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 왜 무서워 않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거대양당의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이대남(20대 남성)’ 표심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페미니즘에 주목했던 5년 전 대선과 이번 대선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2017년 대선 당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던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이 됐고, 성소수자와 여성에 집중했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진보정당 후보로서 역대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양당 후보들은 이대남의 염원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개편 공약을 발표하며 ‘반페미’ 노선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공공연하게 이대남 표심을 잡을 반페미니즘 공약을 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이에 질세라 이재명 후보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페미니즘 주장을 담은 게시물을 공유하며 등 돌린 이대남을 다독이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030세대 여성 유권자 결집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번 대선에서 ‘페미니즘 대통령’을 공언한 사람은 심상정 후보가 유일하다.
“대선후보들은 왜 2030여성들을 무서워하지 않죠? 이대남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2030여성들은 운동단체도 만들고 활동가로도 지내면서 별짓 다하고 있는데…어떻게 하면 2030여성들을 두려워할까요?”
‘20대 여성, 우울 너머로 가보자고!’라는 주제로 열린 하미나x심상정x장혜영 토크콘서트에서 여성의 우울과 불안을 담은 저서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의 하미나 작가는 이렇게 질문했다. ‘이대남의 틀’에 갇힌 정치권이 2030세대 여성 유권자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심상정 후보는 자신의 20대 청년 여성 시절을 언급하며 “여성 시국사범으론 최장기 수배자였다. 내가 도망을 잘 다니게 된 이유가 형사들이 여성 몽타주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남성은 아무리 변장을 해도 그 유형이 있는데 여성은 화장하고 치마 좀 입으면 형사들이 구별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여성은 비남성으로 존재했던 것이지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유형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근 몇몇 대선후보들이 성별로 갈라치고 2030세대 남성 표를 얻으려고 애쓰는데 이 분들에겐 여성 유권자가 하나의 유형으로 인식돼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사회를 맡은 장혜영 의장도 “거대양당 후보에게는 청년이라는 세대 안에 여성이 있는가, 하는 면에서 많은 여성 유권자들이 시민으로서 적법한 권리와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심 후보와 장 의장은 정치가 여성을 이대남과 동등한 유권자로서 보게 만드는 방법으로 ‘2030 여성의 결집’을 주문했다.
심 후보는 “(정치는) 덩어리된 목소리를 먼저 찾아간다. (그런데 지금 2030여성의) 목소리는 개별화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미 2030 여성은 강남역과 혜화역 등에 모이면서 많은 힘을 보여줬고, (다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그 분들(거대양당 후보)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뭉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인간은 존엄하고 또 연결돼있다. 각자의 존엄을 지키려면 연결해서 뭉쳐야 하고 힘을 만들어야 한다”, “(2030 여성이) 뭉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혜영 정의당 정책위의장도 “사회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이 치열한 정치의 계절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연결”이라며 “한 사람의 목소리를 쉽게 묻히지만 뭉친 목소리는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2030 여성들은) 이미 변화를 만들어왔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두려운 이들이 ‘20대 여성의 목소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청년 중 여성의 목소리는 없다’면서 또 다른 종류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세대 다른 여성의 우울…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20대 여성의 우울을 중심으로 한 이날 토크콘서트에선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여성 우울증과 자살의 원인과 진단, 해법 등을 다루기도 했다.
하미나 작가는 “과거보다 더 살기 좋아졌고,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온 것 같은데 (2030대 여성은 여전히 우울감을 느낀다). 지금의 2030세대 여성이 겪는 고통의 문제가 왜 윗세대 (여성의 고통)와 다르게 느껴질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하 작가는 이어 “고통이 제대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정당화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을 조금 더 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며 “민주화 운동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함께 할 때 아프고 힘들어도 견딜 만한 일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의 2030세대 여성이 겪는 문제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 시대적 문제로 움직이지 않는 개인화된 우울감이다. 세대 간 이해 받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고 진단했다.
심 후보는 “78년도에 대학을 다닐 땐 일상의 민주주의보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더 시급했다. 독재를 넘어서야만 내 일상이 열리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시대였다”며 “거대한 사명감에 압도돼 목전에 놓인 적에 대해 분노하는 청년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돌이켜 보면 결국은 지금의 2030세대 여성들이 겪는 우울감과 나의 그 당시 분노는 우리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본질적으로 같은 사회적 문제라고 본다”고 짚었다.
하 작가 또한 “2030여성의 우울의 원인은 어느 곳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노”라며 “원론적으로는 여성도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 경험에서 오는 박탈감이 분노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심 의원은 “여성 청년들의 우울증을 정서적 요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며 “어떤 후보는 마음건강센터를 지어준다고 하던데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여성을 우울로 몰아넣는 사회구조에 대한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의장은 “우울에 대한 해법으로 사회적 변화를 찾아가는 길잡이가 된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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