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법 사실상 인정하는 위험한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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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21일 08: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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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 구형구 동지는 여전히 동어반복을 했다. 내가 ‘동어반복’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핵심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입증 과정도 없이 자명한 것처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가지 분명한 논점이 드러났다.

    국가보안법을 사실상 인정하기

    그는 “주권국가 단위의 권력 편재가 존속하는 한” 간첩 처벌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가 “간첩행위를 규정하는 독점적 주체로서의 국가 자체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품고 “철학적” 고뇌를 하지만 말이다.

    현실에서 그는 “간첩에 대한 형사처벌의 보편성”을 말한다. 사실, 국정원 요원이 다른 국가에서 ‘간첩질’을 하다 걸려 처벌받든 말든 좌파가 신경 쓸 일은 아닐 것이다.

    국가기밀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배자들의 논리를 좌파가 존중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기밀’들은 공개되는 게 대체로 노동자․민중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좌파는 ‘국가기밀’ 보호 논리에 동조하기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공개하고 폭로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이 용산 기지 이전 협상 관련해 ‘군사기밀’을 폭로한 것이 좋은 사례다.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도 권력을 잡자마자 제1차 세계대전 관련 비밀 외교문서들을 공개해 버렸다.

    그러나 구형구 동지는 “주권국가”를 존중하다 보니 국가보안법을 통한 ‘간첩’ 처벌을 수용한다. 따라서 “국가 자체(에 대한) 근원적 의문”은 좌파적 미사여구일 뿐이다.

    더구나 거듭 강조하지만 남한의 주체주의 활동가들은 무슨 훈련된 비밀요원이나 스파이가 아니라 노동자․민중 운동의 일부다. 그 동지들이 북한 관료를 지지하고 심지어 북한 관료의 ‘지도’를 받는다 해서 그들이 북한 관료와 똑같이 착취, 억압을 자행하는 지배계급인 것은 아니다.

    이 둘을 똑같이 보는 그의 주장은 분파주의적 편견이거나 우익들이 조장하는 편견의 반영이지 전혀 유물론적 분석이 아니다. 1950년대 초 미국 매카시즘의 피해자들과 소련 지배자들이 서로 달랐던 것과 같은 이치다.

    사실, 북한과 직접 연계된 친북 좌파는 방어할 수 없다는 말은, 국가보안법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국가보안법의 핵심 명분이 바로 이것이고,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는 압도 다수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공안당국 불장난에 동조 말라

    그들이 탄압받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특히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의 헌신적이고 유기적인 일부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일심회’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미군기지 이전 반대, 한미FTA 반대 등을 했다고 공격하지 않는가.

    둘째, 여전히 구형구 동지는 나의 문제제기에 답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의 착각과 달리 과연 공안당국이 ‘공정한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 말이다.

    조작의 주체가 공정한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이미 지난날의 조작 공안사건들에서도 입증된 바 아닌가? 게다가 이런 사건들도 조작이라고 판명되기까지 수년, 수십 년이 걸리는데 그 동안 구형구 동지는 입 다물고 있을 것이냐는 문제 제기 말이다.

    그의 주장이 궁극적으로 낳을 효과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안당국이여 우리 활동가들이 ‘자생적 좌파’인지 간첩인지는 당신들이 공정하게 판단해 주세요”, “그래서 간첩이면 처벌해도 됩니다”, “간첩은 처벌하되 그들이 연루된 진보 운동은 탄압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 국가권력의 개입을 용인하는 것은 오히려 전체 운동을 겨냥한 탄압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공안당국이 간첩을 잡아야 하니 당의 각종 정보들을 조사하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적 대중운동 속에 간첩들이 있고 이들을 솎아내야 하니 너희들의 정보를 좀 캐야겠다고 하는 것은?

    구형구 동지는 결국 ‘간첩’이라는 빈대를 잡는답시고 초가삼간 다 태우려는 공안당국의 불장난에 일조하는 것이다.

    ‘자수’를 ‘신중히 고려’하라?

    구형구 동지는 당내 주체주의자들에게 “사법적 정리” 운운한 것이 어떤 뜻인지 분명히 밝히라는 나의 요구에 비로소 답을 했다. 단, 그는 “이 문제는 공개적으로 논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공개된 기관지에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해놓고는 이제 와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좀 비겁하다.

    어쨌거나 그는 “사법적 처리”가 사실상 ‘자수’라는 것을 실토했다. 물론, ‘자수’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고려”를 주문한 것이라 한다. 그는 “불필요한 타격을 방지할 현실의 문제”라고 변명하지만, 국가보안법을 통한 탄압 문제에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비타협적 자세이지, ‘타협의 필요성’이 아니다.

    사상 탄압 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나찌가 독일에서 일부 기독교도들을 탄압했을 때 그들보고 개종을 “신중히 고려”하라고 할 것인가?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그는 사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상에 따른 ‘실천’이 문제라는 공안당국의 논리를 반복할 테지만 말이다.

    국가 권력의 일상적 탄압 위협에 놓인 동지들을 방어하기는커녕 때 아닌 양심고백과 자백 캠페인의 “신중한 고려” 운운하는 그의 언행이야말로 당을 혼란과 궁지로 몰아넣을 ‘해당 행위’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이 노리는 끝없는 ‘자기 검열’ 효과를 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번 ‘일심회’ 사건을 통해 지배계급이 노리는 진정한 목적이 바로 이런 당의 온건화, 체제내화다. 이런 점에서 ‘일심회’ 마녀사냥은 친북․반북을 떠나 당내 급진 좌파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조선일보>는 이런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당 최고위가 ‘유감’을 표명하며 최기영 동지를 ‘면직’하자 “만시지탄(이 있지만) 진일보”라고 흡족해 한 <조선일보>를 보라.

    최악의 분파주의

    구형구 동지는 지난번에는 “당 강령에 위배되는 정치사상”을 “당 강령에 의해 처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는 약간 말을 바꿨다. “척결” “처단” 운운하는 것이 과연 진지한 토론과 논쟁을 하자는 것인지는 제쳐두고,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당내의 반동적 사상은 토론과 논쟁으로 진행하지만, 외부의 반동적 집단과 ‘결탁’된 것은 당 강령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다고 그의 주장이 관료적 태도라는 나의 주장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좌파 연합체이자 대중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은 “결탁”의 형식은 다를지라도 당 안팎의 상이한 계급․집단들의 압력과 영향에 노출돼 있다.

    주체주의자들처럼 북한 지배계급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고, 영국 노동당 등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하는 개량주의 정당을 대안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상 모종의 정치단체라 할 만한 ‘참여연대’ 등의 NGO에 가입해 ‘이중당적’을 가지면서 열우당에 투표하는 당원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구형구 동지의 ‘척결 대상’은 “북한 반동 집단과 결탁한” 당내 주체주의자들만을 겨냥하고 있다. 그것도 국가권력의 탄압을 이용한 최악의 분파주의적 방식으로 말이다.

    ‘전진’인가, 후진인가

    ‘전진’의 북핵 국면 실천에 대한 나의 비판에 구형구 동지는 “시의성”을 내세워 변호하려 한다. 즉, ‘북핵 규탄’ 제목이 정세적 시의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의 태도를 마치 “본질 환원적”인 양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국면의 “본질”이 미국의 대북압박이었다면, 나의 “본질 환원”은 오히려 정당하다. 더구나, 북한 핵실험을 빌미로 부시 정부와 우익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가리고 제국주의적 압박을 더욱 강화하려는 ‘정세적 시의성’을 봤을 때도 ‘핵실험 비판 우선’은 잘못이었다.

    구형구 동지는 “도대체 몇 대 몇의 비중으로 배합해야” 하느냐고 묻는데, 진정으로 투철한 반제국주의 좌파라면 제국주의 비판이 압도적일 것이다.
    구형구 동지는 “‘전진’이라는 유령을 사냥하는 일이 ‘다함께’의 당면 과제가 된 듯하”며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구형구 동지는 ‘전진’이 왜 그토록 비판의 대상이 됐는지 차분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전진’과 가까운 의원단의 매우 부적절한 실천(노사관계 로드맵 등)에 대한 침묵, 노무현의 정규직 양보론과 다를 바 없는 사회연대전략 지지, ‘일심회’ 마녀사냥에 대한 침묵․방조 등에서 봤을 때, ‘전진’ 은 “유령”이 아니라 최근 당을 오른쪽으로 이끄는 한 고리다.

    *<레디앙>에 실린 구형구의 첫 번째 비판에 대한 필자의 반론
    http://comm.kdlp.org/index.php?main_act=board&jact=art_read&board_no=2&page=8&seq=7&art_no=373275&num=20&categor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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