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친 살해 ‘교제살인’이
    젠더폭력 아니라는 이준석
    정의당 “윤석열, 동의 여부 밝혀라”
        2021년 11월 22일 02: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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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날을 세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 대상 범죄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면서다. 정의당은 이러한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동의하는지 답해야 한다고 추궁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22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 선대위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이 제1야당의 상임선대위원장임을 의심케 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마치 일부 국가의 극우정당에서나 들을 법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오 대변인은 “이준석 대표의 자기 정치가 국민의힘 공식 입장인가. 윤석열 후보의 입장인지도 밝혀야 한다”며 “교제 살인을 멈춰달라는 여성들의 요구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것인지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는 분명히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이날 선대위회의에서 이 대표를 거론하며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폭력을 ‘없는 것’ 취급하는 대국민 가스라이팅”이라며 “여성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남혐’이 아니다. 여성들이 겪는 폭력의 현실을 지우는 것, 이준석 대표가 하고 계신 것이 ‘여혐’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이준석, ‘교제살인’에 고유정 사건 가져와 “젠더갈등 조장” 주장
    장혜영 “젠더갈등 조장 일등공신이…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교제 살인을 둘러싼 페미니즘 공방은 이준석 대표에 의해 비롯됐다.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교제살인이 일반범죄일 뿐 젠더 문제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다. 또 그는 젠더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동료 정치인에겐 “스테레오 타이핑”, “선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21일 페이스북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최근 벌어진 ‘교제살인’ 사건에 관한 입장이 담긴 기사를 링크하며 “선거 때가 되니까 또 슬슬 이런 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고 적었다.

    이 대표가 문제 삼은 장혜영 의원의 입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장 의원은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수차례 찌른 후 아파트 19층에서 내던진 3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내용의 기사와 이 사건을 ‘아파트 살인’이라고 규정한 기사를 캡처해 함께 올렸다.

    장 의원은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들의 참혹한 죽음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런 살인은 계속 증가세에 있다”며 “이별통보 했다고 칼로 찌르고 19층에서 밀어 죽이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나. 페미니즘이 싫다면 여성을 죽이지 마세요. 여성의 안전 보장에 앞장서세요”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 범죄의 이름은 ‘아파트 살인’이 아니라 ‘교제살인’이다. 본질을 흐리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장 의원의 글에 고유정 사건까지 소환하고 나섰다.

    이 대표는 “고유정 사건을 바라보고 일반화해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전 남편에게 졸피뎀을 먹여 살해하고 토막살인한 시신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해상에 투기한 사건을 보고 일반적인 사람은 고유정을 흉악한 살인자로 볼 뿐”이라며 “애써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젠더갈등화 하려고 하지도 않고 선동하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교제살인, 데이트폭력,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포 등 디지털성폭력 등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까지 부각될 만큼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범죄를 고유정 사건 하나와 비교한 셈이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에 반박하기 위함이다.

    그는 더 나아가 “과거의 반유대주의부터 인종차별 등 모든 차별적 담론이 이런 스테레오타이핑과 선동에서 시작한다”며 “유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반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을 거라는 선동, 전라도 비하 등등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 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장 의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날 이 대표의 해당 글을 캡처해 공유하며 “젠더갈등 조장하는 일등공신이 이런 소리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며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끌고 와봐야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는 소신 하나 못 지키면서 뭐 그리 혓바닥이 기나”라고 일갈했다.

    장 의원은 또 다른 글에서도 “이준석 대표님, 고유정 때문에 여친한테 살해당할까봐 걱정하며 사시나”라고 반문하며 “본인 권력욕의 만분의 일이라도 여성의 생명안전에 관심을 두었다면 스토킹범죄나 교제살인과 페미니즘을 ‘엮네’ 어쩌네 하는 무식한 소리는 차마 못하실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가정폭력, 스토킹, 교제살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고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이다. 이건 개념 문제가 아니라 팩트”라며 “이걸 성별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문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은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준석 대표가 안티페미 선동을 할수록 좋아하는 건 젠더폭력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이고 죽어가는 건 여성들”이라며 “제1야당 대표로서의 책임감과 신중함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경솔하고 무지한 발언에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제1야당 대표가 안티페미 심경 관리…젠더폭력 은폐해 여성 죽음 용인하잔 것”

    진중권 동양대 전 교수도 전날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공당의 대표가 그 살인의 명백한 ‘젠더적’ 성격을 부정하고 나선 것은 큰 문제”, ‘젠더’를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이 범죄의 본질을 극구 부정하는 이유가 뭔가”라며 이 대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진 전 교수는 “이별을 통고받았다고 여성이 남성을 죽이는 일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드물다. 이게 이준석 대표의 말대로 그저 우연에 불과한가”라며 “데이트 폭력, 데이트 살인의 동기는 ‘젠더’에 있다. 여성을 독립적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바라보니, 헤어지자는 말에 ‘내가 못 가질 바엔 차라리 파괴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날로 심각해지는 데이트 폭력과 데이트 살인의 유일한 동기”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고유정 사건을 소환한 것에 대해서도 “남편을 죽인 아내의 수와 아내를 죽인 남편의 수. 어느 쪽이 많나. 남녀 간 살인 사건의 압도적 다수에서 남성은 가해자이고, 여성은 피해자”라며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을 넘어 압도적이다. 그 차이가 단순한 우연, 혹은 통계적 착시인가”라고 반박했다.

    진 전 교수는 “공당의 대표라면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하는 일이 고작 남초 커뮤니티에 죽치는 안티페미들의 심경 관리해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준석 대표는 그 수법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당 대표로 선출될 수 있었지만, 대선은 집안잔치가 아니다”라며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은 수의 표를 갖고 있다. 본인의 입지가 아니라 당의 미래를 생각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데이트 폭력, 데이트 살인의 바탕에는 성차별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이런 범죄를 근절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그런데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부정하고 은폐하는 것은 앞으로 이 땅에서 계속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라며 “그 짓을 공당의 대표가 하고 앉아 있다는 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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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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