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중집의
    좌파신문 판매 금지···사상검증 결정
    [기고] 한 전교조 조합원의 항변
        2021년 11월 30일 1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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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기고 글에 대한 반론 기고 ‘노동자연대는 거짓과 왜곡, 괴롭힘을 중단하고 사과하라’

    # 2015년 4월 24일, 이경훈 당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집행부가 수천 명이 모인 집회 연단에서 ‘민주노총 울산투쟁본부 총파업 승리 지역실천단’ 단장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다. 실천단장이 이경훈 집행부의 4.24 파업(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민주노총 파업) 불참을 비판했다는 게 이유였다. ‘말’로 한 정치적 비판을 폭력으로 가로막은 폭거였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사건 발생 이후 4개월 만에,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 채 폭력을 사주한 이경훈 지부장을 징계에서 빠져나가게 해 주는 결정을 내렸다.

    # 그 뒤로 6년여 시간이 흐른 2021년 11월 18일, 민주노총 중집은 특정 좌파 단체들과 그 단체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의 정치·사상·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총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노동자 연대> 신문을 반포·판매하거나 받아보는 것을 금지하고, 노동자연대 회원을 민주노총 상근자로 채용할 시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에 속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권리이다. 그런데 이 기본권이 민주노총의 중앙 지도부인 중집 앞에서 가로막혔다.

    민주노총 중집 결정에 항의하는 모습(사진=노동자연대)

    이날 나를 포함해 민주노총 조합원 30여 명이 중집 회의장 앞에서 비민주적 결정을 내려선 안 된다고 촉구하며 항의했다. 그러나 중집은 우리의 정당한 호소를 외면하고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노동운동의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될 결정이다.

    중학교 교사

    나는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세월호 교사 선언에 참여하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는 이유로 ‘국가공무원법 위반’자가 됐고, 그 전과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10월 20일 학교를 조퇴하고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다고 했더니, ‘공무원인데 왜 민주노총을 이야기하고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며 보수적인 학부모가 민원을 넣었다.

    교사도, 공무원도 생각의 자유가 있고 그 생각을 표현할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권력자들에 의해 이런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 받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교사·공무원의 정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오래 전부터 제기해 왔다.

    민주노총의 강령은 “우리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라는 말로 시작된다. 민주노총의 기본 과제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 사상의 자유 등 민주적 제권리를 쟁취한다”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민주노총 중집이 <노동자 연대> 신문 판매를 금지하고 사상 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이런 전통에 어긋나는 이율배반이다.

    노동자연대가 무슨 범죄 집단인가? 이경훈 집행부처럼 폭력을 휘둘렀는가? 아니다. <노동자 연대>는 좌파적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변해 왔다. 민주노총 안에는 나처럼 <노동자 연대>의 입장에 동의하고, 이 신문을 지지하고, 이 신문의 주장을 들어보고 싶은 조합원들이 적잖이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중집은 조합원 개인들의 사상·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지배자들이 노동자 운동을 탄압할 때나 쓰는 무기를, 민주노총 중집의 이름으로 조합원들에게 휘두른 것이다.

    만장일치

    노동조합 안에는 다양한 사상과 견해가 존재하고, 노동운동의 진로와 투쟁 전술 등을 둘러싸고 논쟁도 벌어진다. 이럴 때, 조합원들이 자신의 견해를 내놓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충분히 보장돼야 조직은 민주적일 수 있다. 반대로 지도부의 비민주적 통제가 강화되고 민주적 토론이 제약되면,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무기인 단결과 연대도 약화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신문을 구입할지 말지 여부도 조합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다.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 활동은 고무돼야 한다. 입바른 소리 하는 좌파가 밉다고 노조 지도부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면서, 노조 지도부 자신은 정부와 사용자에게 표현의 자유 보장하라는 요구를 하면 위선의 덫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회의장에서 몇몇 중집위원들은 ‘이번 조처가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종 순간에 모두들 한 몸으로 행동했다.

    윤택근 위원장 직무대행은 추후에 문제의 소지가 없게 하려고 형식적으로 “반대 의견 없으십니까?” 하고 묻더니 만장일치 통과를 제안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동의해 줬다.

    좌파 중집위원들도 귀찮은 시비에 시달릴까 봐, 노조 상층 간부 활동에 차질이 빚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선거에서나 ‘좌파’를 자처하고 원칙에서 입을 닫는다면, 좌파는 무슨 소용인가?

    교리가 된 ‘2차 가해’

    민주노총 중집은 노동자연대의 ‘2차가해’를 이번 결정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2차 가해’는 그 부문별함과 과도함 때문에, 특히 재갈 물리기 효과 때문에,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도도, 진상을 조사하자는 요청마저도 ‘2차 가해’로 낙인 찍어서,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차 가해 개념에 비판을 제기하면, 그것마저도 ‘2차 가해’라고 한다.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면, 그마저도 보안법 위반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2019년 광주교육청이 수업시간에 성평등 영화를 상영한 배이상헌 교사를 형사 고발하고 직위 해제했을 때도 비슷했다. 당사자 소명과 사실 확인 절차도 없었다. 단지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한 교사를 범죄자로 몰고, 개인의 생존권, 그 가족의 사회적 생존권까지 박탈했다.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전교조 여성위원회의 핵심 활동가들은 배이상헌 교사가 자신의 무고를 항변하고 동료들이 그를 방어해 함께 투쟁하는 것도 ‘2차 가해’라고 낙인 찍었다.

    2020년 4월 민주노총 중집이 노동자연대를 ‘2차 가해’로 몰아 연대 중단을 결정한 것도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많았고, 정당성도 없었다. 노동자연대가 공동 진상조사를 제안하고, 무분별한 ‘2차가해’ 개념에 문제제기 하며 토론을 제안한 일이 ‘2차 가해’라는 것이었다.

    설사 노동자연대가 ‘2차 가해’를 했다손 쳐도, ‘말’일 뿐인 이견에 대해 민주노총이 이렇게 비민주적이고 터무니없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나와 함께 전교조에서 활동하는 양식 있는 동료들은 이번 중집 결정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리는 걸 보니, 중세의 종교 탄압이 생각나네요. 자신들과 교리가 다르다고 이단으로 몰아서 종교 재판으로 탄압하던 그 오만과 독단이.”

    “설령 그렇다[‘2차 가해’ 했다] 치더라도 신문을 보고 안 보고는 노동자들의 선택권인데, 중집 안건으로 올려졌다는 것부터 이해가 안 되네요.”

    “동지와 적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 광란의 시간이 지나고,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게 될 때가 올 거라고 봅니다. 기죽지 말고 원칙대로 싸워 나가기 바랍니다.”

    여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를 여성들이 존중 받는 사회로 만들려면, 권력자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고 좌파의 입을 틀어막는 데나 신경을 쓰고 힘을 쏟는다면, 차별과 억압, 착취에 맞서 단결해 투쟁하는 데 해로울 뿐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대의원. 전교조 전국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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