

    자신의 수집품과 헤어지면서 심장이 쪼개진 수집가의 심정과 동일하지 않은가.

    올해 초 나는 ‘TV특종! 세상에 이런 일이’란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프로는 엉뚱하고 괴이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주로 출연하는 프로였다. 나는 전화를 준 작가에게 정중히 사양했다. 왜냐하면 내가 거기 출연하면 수집하는 나의 일들이 뭔가 괴이하고 엉뚱하고 이상한 일로 희화화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집하는 이들 대다수는 괴이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쭈구미 가게 사장에게 양은 냄비가, 폐차를 앞둔 차 주인이 그 차에 얽힌 추억 때문에 이별을 힘들어하는 것처럼 컬렉터에게 수집자료들도 그런 것이다. 그에게는 역사를 좋아하고 의미를 찾아내고 부여하는 일에 남보다 더 관심이 많고 애정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뿐이다. 그들은 오늘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컬렉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찾고 수집하는 고독한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도 아니며 그들의 취미 역시 기이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삶과 추억과 인생과 가족과 역사를 사랑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편견을 거두어 주시라.

    김덕홍 지계, 귀하신 몸이 되다.

    수업 시간에 대한제국의 광무개혁을 설명할 때 나는 꼭 학생들에게 ‘지계(地契)’ 문서를 보여준다. 지계는 대한제국이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해 발행한 일종의 토지 소유권 인증서 같은 것인데, 나는 모두 4장의 지계를 소장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 사람 권문쇠, 강원도 평해 사람 이수봉, 강원도 울진 사람 장병영, 역시 울진 사람 김덕홍의 지계이다. 그런데 앞의 세 장은 아무런 포장이 없는데 마지막 김덕홍씨의 지계만 비닐 포장지에 넣어 보호하고 있다.

     

    [사진] 위는 광무개혁기 지계발급 당시 토지를 측량하는 외국인 측량기사의 모습이고, 아래는 당시 발급된 지계로 왼쪽부터 장병영, 권문쇠, 이수봉이 받은 것이다(박건호 소장).

    내가 왜 김덕홍의 지계만 특별대우할까 그 이유를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그럼 학생들의 대답이 “선생님 조상님의 지계 아닙니까?”라고 답한다. 그런데 나는 강원도와 어떤 연고도 없고, 게다가 성씨조차 다르지 않은가?

    한참 뜸을 들인 후 학생들에게 정답을 말해준다.

    “이 지계가 이래 봬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귀하신 지계란다. 이 지계는 천재교육, 미래엔 등 몇 종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포털 사이트에 지계를 검색해보면 제일 많이 뜨는 이미지가 이 지계란다.”

    학생들은 놀라는 표정이다. 이때 김덕홍 지계가 실려 있는 교과서까지 펼쳐 실제로 실린 것을 보여주면 학생들의 놀라움은 배가된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묻는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계를 어떻게 수집했냐고.

    그런데 사실은 거꾸로다. 내가 교과서에 실린 지계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내 소장 지계가 교과서에 실린 것이다.

    [사진] 왼쪽 위는 광무개혁 당시였던 1903년 강원도 울진에 살던 김덕홍이 받았던 지계(박건호 소장)이고, 나머지는 각종 교과서에 실린 김덕홍 지계 이미지 사진이다.

    전후 사정은 이러하다.

    원래 나는 오랫동안 ‘박건호의 역사사랑’이라는 이름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였다. 제자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2000년경부터 10년 정도 운영했는데, 2001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권장사이트로 선정할 정도로 내용도 풍부하고, 나름 유명한 사이트였다. ‘노래와 소리로 보는 우리 역사’, ‘우표 속 우리 역사’, ‘국사수업자료’ 등의 내용과 함께 새로 수집하는 자료들을 꾸준히 올려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몇 번 해킹을 당했고 그때마다 큰 비용을 들여 여러 번 보안을 강화한다고 했으나, 그들의 힘 앞에서는 도저히 방어 불능이었다. 사이트 회원들의 정보를 빼내 이상한 광고를 보내는 일을 계기로 나는 결국 10년 만에 사이트를 폐쇄하고 말았다.

    그런데 몇 종의 국사 교과서에서 김덕홍 지계 사진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덕홍 지계 사진 말고도 제복 입고 칼 찬 교사들이 등장하는 시흥공립보통학교 7회 졸업식 사진도 그렇고 내 소장 자료들이 여러 점 눈에 띄었다. 내가 따로 사진을 제공한 적이 없으므로 내 홈페이지의 개인 소장 자료 사진들을 다운 받아 쓴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이 김덕홍 지계는 교과서에 실린 것에서 끝나지 않고 영역을 넓혀 포털 사이트에서 이미지 검색하면 앞머리에 등장할 정도로 점차 귀하신 몸이 되어버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김덕홍 지계는 이미 지계를 대표하는 전국구 스타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김덕홍 지계는 다른 지계에 없는 이런 이야기와 의미가 있으므로 스타 대접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비닐 봉투에 넣어 대우를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지계를 귀하게 다루는 것을 ‘스타 지계’에 대한 예우라고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계 한 장 수집 비용이야 싸게는 몇 만원, 비싸야 10∼20만원일 뿐이다. 김덕홍씨 지계가 아무리 유명해졌다고 해봐야 그 가치가 윈스턴 처칠의 담배꽁초에 비하겠는가? 내가 이 지계를 비닐 포장지로 감싼,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은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내 젊은 시절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열정을 쏟았던 그 시절 초보 컬렉터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 같은 것이다. 그 지계를 통해 아무런 경제적 보상과 무관하게 그냥 그 일이 좋아서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며 소통하고 방문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했던 젊은 시절의 나와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킹으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내 홈페이지에 대한 아쉬움 또한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 지계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다른 지계들은 나에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것이지만, 김덕홍 지계는 나에게 다가와 하나의 꽃이 되었던 것이다.

    * <컬렉터의 서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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