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의 앞잡이인가, 인민의 벗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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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0일 08: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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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관계는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잘 진행되고 있으므로 남측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잘 유지될 것으로 봅니다. 내일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한나라당의 대북정책도 화해 협력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남한 내 보수층을 잘 설득할 수 있어 현 정부보다 더욱 과감한 대북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대통령선거 하루 전,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김양건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 했다는 말이다. 김만복의 말마따나 십수 년 계속돼온 남북 교류는 남한 정권의 교체에 의해 큰 변화를 맞지는 않을 것이고, 그 관성은 확대나 강화를 향하고 있다. 두 가지만 첨언해 보겠다.

       
    ▲ 2007년 4월 개성공단의 자동차부품공장을 찾은 민주노동당 의원들 (사진=뉴시스)
     

    첫째, 이명박이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 교류가 ‘과감’하게 추진될 가능성과 함께 ‘불안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조건이다. 이미 남북 교류의 주된 경향으로 자리 잡은 경제 지원과 자본 투자가 끊기는 일 없이 지속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로 드러날 수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정치군사적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경제 지원과 자본 투자의 흐름을 끊지 않았지만, 보수층의 여론을 살펴야 하는 이명박은 정치군사적 위기 상황에서는 남북 교류를 일시적으로 통제하는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다.

    교류의 불연속성은 자본의 비가역성을 상쇄하지 못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 통제는 남한 보수 여론의 무마와 북한 정권에 대한 메시지 수준에서 제한될 것이다. 이제 남북 정권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교류의 불연속성은 자본의 비가역성을 상쇄하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 민간 교류, 정부 지원, 군사 협상을 축으로 이루어지던 남북 관계는 자본 투자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북한에 400억 달러를 투자하여 현재 700달러에 머물고 있는 북의 1인당 GNP를 3,000달러로 성장시키겠다는 이명박의 공약에 핵 프로그램의 폐기라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은 이후의 남북 관계가 철저히 경제 중심일 것임을 드러낸다.

    이런 추세는 이명박에 의해 돌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작년 10월에 있었던 노무현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이고, 1989년 발표된 노태우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그 기본 구상을 두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의 폐지가 보여주는 것은 남북 관계가 국가 간 자본 투자의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북조선은 남한 등 동북아 여러 나라의 속국이나 식민지인 ‘2등 국가’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런 구상은 아들 부시의 대북정책 기조였지만, 북의 완강한 저항 앞에 무산되었다. 북은 국가 형식의 위엄과 자존을 견지하려 할 것이고, 주변 국가들은 위험을 초래할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북조선 인민들이 이주노동자처럼 ‘2등 시민’이 될 가능성 역시 전무하다. 왜냐하면 선거권 같은 정치적 시민권이나, 복지 같은 사회적 시민권을 주지 않고도 북조선 인민을 부려먹을 방법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1953년 이후 반세기의 긴장과 대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과 남한과 북조선의 지배자들이 도달한 최적의 합의 지점은 북조선의 국토와 그에 딸린 재화, 그 영역 안의 노동력을 ‘2등 시장’으로 내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은 그 전환점에 적임자로 등장했다.

    미국과 중국과 남한과 북조선 지배자들의 합의

    “10.4 선언의 일부는 남북 합작이라는 형식을 띤 북한 조차(租借)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게다가 요즘 청와대는 남북FTA 가능성까지 흘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오래지 않은 미래에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충돌은 남북 체제 사이가 아니라, 한반도 자본주의 경제공동체 내부에서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 이재영, 「남북경협, 지금 시비 걸어야 한다」, <레디앙>, 2007. 10. 26

    지금까지 민간 통일운동 또는 대북 사회운동은 극우적인 북한 붕괴운동, 연북적인 북한 지원운동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북의 2등 시장화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그 역할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북 운동이 기승을 부리겠지만, 이명박 정권이라는 우세 행위자에 의해 묻힐 것이 뻔하다. 북한을 지원하고 교류를 확대하는 민간운동은 지난 십수 년 동안은 긴장을 완화하는 선진적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북으로 진출하는 자본의 들러리나 ‘2중대’가 될 수밖에 없다.

    반북 운동이 제국주의 군대에 앞서 침투하는 선교사라면 연북 운동은 미국 평화봉사단과 같은 꼴이다. 평화봉사단에 참여하는 미국 젊은이 개개인의 선의와 헌신이 어떠하든 그것은 미국 제3세계 연성전략의 일환으로 귀착된다.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곳에 대한 사회운동이 선교나 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는 시애틀 시위대와 같은 새로운 국제 사회운동들을 창출하고 있다. 물론 남한 자본에 저항하여 북조선 인민의 권익을 지키자는 운동이 당장 시애틀 시위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 관점, 지금 시대 진보적 통일운동에 반자본 국제연대라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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