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대안인가 또 하나의 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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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2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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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 노사가 정규직 임금을 동결시키고 3,100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협약은 지난 11월 30일 통과된 비정규직 관련 입법의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주목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우선 대규모 비정규직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고용안정과 복지후생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실현했다는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주는 의견이 많다. 특히 최근 기간제법 통과 이후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아웃소싱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규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실현하였기 때문에 더욱 평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비정규입법 중 기간제 2년 제한이 주어진 상황에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3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무차별로 기간제 노동자를 갱신이나 재계약 등으로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데 비해 일단 기간제한이 두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2년 이전에 대규모 해고와 신규 채용을 하는 방법, 또 하나는 전체를 완전히 아웃소싱해서 파견이나 도급 등으로 전환시키는 방법, 세번째는 정규직 전환이다.

       
     

    은행의 입장에서 볼 때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에 대해서 대규모 해고와 신규채용을 반복할 경우 업무의 연속성이나 질을 담보하기 어렵고 두 번째 방법 역시 불법파견 문제나 파견기간 만료 후 직접 고용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과감하게 정규직 전환으로 방향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일단, 정규직 전환과 고용보장을 실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히 최소한 58세 정년의 보장, 학자금 등 복지후생 부문의 차별 해소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정규직 임금을 동결시킨 대가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시킨 양보교섭을 문제삼는 경향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규직 과보호론이나 고임금론, 정규직 책임론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MOU(경영정상화이행협정) 때문에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조건, 실제로 구조조정 이후 비정규직의 낮은 처우와 상대적 고임금을 지급받은 조건 등을 감안한다면, 한 해의 정규직 임금동결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충분히 교환할 만한 조건이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정규직화의 내용과 질이다. 지난 11월 30일 통과된 비정규입법의 내용 중 차별해소와 관련해서 재계에서는 이를 우회하는 길로서 비교 대상이 되는 정규직 전체를 배치전환하거나 별도의 직군으로 편성하여 비교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내비친 바 있다.

    차별금지는 비교대상이 되는 정규직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구체적 차별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직무나 업무 전체가 완전히 비정규직만으로 구성되거나 완전히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차별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특히 금융권은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었을 때, 여성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하는 방법을 통해 교묘하게 이를 회피한 바 있다. 우리은행은 기존의 비정규직을 입출금 창구 전담 매스마케팅직군 2,000명, 사무지원직군 550명, 고객상담 및 콜센터지원업무 고객만족 직군 550명 등 3개 직군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결국 이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하였지만 임금체계의 직군별 분리가 고착화되고 제도화되는 셈이다. 결국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직군분리에 의해 실질적으로는 좌절됨으로서 다수 여성들은 여전히 임금, 승진, 승급 등의 차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지만, 비정규직의 업무, 급여, 승진승급 등의 차별은 정규직으로 전환됨에도 그대로 가져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은행의 정규직 전환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정규직화이며, 한계를 가진 하나의 덫으로 전환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직군의 분리 고착화, 차별의 내재화로 이어진다면 정규직 전환은 노동자 의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훌륭한 시장적 방어기제가 되고 만다. 노동자 스스로도 우리는 하위직군이고 저임금직군으로 자신의 의식을 가두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전환은 기존에 비정규직으로 별도의 계급적 신분이라고 할만한 차별에서는 어느 정도 벋어나게 된다. 이미 정년까지의 고용보장과 기업복지에서의 평등한 대우는 보장받게 된다. 또 하나의 주요한 전환은 정규직 노동조합원으로의 변화이다.

    동등한 노동조합원으로서 참여하는 가운데 이제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이상 차별을 감내할 수 없고 이를 철폐해나가는 동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도 더 이상 이들을 국외자로 대할 수 없고 자신의 동료로서 대할 수 밖에 없다.

    정규직 전환이 불완전한 한계성을 가진 상황에서 차별의 분리 고착화라는 또 하나의 덫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차별철폐로 발전할 것인지는 결국 노동자의 대응에 달려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은행의 이번 합의는 하나의 시험대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실험인 셈이다.

    이 합의에 정규직 전환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과도하고 자본에 투항했다고 과도하게 패배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문제다. 한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노동자의 관점에서 보다 발전시켜 나갈 것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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