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정책 빠진 진보정치연구소 성장전략"
        2006년 12월 21일 04: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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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개 싱크탱크의 두 번째 토론회는 진보정치연구소가 마련 중인 ‘사회연대 국가전략’ 중에서 대안적 성장전략, 복지전략, 정치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조진한 연구위원이 대안적 성장 형태로 제시하는 「사회연대적 성장모델」은, 좌파가 제시해야 할 성장의 실체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성장률 몇 %가 아니라, ‘어떠한’ 성장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과거의 자본축적형 성장이 아닌 ‘인적 자원’의 안정적 개발을 통한 하이로드(high load)형 성장이다.

    또 이를 위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왔던 노동이 경제제도에 적극 개입하여 경제를 함께 관리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는 사회연대전략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치연구소는, 이를 위한 수단으로 노사공동결정, 노동친화적 혁신, 공공 부문의 고용증대, 기업 및 자산층의 사회연대적 조세 기여 등을 제시한다.

    성은미 연구위원이 발표한 「사회연대적 복지모델」은, 노무현 정부에서 주장하는 사회투자국가와는 달리 기존의 부실하고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복지를 극복하고, 이해 관계자들의 조정을 통한 복지동맹과 연대를 기초로 한 복지모델을 구상한다. 이것의 밑바탕에는 공공부문 중심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과 현금서비스 및 현물서비스에 대한 통합적 사고가 깔려 있다.

    강병익 연구위원은 「진보정당 헤게모니 프로젝트」에 대해 논했다. 정당체제가 이념적으로 보수-진보의 대표 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이 실질적인 대표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지층 확대 전략을 넘어서 사회경제적 모델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조진한 연구원
     

    진보정치연구소는, 그동안 복지의 수혜자 혹은 대상에 머물렀던 저소득층, 여성, 비정규직과 기업복지의 배타적 수혜자인 정규직 노동계급 간의 ‘복지동맹’을 형성하여 진보적 사회개혁을 위한 토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정 토론자인 김병권(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진보정치연구소의 ‘전략’에 금융정책과 산업정책, 대외경제 전략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동혁신’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노동혁신의 구체적인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고, 혁신 성과를 기업으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전략’에는 복지 확대에 소요될 재정 충당 계획이나, ‘인적 자본’ 중심성에 걸맞는 교육 혁신안도 빠져 있었다.

    조성은(서울대 사회복지연구원)은, 국가 성격이 변하지 않으면 복지의 지속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복지 확대는 체제 변화 전략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성장론이나 사회투자적 효과론을 넘어, 행복하게 살 권리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는 제안도 덧붙였다.

    김정훈(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은, 진보정치연구소의 전략이 중앙 중심 시각인데, 정당명부제 등의 정치제도 개혁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지역을 포괄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이 성장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당은 운동단체 중 하나가 아니라 운동의 신뢰를 받는 제도적 파트너이므로 운동의 요구를 조직하는 역할을 해야지, 당 스스로 운동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김정훈은 사회운동적 정당은, 운동을 하는 정당이 아니라, 운동과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정당이라고 정의했다.

       
      ▲ 성은미 연구원
     

    청객으로 참가한 오건호(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는, 노동 숙련도가 떨어져서 경제 성장이 안 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다른 사회’를 이야기하지 않는 ‘진보적 성장 담론’은 결국 분배론일 뿐이지 않는가 하는 근원적 의문을 제기했다.

    정세윤(참여사회연구소 간사)은, 4대 보험 통합 징수에 관련한 사회보험노조의 반발, 공무원연금 문제 등을 거론하며,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복지동맹’을 관철시킬 현실적 추진력이 있는가에 의문을 표했다.

    이 날의 토론회에서는 ‘사회모델’에 대한 의견보다는 사회 변화의 실천적 계획과 관련된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김정훈은 민주노동당이, <이스크라>를 뿌리던 인쇄자본주의 시절의 당 전략에 묶여 있다며, 시민단체들처럼 지지자들에게 이메일 소식지라도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희연(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은, 경제 문제에 개입할 때도 정치적 이슈 형식을 띄어야 한다며, 보랏빛 청사진이 아니라 부유세와 같은 쟁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복지의 필요성을 펼칠 때에도 복지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를 조직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성은은, 국민 불신을 사고 있는 국민연금을 폐지하고, 대신 보편적 소득 보장체제로 가자는 식의 충격적 방안을 검토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고, 손석춘(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연대 국가전략’이 국민들에게는 고리타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대중적이고 새로운 언어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날 토론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 청객들은 노조 조직률 10%의 딜레마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유럽의 조직률 80%를 비교하곤 했다. 조직 사업을 통한 산술적 증대보다는 ‘정치’를 통한 주체 확대라는 측면에서, 진보정치연구소의 연대 전략은 옳다.

    하지만, 노동계급 안에서의 ‘나눔’이 과연 하층 노동계급을 견인할 수 있을까? 진보정치연구소의 모델은 대체로 유럽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100년 넘게 고치고 고친 유럽 복지모델도 결국 중간 소득 계층에게로 집중되고,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하층 소득자들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을 해명해야 한다. 한편, 훨씬 저급한 복지 혜택을 주면서도 하층 소득자들을 권력 기반 삼고 있는 남미의 선동적 정치모델에게서 가져올 것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장석준(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국장)은, ‘복지동맹’이 고유한 계급동맹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 계급 형성 초기인 점을 고려하면, 구체적인 계급동맹에 착수하기 어려운 것이 명백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시간의 변화는 계급동맹에 대한 고민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음을 웅변한다.

    1997년 이전이 사회 분화에 대비되는 정치 지체였다면,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가속성장은 정치에 대비되는 사회 지체일 수도 있다. 요컨대, 제도 정치에서의 성공을 통해 계급 대표성을 가지게 된 민주노동당(또는 그 후신)이 도시자영계층과 대화해야 하는 시간이 아주 멀지는 않을 것이고, 그 때 누구와 어떻게 타협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강병익 연구원
     

    지역 문제도 만만치 않다. 지역에서 이기지 못하면 궁극적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김정훈의 지적은 옳지만, 지역에서의 도전이 대단히 지리한 선택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또, 복지가 지역에서 전달된다는 사실은, 복지가 중앙에서 결정된다는 현실을 대체하지 못한다. 가장 난처한 점은 중앙이 상대적 선집합인데 비해, 지역은 악분산이라는 점이다. 장기적 정면 돌파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선택이 이미 생물학적으로 늙어가고 있는 우리 운동의 자살이 되지는 않을까?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진보정치연구소의 ‘전략’은 정치적으로만 수용되고 기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선거 이상의 선전 장(場)이나 교정(校定) 기회를 얻기는 어렵다. 진보정치연구소의 연구물이 대선에 쓰이는 데 있어 무엇이 가장 부족할까? 바로 산업이다.

    진보정치연구소 패러다임의 핵심 요소인 ‘노동혁신’ 필요성은 생산성 강화 같은 것에서 도출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자동차의 불량률이 미국이나 독일보다 더 적다는 지표는 이미 노동숙련에서는 포화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혁신은 산업전환의 수단으로서 배치되어야 하며, 이제 민주노동당의 산업 대안은 ‘전통산업’이니 ‘첨단산업’이니 하는 두루뭉실한 구분을 넘어서야 한다.

    국가사회주의가 트랙터와 전기였던 것처럼,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성숙이 자동차산업과 정밀기계산업에 조응하는 것처럼,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의료, 제약, 정보통신 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 개발독재는 중화학공업으로 과감히 이행했고, 자유주의자들은 정보통신산업과 금융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명박은 건설산업을, 김근태는 대북경제교류를 말한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어떤 산업 비전을 제시하려 하는가?

    자료집
    http://www.redian.org/bbs/list.html?table=bbs_1&idxno=318&page=1&total=108&sc_area=&sc_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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