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 너머의 창포, 석창포
    그리고 꽃창포의 민속적 실체(3)
    [푸른솔의 식물생태] 옛문헌 검토
        2021년 11월 15일 03: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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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의 옛 문헌과 민속에 대한 자의적 해석 또는 곡해(?)

    1. 우리의 옛 문헌의 창포와 석창포에 대한 자의적 해석 또는 곡해

    (1) 주장 내용

    위 논문의 요점을 기록한 적요 부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석창포와 계손은 A. gramineus로, 수창포와 창포는 A. calamus를 지칭했으나 이들이 혼용되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서는 지적되지 않았던 혼용이 굳이 왜 우리의 옛 문헌만 지적되는지는 의아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옛 문헌에서 석창포와 계손은 A. gramineus를, 수창포와 창포는 A. calamus를 지칭했는지를 그가 인용한 우리의 주요 문헌과 그 문헌에 대한 그의 분석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청포; 2017/6/4/ 경기도 양평

    석창포 2018/5/12 전남 강진

    (2) 『향약집성방』의 내용

    菖蒲 生池澤, 一寸九節者, 良. 露根不可用. 五月, 十二月, 採根陰乾…(중략)… 圖經曰, 春生靑葉. 長一二尺許, 其葉中心, 有脊狀如劍, 無花實, 今以五月五日收之.

    ▷ 번역 : 연못에서 자라며, 근경 약 3cm에 마디가 9개 있다. 그것이 좋다. 뿌리가 땅 밖으로 나온 것은 쓰지 못한다. 음력 5월과 12월에 뿌리를 채취하고 그늘에서 말려 쓴다….(중략)…『도경(圖經)』*1)에서는 다음처럼 말했다. 봄에 새싹이 돋고 푸른 잎이 1-2척(尺)정도 자라는데, 잎 가운데에 칼과 같은 등골뼈가 있고, 꽃이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지금은 음력 5월 5일에 채취한다.

    *1)『도경(圖經)』: 송나라 시대에 소송(蘇頌, 1020~1101)이 편찬한『본초도경』(1061)을 말한다.

    위 식물학자는 『향약집성방』의 위 내용 중 앞부분만을 인용한 후 “『향약집성방』의 창포는 오늘날의 창포(A. calamus) 또는 창포속(Genus Acorus) 식물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향약집성방』의 「본초」(本草) 부분에는 종을 식별할 수 있는 형질 전체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정확히 어떤 종의 식물을 일컫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므로 통칭하여 창포속 식물로 추론한 것에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향약집성방』의 개별 병에 대한 처방 부분에는 ‘菖蒲'(창포)라는 명칭 외에 한자로 ‘石菖蒲'(석창포)라는 명칭이 별도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향약집성방』의 약재 제조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지남총론」(指南總論) 부분에서는 창포에 관해 “凡使採石上生者, 根條嫩黃緊硬節稠, 長一寸有九節者, 是眞也.”(창포는 돌 위에서 자란 것을 채취하는데, 뿌리는 여리고 빛은 노란색이며 단단한 마디가 많다. 1촌의 길이에 9마디가 있는 것이 진품이다)라고 하였다. 현재의 창포(A. calamus)는 저지대의 연못과 같은 곳에 주로 자라므로, 「지남총론」에서 말하는 약재로 사용하고 돌 위에서 자라는 菖蒲(창포)는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을 일컬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향약집성방』의 「지남총론」에서는 “凡使勿用泥菖夏菖“(무릇 이창과 하창은 약재로 사용하면 안된다)라고 하여 이창과 하창은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록하였다. 그외 『향약집성방』 어디를 살펴도 수창포와 계손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수창포와 계손을 약재로 사용한다는 내용도 없다. 그렇다면 위 식물학자가 우리나라에서 계손은 A. gramineus를, 수창포는 A. calamus를 지칭했다고 한 것은 최소한 『향약집성방』에 관한 한 틀린 이야기가 된다.

    정리하여 보면, 『향약집성방』에서는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라는 이름이 함께 기록되었으며 창포의 종류로 분류된 이창과 하창을 제외하고는 모두 약재로 사용하였고, 수창포와 계손에 대해서는 달리 명칭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약재 식물로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 『동의보감』의 내용

    菖蒲 셕챵포 …(중략)…生山中石澗沙磧上. 其葉中心有脊, 狀如劒刃. 一寸九節者, 亦有一寸十二節者. 五月十二月採根, 陰乾. 今以五月五日採, 露根不可用.

    ▷ 번역 : 菖蒲 셕창포 …(중략)….산골짜기 개울가 바위틈이나 자갈 밑에서 나고 자라며 칼날처럼 생긴 잎 가운데에는 맥이 뚜렷하고 근경 약 3cm에 마디가 9개 또는 12개가 있다. 5월과 12월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서 말린다. 요즘은 5월 5일에 캐는데, 지상에 드러난 뿌리는 쓸 수 없다.

    生下濕地. 大根者, 名曰昌陽, 止主風濕. 又有泥菖夏菖, 相似, 幷辟蚤蝨, 不堪入藥. 又有水菖, 生水澤中. 葉亦相似, 但中心無脊. 《本草》蓀無劒脊, 如韭葉者, 是也. 菖蒲有脊, 一如劒刃. 《丹心》

    ▷ 번역 : 지대가 낮은 습한 곳에서 자란다. 뿌리가 큰 것을 창양(昌陽)이라고 하는데, 풍습만 치료한다. 또, 이창(泥菖)과 하창(夏菖)이 있는데 서로 비슷하다. 이 둘은 이와 벼룩을 없애기는 하지만, 약에는 넣지 않는다. 또한, 수창(水菖)은 못에서 자라며, 창포와 비슷하나 잎 가운데 잎맥이 없다.《본초》 손(蓀)은 잎에 맥이 뚜렷하지 않으며, 부추 같으나 창포는 맥이 뚜렷하며 칼날같다.《단심》

    위 식물학자는 『동의보감』의 ‘菖蒲'(창포)의 여러 내용 중 일부를 인용(위 붉은색 글씨)한 후 “『동의보감』의 창포는 두 종류인데 산중 계곡에 자란다는 창포는 오늘날의 A. gramineus일 것이며, 잎맥이 뚜렷한 창포는 오늘날의 창포(A. calamus)일 것이며, 수창과 손은 오늘날의 A. gramineus일 것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요약된 내용이 참으로 이상하다.

    먼저 『동의보감』의「탕액편」에서 ‘菖蒲'(창포)라는 표제하에 기록된 종류(?)는 2종류가 아니다. 표제는 ‘菖蒲'(창포)로 되어 있지만, 산중 계곡가에 자라고 약재로 사용하며 등골뼈가 있는 ‘셕창포’가 있고, 다음으로 저습지에 자라는 종으로 ‘昌陽,'(창양)이 있는데 풍습 치료약으로 사용하고, 또 저습지에 자라는 것으로 ‘泥菖'(이창)과 ‘夏菖'(하창)이 있는데 이는 약재로 사용하지 않으며, 등골뼈가 없는 ‘水菖'(수창)과 ‘蓀'(손)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포라는 이름까지 합치면 무려 7 종류의 식물명이 있다. 그런데 왜 2종류일까? ‘종류’가 현대 식물분류학에서 말하는 종(species)의 뜻이라면 아무런 근거없이 옛 본초학서인 『동의보감』의 「탕액편」을 식물분류학에 따른 식물도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菖蒲'(창포)라는 표제는 곧 창포속(Acorus)이고 그 내에 A. calamus라는 종과 A. gramineus라는 종이 있다는 인식말이다. 그러나 『동의보감』의「탕액편」에는 7종류의 식물명을 언급하고 있으며 표제 ‘菖蒲'(창포)=Acorus속이라는 등식이 맞다는 근거는 『동의보감』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위 식물학자만의 고유한 주장과 인식일 뿐이다. 참고로 앞서 살펴 보았듯이 중국에서는 자주색 꽃이 핀다고 한 계손도 창포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논의를 했으며 그 계손이 ‘蓀'(손)이라는 이름으로 『동의보감』에 기록된 것이다.

    참고(4) : 『동의보감』에 기록된 ‘本草'(본초)는 중국 송나라 때의 당신미에 의해 편찬된 『경사증류비급본초 』(1082)를 개정하여 보완한 『중수정화경사증류비용본초』(1249)를 말하는 것이다(당신미의 저작과 그 이후의 개정 보완된 것을 총칭하여 일반적으로 『증류본초』라 한다). 그런데 『증류본초』에서는 ‘昌陽'(창양)을 ‘菖蒲'(창포)와 같은 이름으로 기록하였다(“菖蒲 一名昌陽”). 이에 비추어 『동의보감』의 「탕액편」에서 저지대 습한 곳에서 자라고 뿌리가 크다고 한 것은 (좁은 의미의) ‘菖蒲'(창포)를 일컬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다음으로 “산중 계곡에 자란다는 창포는 오늘날의 A. gramineus일 것이며, 잎맥이 뚜렷한 창포는 오늘날의 창포(A. calamus)일 것“이라는 요약 내용은 괴상하기까지 하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은 ‘菖蒲'(창포)라는 표제하에 한글명 ‘셕챵포’를 기재하고 식물의 생태에 대해 “生山中石澗沙磧上 其葉中心有脊“(산 중의 돌틈 모래더미 위에서 자란다)라 기록했다. 즉, 위 문장은 산 중의 돌틈에서 자란다는 것도 잎 가운데 등골뼈가 있다는 것도 모두 하나의 식물인 ‘셕챵포’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 식물학자는 앞은 오늘날의 A. gramineus가 되고, 바로 뒤는 오늘 날의 A. calamus가 된다는 이상야릇한 해석을 한다. 이 ‘셕챵포’가 오늘날의, A. calamus를 지칭한 것인지 아니면 A. gramineus를 지칭한 것인지와 무관하게, 문장의 뜻이 분명함에도 앞 부분은 A. gramineus로 뒷부분은 A. calamus로 읽는 것은 허준(許浚, 1539~1615)이 기술한 내용을 넘어선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것은 해석의 기초인 문리해석(文理解釋)의 방법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위 식물학자는 『동의보감』의 수창과 손을 A. gramineus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동의보감』 「탕액편」은 수창과 손에 대해서 잎이 창포 또는 부추와 비슷하지만 ‘無脊'(무척) 또는 ‘無劍脊'(무척)하다는 언급 밖에 없다. 위 식물학자는 현재 식물분류학에서 속(genus)내의 종 식별 형질로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emineus)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륵)와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동의보감』의 「탕액편」의 수창포 관련 부분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증류본초』를 인용한 것이고, 손(蓀)과 관련된 부분은 중국 원나라 시대의 『단계심법』(1481)을 인용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 문헌에서 고찰한 것처럼 최소한 『증류본초』와 『본초강목』의 주요 문헌에 따르면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 식물이었다. 그런데 위 식물학자는 수창와 손에 대해 약재로 사용하는 A. gramineus(국명: 석창포)라고 문헌의 기록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친다.

    게다가 『동의보감』의 「내경편」(內景篇),「외형편」(外形篇) 및 「잡병편」(雜病篇)에는 개별 병증에 대한 약재들이 기록되었는데 여기에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가 기록되었을 뿐이지, ‘水菖'(수창)과 ‘蓀'(손)은 「탕액편」외에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다시 말해『동의보감』은 수창과 손을 약재로 사용한 식물로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 gramineus(석창포)를 옛부터 약재로 사용했다는 것은 여러 민속 기록에도 흔히 나오고 위 식물학자의 논문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산림경제』의 「치약」편에도 ‘水菖'(수창)은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동의보감』의 「탕액편」의 수창과 손을 A. gramineus이라 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동의보감』에 기록된 ‘脊'(척)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자. 우리의 옛 문헌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脊'(척)에 대해서 별도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無脊'(무척: 등골뼈가 없음)이라고 기록한 ‘水菖'(수창)과 ‘蓀'(손)에 대해 『동의보감』을 비롯한 우리의 문헌은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점에서 우리의 옛 문헌 역시 ‘無脊'(무척)이라는 개념이 현재의 창포속(Acorus) 내의 종을 식별하기 위한 형질이 아니라, 약재로 사용하는 뿌리를 채취하는 시기(5월)에 주위 장소에 함께 자라는데 뿌리와 잎만으로는 창포속(Acorus) 식물과 비슷해서 구별이 어렵고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 식물 종류를 구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 식물학자의 주장과 달리 『동의보감』에 기록된 ‘脊'(척) 역시 중국의 옛 문헌과 별 차이가 없고 현재의 창포속(Acorus) 내의 종 식별 형질인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륵)과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수창과 손이 창포속 또는 그와 유사한 식물이라고 한다면 ‘無脊'(무척)을 ‘잎맥이 없다’로 번역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이렇게 보면 『동의보감』의 「탕액편」에서 ‘셕창포’라는 한글 명칭 다음에 약성을 기술하고서 바로 기술된 내용 “生山中石澗沙磧上. 其葉中心有脊, 狀如劒刃“(산 중의 돌틈 모래더미 위에서 자란다. 그 잎의 가운데는 등골뼈가 있고 그 모양이 칼날과 같은 모양이다)라고 한 것은 산지 돌틈 모래더미 위에서 자라는 생태적 특징을 고려하면, 이 기술만으로 명확히 종을 동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창포(A. calamus)보다는 석창포(A. gramineus)를 지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우리의 한약재 사용을 포함한 민속도 이와 같다.

    한편 위 식물학자는 위 논문에서 “『동의보감』에서 못에서 자라는 종류(중국에서는 석창포의 자생지임)와 산간 계곡에서 자라는 종류(중국에서는 수창포의 자생지)를 하나의 창포로 설명했“기 때문에 중국과 다르게 우리의 문헌에서 엄청난 혼란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이상하기가 그지없다. 『동의보감』의 수창(수창포)에 대한 기록은 <본초>를 인용하였다고 기록한 것처럼 중국의『증류본초』를 인용한 것이어서 중국과 차이가 있는 내용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의 『본초강목』은 “菖蒲凡五種”(창포는 5종이 있다)고 하면서 창포, 석창포, 수창포, 계손 등을 모두 菖蒲(창포)에서 설명하였고, 『증류본초』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또한『본초강목』은 석창포에 대해 “生於水石之間”(물의 돌틈에서 자란다)고 하였다. 중국의 어느 문헌에서 석창포의 자생지에 대해 못에서 자란다고 하였는지 도무지 알기가 어렵다.

    또한 위 식물학자의 『동의보감』과 관련하여 주장한 내용과 요약된 결론(적요)을 비교하면 이는 황당무계까지 하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에 대한 분석에서 수창과 손에 대해 오늘날의 A. gramineus로 추정한다는 취지로 분석을 하고 논문의 적요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창포와 창포를 A. calamus를 지칭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분석과 결론이 서로 다르다. 믿거나 말거나?

    정리해 보자면, (i) 『동의보감』 「탕액편」의 ‘菖蒲'(창포)라는 표제에는 7종류의 식물명을 기록하여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창포(넓은 의미의 ‘창포’)를 사용했고, (ii)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한글명 ‘셕챵포’과 한자명 ‘菖蒲'(창포; 좁은 의미의 ‘창포’) 모두에 대해 등골뼈가 있는(有脊) 것으로 보았으며 개별 병증에 대한 약재 부분에서도 약용하는 식물로 ‘石菖蒲'(석창포)와 ‘菖蒲'(창포)를 기재하여 이 2종류를 약재로 사용했음을 기록했고, (iii)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菖蒲'(창포)에 속하는 종류로 수창과 손을 등골뼈가 없는 특징을 가진 것으로 보았으나 개별 병증에 대한 약재 부분에서는 이를 기록하지 않아 약용 식물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iv) 『동의보감』의 「탕액편」에서는 한글명 ‘셕챵포’에 대해 산 계곡의 돌틈에서 자라고 뿌리가 1촌 9절(또는 12절)이고 잎에 등골뼈(有脊)을 있는 것을 특징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특징은 현재의 창포(A. calamus)보다는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의 생태에 보다 부합한다는 것이다.

    (4) 『기언』의 내용

    石菖蒲說…(중략)…

    余又得瓦鼎種之 常玩焉 宜瓦石上 宜天雨水 不宜河渠汚井 性好潔 怕煙塵氣 南方山石間 產蓀草 謂之溪蓀 其莖葉香洌 耐寒 氷雪上常靑 其根類菖蒲 特其葉無脊耳 鄕醫誤用之 伊上鄭子儀讀古書 好博雅 通知草木之性 作石菖蒲說以問之.

    석창포설…(중략)….

    나는 또 옹기솥을 구하여 석창포를 심어 놓고 항상 감상하였다. 석창포는 옹기나 돌에 기르기가 적합하고 빗물에도 적합하지만 도랑물이나 탁한 우물물은 적합하지 않다. 이는 석창포의 성질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세속의 기운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남방 산 바위 틈에 손초가 나오며, 계손이라 한다. 그 줄기와 잎이 향긋하고, 추위에 잘 견디고, 얼음과 눈 속에서도 늘 푸르다. 그 뿌리가 창포처럼 생겼는데, 다만 잎에 잎맥이 없을 뿐이다. 시골의 의원들이 창포로 잘못 사용한다. 낙동강 가에 사는 정자의(鄭子儀)*1)가 옛글을 읽고 《광아(廣雅)》를 좋아하여 초목의 성질을 훤히 알기에 석창포설을 지어 그에게 묻는다.

    *1) 정자의(鄭子儀) : 조선 중기의 학자인 정외(鄭頠. 1598~1656)를 말하는데 그는 경상도 진주에 거주하였다.

    위 식물학자는 『향약집성방』의 위 인용 문구 중 일부만(붉은색 글씨가 그의 인용 문구임)을 인용한 후 “『기언』에 나오는 남쪽 지방에 자라며 상록성인 손은 오늘날 A. grumineus일 것이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선 도표에서 살폈듯이 창포와 관련하여 언급된 유사한 식물 중에 겨울에도 잎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성 식물은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 밖에 없으므로 그의 추론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A. gramineus는 약용하는 식물인데 약재로 사용하지 않다니? 『기언(記言)』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이었던 허목(許穆, 1595~1682)이 지은 개인 시문집이다. 『기언(記言)』에 기록된 위 ‘석창포설’은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로 추정되는 식물을 채취하여 키운 내력을 언급하다가 문제의 ‘南方”(남방)으로 연결되는 문장이 나온다. 계손에 대해 “氷雪上常靑“(빙설상상청: 얼음과 눈 위에서도 늘 푸르다)이라는 언급은 그에게서 발견되는 독특한 것이다. 그 독특한 만큼 독특한 민속적 의미가 있을까?

    『기언』의 바로 뒤의 문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뒤의 문구와 함께 읽으면 계손에 대해 나는 잘 모르니 식물을 잘 아는 비슷한 연배인 정외(鄭頠)에게 묻기 위해 글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도 상록성이라는 점에서는 A. gramineus(국명: 석창포)의 일종으로 읽히지만,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A. gramineus(국명: 석창포)로 볼 수 없다. ‘無脊'(무척)하다고 한 것은 잎맥이 없다는 뜻이 아니며, 『동의보감』및 『산림경제』와 연관지어 해석하면 잎이 v자로 각이 져 있는 창포속(Acorus) 식물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해당 문장의 앞 부분에서 허목이 옹기솥에 심어 길렸다는 ‘石菖蒲'(석창포)는 상대적으로 크게 자라는 창포(A. calamus)를 그런 식으로 키우지는 않으므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고, 그 뒤의 계손은 석창포와 구별되는 다른 식물로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기언』의 계손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록은 허목 자신이 잘 몰라서 전문가에게 묻는 취지이어서 그런 정도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5) 『산림경제』의 내용

    石菖蒲 一名昌歜 形品見治藥 取積年溝渠中瓦. 爲末種之…(중략)…石菖蒲 一如菖蒲而細短 藥用石菖蒲是也 處處有之 – 卷之二 養花

    석창포 일명 창잠(昌歜)이다. 생김새와 품종은 치약(治藥) 편에 기록되어 있다. 여러 해 안 파낸 도랑 속에 묻혀 있는 기와쪽을 찾아 가루를 낸 다음 그 가루 흙에 심는다…(중략)…석창포는 창포와 비슷하나 잎이 좁고 짧다. 석창포를 약으로 쓰며 곳곳에 있다. -권지2 ‘양화’

    石菖蒲 種法見養花 服食法見攝生…(중략)…生山中石澗沙磧上 其葉中心有脊 狀如劍刃 一寸九節亦有一寸十二節者 是石菖也 又有泥菖夏菖 水菖葉相似而但中心無脊 不堪入藥 <本草> – 卷之四 治藥

    석창포 심는 방법은 양화(養花)편에 보이고, 먹는 방법은 섭생(攝生)편에 보인다. 석창포는 산중의 계곡 돌틈에 나며. 잎에 잎맥이 뚜렷하다. 또한 이창과 하창이 있다. 수창은 잎은 비슷하게 생겼으나 잎맥이 뚜렷하지 않으며 약에 넣을 수 없다.<본초> – 권지4 ‘치약’

    위 식물학자는 『산림경제』의 위 내용 중 일부만(붉은색 글씨가 그의 인용 문구임)을 인용한 후 “『산림경제』「양화」편에 나오는 잎이 좁고 짧은 특징을 지닌 석창포는 오늘날의 A. gramineus일 것이나. 「치약」편에 나오는 잎에 잎맥이 뚜렷한 석창포는 오늘날의 창포(A. calamus)일 것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위 식물학자는 『산림경제』에 대한 분석에서도 오로지 ‘有脊'(유척)이면 오늘날의 창포(A. calamus)라는 전혀 근거 없는 도그마(dogma)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산림경제』의「치약(治藥)」편에는 석창포에 대해 “生山中石澗沙磧上”(산 중의 돌틈 모래더미 위에서 자란다)라고 되어 있고 이 문구는 중국의 『증류본초』를 인용한 것으로 『동의보감』에도 그대로 나오는 문구이다. 위 식물학자는 앞서 살펴 보았듯이 『동의보감』을 분석할 때에는 ‘산중 계곡에 자란다’는 이유로 오늘날의 A. gramineus(국명: 석창포)일 것이라고 했다가 『산림경제』에서는 바로 뒤에 있는 ‘有脊'(유척)이 있다는 이유로 표제가 현재의 창포(A. calamus)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와 같은 스스로도 모순되는 분석은 도그마로 사용하는 ‘有脊'(유척)이 옛 문헌에서 A. gramineusA. calamus를 식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산림경제』에서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라는 이름은 꽃을 키우는 방법을 논한 「양화」(養花)편과 약재에 관한「치약」(治藥)편 외에, 식용에 관한「섭생」(攝生)편, 목축에 관한「목양」(牧養)편, 급한 병을 치료하기 위한 「구급」(救急)편 그리고 해충을 잡기 위한 「벽충」(辟蟲)편, 사는 주거에 관한「복거」(卜居)편 등 여러 곳에 걸쳐 등장한다. 그런데 『산림경제』의 저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은 「양화」편에서 ‘石菖蒲'(석창포)라는 표제를 그 생김새와 품종에 대해 「치약」편을 연결하였고, 「치약」편에서는 ‘石菖蒲'(석창포)라는 표제하에 심는 방법에 대해서「양화」(養花)편에, 먹는 방법에 대해 「섭생」편에 각각 연결시켜 놓았다. 즉, 홍만선은「양화」(養花)편, 「치약」(治藥)편 그리고「섭생」(攝生)편의 ‘石菖蒲'(석창포)를 같은 식물로 기록했던 것이다. 그런데 위 식물학자는 이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나 근거도 없이 오로지 ‘脊'(척)만을 기준으로 「양화(養花)」편의 석창포를 A. gramineus라 하고, 「치약(治藥)」편의 석창포를 A. calamus라고 하여 서로 다른 식물로 떨어뜨려 놓는다. 이것은 그의 옛 문헌을 읽는 방법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림경제』의 「치약」편에는 수창에 대한 중요한 문구가 있다. “水菖 葉相似而但中心無脊 不堪入藥“(수창은 잎은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 중심에 등골뼈가 없으며 약에 넣을 수 없다)라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위 식물학자는 이 문구에 대해 특별한 언급 없이 넘어가고 있으나 『동의보감』에서 언급한 것에 비추어 보면 그는 ‘無脊'(무척)한 것을 기준으로 A. gramineus를 지칭하였다고 볼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A. gramineus는 우리나라에서도 중요한 약재로 사용하는 식물이므로 그의 기준과 해석이 전혀 민속적 실제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위 식물학자는 “『산림경제』 「양화편」과 「치약편」에서 설명한 창포 종류도 잎이 가늘고 짧은 종류(중국에서 수창포라고 부르는 식물의 특성임)와 잎맥이 발달한 종류(중국에서 석창포라고 부르는 식물의 특성임)가 서로 다른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한 이름 석창포로 설명했고“라 하여 중국과는 다른 혼란이 우리 문헌에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산림경제』의 「양화」편에서는 석창포의 잎에 대해 “一如菖蒲而細短“(창포와 비슷하지만 잎이 좁고 짧다)라고 했는데 중국의 『본초강목』은 수창포의 잎에 대해 “蒲葉瘦“(포엽이 작다 또는 여리다)고 하여 그 표현이 같지 않다. 오히려 중국의 『본초강목』은 석창포의 잎에 대해 북송 시대 진승(陳承; ?~?)이 저술한 『중광보주신농본초』(重廣補注神農本草, 1092)를 인용하며서 “根葉極緊細“(뿌리와 잎은 매우 단단하고 가늘다)라고 기록하여 『산림경제』의 「양화」편의 석창포와 매우 비슷하게 표현했다. 이는 중국이나 우리의 옛 문헌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石菖蒲'(석창포)는 위 식물학자의 주장과 다르게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정리하여 보면, 『산림경제』의「양화」(養花)편, 「치약」(治藥)편 그리고 「섭생」(攝生)편에 기록된 ‘石菖蒲'(석창포)라는 식물은 기와에 심고, 약으로 쓰며, 산 중의 돌틈에서 자라는 등의 생태와 민속적 특징에 비추어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지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재 남아 있는 우리의 한약재 사용을 포함한 민속도 이와 같다.

    참고(5) : 『동의보감』에 비해 100여년이 지난 후에 저술된 『산림경제』의 「치약」(治藥)편에 기록된 내용은 중국 송대의 『증류본초』를 인용한 것으로 『동의보감』의 「탕액편」에서 기록된 것과 동일하지만, 일부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그런데 『산림경제』는 표제를 ‘菖蒲'(창포)로 하지 않고 ‘石菖蒲'(석창포)로 기록하여 아예 표제를 바꾸었다. 석창포가 약재 사용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위 식물학자는 『동의보감』 「탕액편」의 ‘菖蒲 석챵포’라는 표현을 매우 이상하게 이해하고서 또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으므로 『산림경제』의 「치약」(治藥)편의 기록이 이와 같다는 점을 기억해 두기로 하자.

    (6) 『물명고』의 내용

    菖蒲 菖蒲種類不一챵포..(중략)… 溪蓀 生於溪澗 葉瘦根高 蘭孫 水菖蒲 仝 石菖蒲 生水於石間 葉有劍脊者 又有葉似韭 根似匙柄者

    창포 菖蒲(창포)는 한 종류가 아니다. ‘챵포’라 한다. 계손은 계곡가에서 자라며 잎은 가늘고 뿌리는 얕게 자란다. 난손 또는 수창포라고 부른다. 석창포는 물속 돌 틈에서 자라며 잎에는 맥이 뚜렷하거나 잎이 부추잎과 비슷하며 뿌리는 숟가락 자루와 비슷하다.

    위 식물학자는 1820년대에 유희의 『물명고』의 위 문구(붉은색 글씨가 그의 인용 문구임)을 인용한 후 “『물명고』의 석창포는 오늘날의 창포(A. calamus)이며, 손은 오늘날의 A. gramineus일 것이며, 창포는 창포속(Acorus)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은 옛 문헌에 기재된 식물 명칭에 대한 위 식물학자의 사고가 그대로 드러난다. 위 식물학자는 표제의 ‘菖蒲'(창포)는 여러 종류를 총칭한다고 하였으므로, 곧 현대 식물분류학에서 창포과의 창포속(Acorus)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옛 문헌의 식물명이 사람에게 어떠하나 효용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살펴 분류하고 인식한 것이라면 과학으로서 다루는 식물분류학은 식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에 관점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것이어서 둘은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주장이다. 앞서 살폈듯이 조선 초기의 『훈몽자회』는 菖蒲(창포)를 ‘부들’의 일종으로 파악하기도 하였으며, 명칭에 있는 ‘蒲'(포)는 그러한 사고와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하다. 중국의 문헌과 민속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溪蓀'(계손, 또는 蓀)은 자주색 꽃이 피는 것으로 현재의 창포속(Acorus)로 전혀 관련이 없는 식물이었음에도 옛 사람들은 菖蒲(창포)의 일종으로 인식하고 이를 논하기도 하였다.

    참고(6):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 BC 372 ~ BC 288 추정)를 ‘식물학의 아버지’로 일컫고 있다. 그는 식물을 인간에게 어떠한 효용성이 있는가가 아니라 식물 사이의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애너 파보르드 지음, 구계원 옮김,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글항아리, 41쪽 이하 참조.

    옛 문헌의 식물 인식이 현대의 식물분류학과 동일하다는 인식은 위 식물학자에게 아무런 합리적 근거없이 옛 문헌의 ‘脊'(척)을 현대 식물분류학에서 창포속(Acorus) 내의 종 식별 형질인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륵)이 같은 개념이라고 끝없는 자기 암시를 부여한다. 그에 따라 ‘脊'(척)을 기준으로 옛 문헌의 식물을 식별하고 이해하도록 지시하게 된다. 그런데 앞선 다른 문헌도 마찬가지이었지만, 위 식물학자의 이러한 견해는 『물명고』에 기록된 ‘石菖蒲'(석창포)에는 ‘有劍脊'(유검척)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生水於石間“(물 속 돌 틈사이에 자란다)이라는 표현도 있다는 점을 망각하게 한다. 물속 돌틈(또는 바위 틈)에 분포한다는 점은 현대 분류학에서 종 식별의 직접적 형질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생태적 차원에서 관찰하면, 창포(A. calamus)가 주로 연못과 같은 저지대의 습지에 주로 자라므로 이는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에서 나타나는 생태적 특징에 관한 기술이다.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위 식물학자는 어떤 곳에서 이 생태적 특징을 고려하여 하나의 문장의 내의 식물을 석창포(A. gramineus)보고 뒤의 ‘有脊'(유척)에 대해서는 창포(A. calamus)라고 분석하는 모순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위 식물학자의 『동의보감』의 기록에 대한 분석을 상기해 보면 스스로의 모순과 불일치가 명확히 드러난다.

    ‘脊'(척)을 굳이 인식과 분류의 기본적 전제가 다른 현대의 식물분류학에 따른 종내 식별 형질로 등치시키지 않고 옛 사람들이 비슷한 분포지에서 자라면서 약재로 채취할 때 혼동을 일으킨 식물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하나의 문장을 모순되게 해석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위 식물학자의 주장과 달리 『물명고』의 ‘石菖蒲'(석창포)는 산지 물속 돌 틈 사이에 자라고 잎의 단면이 각이 져 등골뼈가 있는 식물로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지칭하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7) 기타의 옛 문헌

    위 식물학자의 논문에는 『구급간이방언해』(1489)와 『광제비급』(1790)에 기록된 명칭들에 대해 특별히 종에 대한 식별없이 이를 언급하고 있다. 위 문헌에서 창포와 석창포는 병에 대한 치료 약재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19세기에 저술된 약학서 『의휘』(1871)에도 보인다.

    – 『구급간이방언해』: 菖蒲/숑의맛불휘, 石菖蒲/돌서리옛숑의맛불휘
    – 『광제비급』 : 石菖蒲/돌밧ㅎ.ㅣ난창포
    – 『의휘』 : 菖蒲/돌밧ㅎ.ㅣ난창포

    위 문헌에는 ‘菖蒲'(창포) 또는 ‘石菖蒲'(석창포)의 명칭만을 기록하고 별도로 식물의 형태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현재의 식물분류학에 따른 종을 식별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 한글 명칭은 石菖蒲(석창포)에 대한 옛 사람들의 인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즉, 여러 창포 종류로 인식된 식물 중에 약재로 사용하면서 우선으로 여겼던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돌서리'(돌사이)와 ‘돌밧'(돌밭)에 난다고 인식했다는 점이다. 이점은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의 생태와 일치하는 것이다. 물론 위 식물학자는 돌밭에 자라든지 저습지 연못가에 자라든지와 무관하게 ‘脊'(척)의 유무를 식별의 중요하고도 직접적 기준으로 삼을 뿐이다.

    한편 위 논문은 『세종실록지리지』(1454)의 ‘강원도’와 ‘경기도’의 토산품으로 石菖蒲(석창포)를 기록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의 ‘경기도’와 ‘평안도’의 토산품으로 石菖蒲(석창포)를 기록한 것을 인용하고 있다. 실제 기록도 그러하다. 『산림경제』의 「양화」편에도 중국 문헌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處處有之”(곳곳에 있다)라고 해 비슷하게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는 주로 남부지역의 계곡가 바위 틈에서 주로 자라므로 석창포의 생태와 차이가 있다. 이러한 기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주된 약재로 사용했지만,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현재의 창포(A. calamus)를 대용품으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재에도 창포를 석창포의 대용으로 약용하기도 한다). 다른 가능성으로, 중국 송대의 『본초도경』은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人多植於乾燥砂石土中“(사람들은 많이들 건조한 모래나 바위 흙에 심는다)라고 기록했고, 우리의 옛 문헌 『동국이상국집』과 『양화소록』에서도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식재하였음을 기록하였으며, 『임원경제지』의 「예원지」에도 “石菖蒲今人多植之乾燥沙石土中“(석창포는 현재 사람들이 많이들 건조한 모래나 바위흙에 심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석창포(A. gramineus)를 전국적으로 식재하여 재배하였을 수도 있다. 위 기록이 어느 가능성(혹은 둘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현재와 같이 식물명과 그 내용을 통일시키는 조치를 행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서로 다른 식물에 대한 혼용과 혼효는 자주 발견된다.

    2. 논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우리의 옛 문헌의 창포와 석창포에 대한 기록들

    위 식물학자의 논문에서 인용하거나 살피지 않은 창포와 석창포에 관해 언급하거나 기록한 수 많은 옛 문헌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위 논문의 내용과 다르게 해석되거나 될 수 밖에 없는 것 또는 민속적으로 의미가 있는 몇 문헌을 추가적으로 살펴 보기로 하자.

    (1) 화훼용 식물로 식재한 기록

    – 『동국이상국집』(1241)의 ‘石菖蒲'(석창포)

    고려 시대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에 의해 저술된 『동국이상국집』(1241)에는 ‘案中三詠‘(안중삼영; 책상 위의 세가지를 읊다)라는 시(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의 첫번째는 ‘小盆石菖蒲'(소분석창포; 작은 화분에 심겨진 석창포)이다. 이 시에는 기름진 땅에는 맞지 않고 푸른 잎이 난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으나, 그외 식별 형질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정확한 종을 식별하기는 어렵다. 다만 『동국이상국집』에서 ‘소분석창포’에 언급된 石菖蒲(석창포)가 창포속(Acorus)의 식물을 일컸었던 것이었다면, 식물체가 자라는 크기와 그 생태적 특성에 비추어 창포(A. calamus)라기 보다는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지칭하였다고 추정할 수는 있다.

    – 『양화소록』(1471)의 ‘石菖蒲'(석창포)

    조선 초기 강희안(姜希顔, 1418~1464)에 의해 저술된 『양화소록』(1271년 간행 추정)에는 ‘石菖蒲‘(석창포)를 화훼용으로 재배하는 식물(養花)로 기록하였다. 『양화소록』에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列置怪石下“(괴석 밑에 줄 지어 심는다)라 하였고, “寒溪之貧 沙石之貧“(겨울 시냇가 그리고 모래와 돌에 자라는 손님)이라 하였으며, “根盤九節 霜雪不枯“(아홉 마디 서린 뿌리는 서리와 눈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였고, “夜讀書 置案上“(밤에 글을 읽을 때 책상 위에 둔다)라고 하였으며, “今一種 根苗纖細 所謂石菖蒲“(현재 한 종류로 뿌리와 싹이 섬세하니 이른바 석창포이다)라고 하여 菖蒲(창포)의 일종으로 다루었다.

    이 역시 정확한 식별 형질 등을 충분히 기재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종을 동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생태에 관한 묘사는 창포속 식물 중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에 가장 근접하고 현재에도 석창포(A. gramineus)는 초물분재 또는 실내 조경용 등으로 식재하는 식물이기도 하다(이에 대해서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중 ‘석창포’ 참조). 따라서 『양화소록』의 기록은 『동국이상국집』(1241)에 비해 그 형태에 대해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므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일컫었던 것으로 보다 강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산림경제』(1715)의 ‘石菖蒲'(석창포)

    조선 중기에 저술된 『산림경제』의「양화」편에는 『양화소록』에 기록된 여러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고 더불어 화훼식물로 키우는 중국 문헌의 내용을 함께 기록한 후 앞서 논문의 저자가 인용한 “石菖蒲 一如菖蒲而細短 藥用石菖蒲是也 處處有之“(석창포는 창포와 똑같으나 잎이 좁고 짧다. 약으로 쓰는 석창포가 바로 그것인데 곳곳에 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산림경제』의 「양화」편에는 『양화소록』의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가져온 후 석창포에 대해 창포와 같은 잎이 좁고 짧다는 형태적 특징을 다시 추가로 언급한다. 이 역시 종의 식별 형질과 생태 등을 충분히 기재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종을 동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형태적 특징과 생태에 설명이 더 추가되어 있어 『양화소록』에 비해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일컫었던 것으로 보다 더 강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산림경제』의 「양화」편에는 화분에 재배하는 석창포-아주 강하게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로 추정되는 바로 그 석창포-가 약으로 쓰는 ‘石菖蒲'(석창포)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앞서 살펴 보았듯이 『산림경제』의 「치약」편에는 약재로 사용하는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生山中石澗沙磧上 其葉中心有脊 狀如劍刃“(산 중의 돌틈 모래더미 위에서 자라며 그 잎이 가운데는 등골뼈가 있으며 마치 칼날과 같다)라고 기록했다. 다시 말해 유척(有脊)해도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로 강하게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살피면 ‘有脊'(유척)하다고 하여 반드시 현재의 창포(A. calamus)를 일컫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더불어 ‘脊'(척)이 현재의 창포속(Acorus) 내의 종 식별 형질로 사용하는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륵)이라는 개념과 결코 같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 『임원경제지』(1842)의 ‘石菖蒲'(석창포)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에 의해 저술된 『임원경제지』에서 재배하는 원예식물을 다룬 「예원지」(藝畹志)는 건조한 돌 등이나 화분(盆)에 식재하는 식물로 ‘石菖蒲'(석창포)를 별도의 표제로 하여 그 토양과 식재와 재배 방법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때의 ‘石菖蒲'(석창포) 역시 앞선 문헌들에 비추어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일컫었던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그런데『임원경제지』의 「예원지」는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生於水石之間, 葉有劍脊, 瘦根密節, 高尺餘者, 石菖蒲也. 人家以砂栽之一年, 至春剪洗, 愈剪愈細, 高四五寸, 葉如韭, 根如匙柄粗者, 亦石菖蒲也. 甚則根長二三分, 葉長寸許, 謂之錢蒲是矣. 服食入藥須用二種石菖蒲, 餘皆不堪“(물의 돌 틈에서 나고 잎에 칼 같은 등골뼈가 있으며 가는 뿌리에 마디가 조밀하고 높이가 1척여 정도인 것을 석창포라 하고, 민가의 모래에 심은 지 1년된 것은 봄에 자르고 씻는데, 자를수록 더욱 얇아지고, 높이는 4-5촌이며 잎은 부추와 같고 뿌리는 숟가락 손잡이 같으면서 거친 것도 석창포라 하고, 매우 작아서 뿌리의 길이가 2-3푼이고 잎의 길이는 1촌 정도인 것을 전포라 한다. 복용하는 약에 넣는 것은 두 종의 석창포이고, 나머지는 모두 알맞지 않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임원경제지』의 「예원지」에 따르면, 역시 『산림경제』의 「양화」편과 「치약」편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로 강하게 추정되는 石菖蒲(석창포)가 약재로 사용하고 그 잎에는 등골뼈가 있는 유척(有脊)하다는 것이다. 有脊(유척)하면 모두 현재의 창포(A. calamus)라고 하는 위 식물학자의 견해가 전혀 타성이 없으며, 합리적 근거 없이 옛 사람들의 이해와 인식을 현대의 식물분류학의 내용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2) 자전류(字典類)의 문헌에 나타난 기록

    한자(漢字)를 해설하는 옛 자전류의 문헌에는 ‘菖'(창)과 ‘蓀'(손)등에 해석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조선 초기에 최세진에 의해 저술된 『훈몽자회』(1527)와 조선 후기에 실학자 정윤용(鄭允容, 1792~1865)에 의해 저술된 『자류주석』(字類註釋, 1865) 그리고 최남선(崔南善, 1890~1957)과 주시경(周時經, 1876~1914) 등이 참여하여 발간한 『신자전』(新字典, 1915)의 ‘蓀'(손)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훈몽자회』: “蓀 부들 손 一名 菖草 似石菖蒲而葉無脊“(蓀은 부들 ‘손’이라 한다. 달리 창초라고도 한다. 석창포와 비슷하지만 잎에 등골뼈가 없다.)

    – 『자류주석』: “蓀 향풀 손 香草 似石菖蒲 葉無脊“(蓀은 향풀 ‘손’이라 한다. 향초라고도 한다. 석창포와 비슷하지만 잎에 등골뼈가 없다.)

    – 『신자전』: “蓀 [손] 蘭蓀, 香草, 란초 <楚辭> : 蓀橈兮蘭旌“(蓀은 ‘손’이다. 난손 또는 향초라고도 한다. ‘란초’의 뜻이다. <초사>는 ‘손요혜난정’이라고 하였다).

    먼저 동일한 ‘蓀'(손)이라는 글짜에 대해 300여년이 넘은 세월을 경과하면서, 『훈몽자회』에서는 부들과 유사한 식물로 인식된 창포(菖)의 일종으로 이해되었으나, 『자류주석』에서는 향풀(香草)의 종류로 보아 창포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이 옅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앞의 두 문헌 모두에서 손을 약재와 화훼식물이었던 ‘石昌蒲'(석창포)와 대비되는 식물로 이해된 점은 여전히 동일하다. 석창포와 손을 구별하는 기준은 ‘脊'(척)이 있고 없음이다.

    위 식물학자는 ‘蓀'(손)은 무척(無脊)하므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이고 이 때 ‘石菖蒲'(석창포)는 현재의 창포(A. calamus)를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수차례 살펴본 바와 같이 ‘脊'(척)은 옛 문헌이 현재의 식물분류학의 식별 형질을 그대로 따라서 식물을 인식했다고 볼 합리적 근거가 없으며, 그러한 해석은 우리의 옛 문헌의 기록을 오히려 모순되게 할 뿐이다. 게다가 우리의 문헌에서 ‘蓀'(손)을 약재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으며 오히려 약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록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위 자전류의 문헌에서도 ‘蓀'(손)은 현재의 창포속(Acorus) 식물과 닮았으나 약재나 기타 같은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식물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신자전』에서는 난초의 종류로 보았는데, 『동국이상국집』을 비롯한 여러 옛 한시에서는 ‘蘭蓀'(난손)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蓀'(손)을 창포가 난초의 종류로 보고 있으며 석창포와의 비교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蓀'(손)을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로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3) 식용에 관한 문헌의 기록

    우리의 옛 문헌에는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를 식용하였음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주요한 것으로 『산림경제』의 「섭생」편과 『임원경제지』의 「인제지」의 ‘구황'(救荒)편이 있다.

    -『산림경제』의 「섭생」편 : “石菖蒲一寸九節者 五月五日採 陰乾百日 擣末服方寸日三 又根絞取汁 入糯米飮 細麴釀酒服 通神延命“(석창포는 1촌9절인 것으로, 5월 5일에 채취하여 응달에서 1백 일 동안 말려서 이를 빻아 가루를 만들어 사방 한 치 정도의 분량을 하루 세 번씩 먹는다. 또 뿌리로 즙을 내어 찹쌀밥과 누룩가루를 넣고 술을 빚어 먹으면 신과 통하고 수명도 연장된다)

    -『임원경제지』의 「인제지」의 ‘구황’편 : “菖蒲採根肥大節稀者 水浸去邪味 製造作果食之 案名狀見收採時令“(창포는 뿌리를 채취하는데, 살찌고 커다란 보기 드문 것을 물에 담가 요사스러운 맛을 제거하고 과자처럼 제조하여 먹는다. 이에 대한 이름과 모양은 수채시령에 보인다).

    『임원경제지』의 「인제지」의 ‘구황’편의 기록된 바에 따라 『임원경제지』의 「인제지」의 ‘수채시령’편을 찾아보면 ‘菖蒲'(창포)라는 표제하에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만을 약재로 채취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임원경제지』의 「인제지」전체를 다 살펴도 수창과 손을 약재로 사용한다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4) 단오의 풍습에 관한 문헌의 기록

    옛부터 5월 5일 단오절에 ‘菖蒲'(창포)로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다. 그에 관한 여러 문헌 중 대표적인 기록으로 조선 초기 학자이자 문인인 성현(成俔, 1439~1304)이 저술한 『용재총화』(慵齋叢話, 1525년 간행)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문인인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이 저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년 저술)가 있다.

    -『용재총화』: “五月五日曰端午 懸艾虎於門 泛菖蒲於酒 兒童編艾 菖蒲作帶 又採蒲根以爲鬚“(5월 5일은 단오라 하여 애호를 문에다 걸고 창포를 술에 띄우며, 아이들은 쑥으로 머리를 감고 창포로 띠를 하며, 또 창포 뿌리를 뽑아 수염처럼 붙였다.)

    -『동국세시기』: “男女兒童取菖蒲湯頮面皆着紅綠新衣削菖蒲根作簪或爲壽福字塗臙脂於其耑遍揷頭髺以僻瘟號端午粧“(단오에 남녀 아이들은 창포 끓인 물로 얼굴을 씻고 모두 붉은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는다. 부녀자들은 창포 뿌리를 깎아서 비녀를 만들고, 더러는 그 끝에 연수로 수 또는 복자를 새겨 쪽에 꽂아 전염병을 예방한다고 한다. 이것을 단오치장이라 한다)

    식물분류학의 종 식별 형질에 따라 이 기록을 살피더라도 그 형질이 충분할 정도로 기록된 것이 아니므로 이 역시 정확한 종의 동정은 어렵다. 그러나 당시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풍습이어서 인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띠를 만들기에는 식물체가 큰 것이 유리하였을 것이며, 비녀를 만들고 그곳에 글자를 새길 정도로 뿌리가 컸으며 현재까지도 각 지방에 남아 있는 단오절의 풍습 등을 고려하면 위 ‘菖蒲'(창포)는 현재의 창포(A. calamus)를 일컬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단오절 풍습에 창포가 사용되었다면 문헌상 기록에 일부 혼용, 혼선 그리고 혼효가 있었다하더라도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창포가 어떤 식물이었는지를 어렵지않게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3. 창포속(Acorus) 식물의 약재 사용에 대한 현황

    현재 우리나라에서 창포속 식물의 약재 사용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주요 문헌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제2020-73호, 2020.8.25. 개정): 석창포(石菖蒲) Acori Graminei Rhizoma 이 약은 석창포 Acorus gramineus Solander(천남성과 Araceae)의 뿌리줄기이다.

    -『신증보대역 동의보감』(법인문화사, 2012): 『동의보감』「탕액편」의 ‘菖蒲, 셕창포’ [기원] 천남성과 식물 석창포(石菖蒲; Acorus gramineus Soland.)의 뿌리줄기

    -『한의학대사전』(정담, 2014): 석창포/石菖蒲 천남성과 식물인 석창포 Acorus gramineus Soland.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이다.

    -『한국 본초도감』(교학사, 2014): 석창포(石菖蒲)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석창포 Acorus gramineus Soland.의 뿌리이다. 창포 Acorus calamus Linnne의 뿌리를 대신 약용한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국립수목원, 2021): 석창포 Acorus gramineus Sol. 근경은 石菖蒲(석창포), 잎은 菖蒲葉(창포엽), 꽃은 石菖蒲花(석창포화)로 [약용한다.] 창포 Acorus calamus L.근경을 白菖(백창)이라 하며 약용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나라에서 창포속(Acorus) 식물 중에 A. gramineus를 석창포라는 이름으로 약용하고, 일부 문헌에 따르면 A. calamus를 대용제로 사용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약의 안전한 유통을 위해 성분 분석을 하고 약재로 사용 가능한 종을 법령으로 고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석창포(石菖蒲)라는 이름으로 약용하는 창포속(Acorus) 식물은 A. gramineus(국명: 석창포)이다.

    그런데 현재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amineus)에 대한 약재 사용에 대한 현황이 위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위 식물학자는 괴이스러워 보이는 주장을 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먼저 위 식물학자는 “『동의보감』에 ‘菖蒲 셕챵포’라고 언급된 부분에 따라 잎맥이 없으며 Mori가 석창포라고 잘못 부른 A. gramineus를 학명과 국명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고 석창포로 부르면서 창포(A. calamus)보다 좋은 약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한의학계에서 석창포()를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 그리고 약성 분석과 각종 임상의 결과를 종합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모리 다메조(森為三, 1884~1962)가 저술한 『조선식물명휘』(1922)의 기록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의 창포와 석창포에 대한 기록을 오류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모리 다메조의 기록이 오류에서 현재가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우리의 옛 문헌에서 창포(A. calamus)와 석창포(A. gramineus)에 대한 기록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일본인이 기록한 그대로 따라서 현재까지 왔다는 발상이다. 우리 민족 스스로를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주입한 타율성론에 따라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위 식물학자는 엉뚱한 논문을 참으로 괴이하게 인용하고 있는데, “최근에 A. gramineus 뿐만 아니라 A. calamus도 모두 약재로 사용하고 있으며(Jo et al., 2013)”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 식물학자가 인용한 “(Jo et al., 2013)”은 조지은 외, 「UPLC-PDA를 이용한 창포류의 분류 및 함량분석」, 『한국식물과학회지』 제45권3호(2013)의 논문을 말하는 것이다. 이 논문을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석창포는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KHP)와 일본약전(JHP)에서 석창포(A. gramineus Solander)를, 중국약전(CP)에서 중국석창포(A. tatarinowii Schott)를 기원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석창포는 국내산의 재배량이 적어 주로 중국산 석창포가 수입되어 대체되고 있으며, 민간에서는 창포근이라고 하여 석창포와 같은 속 식물인 창포(A. calamus Linnne)의 뿌리줄기가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창포는 석창포에 비해 지상부가 높고, 길쭉한 모양의 잎과 굵은 뿌리 및 적은 마디를 가지는 외형적 차이점을 보이지만, 한약재의 특성상 절편되어 유통되기 때문에 구별이 어렵다. 또한 구절창포라 불리는 미나리아제비비과(*미나리아재비과의 오기임)인 알타이아네모네(Anemone altaica Fisher, *알타이카아네모네의 오기임)는 석창포의 고급품이라고 오인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석창포는 기원종이 다른 위품인 중국석창포, 창포 및 구절창포와 함께 유통되거나 오용될 가능성이 높은 한약재이다…(중략)…본 실험 결과를 통해 석창포, 중국석창포, 창포 및 구절창포를 명확히 구별할 수 있었고, 석창포의 품질평가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우선 지적할 것은 위 식물학자 스스로도 A. gramineus(국명 : 석창포)의 약재로 사용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고, 위 인용 논문에 따르면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모두 약전(藥典)에서 A. gramineus(석창포)를 옛 명칭 ‘石菖蒲'(석창포)의 기원식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7): 약전(藥典)이라 함은 의료에 사용되는 중요한 의약품에 대하여 제법(製法) ·성상(性狀) ·성능 ·품질 및 저장방법의 적정을 기하기 위하여 정해진 기준서(基準書)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사법에 근거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이를 관할하고 있다. 참고로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중국식물지'(영문판 및 중문판 포함)는 A. tatarinowiiA. gramineus에 통합하여 분류하고 있으로 『중국약전』(ChP)에서는 아직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연히 『산림경제』의 「치약」편에서 “水菖葉相似而但中心無脊 不堪入藥“(수창포의 잎은 창포와 잎이 비슷하지만 등골뼈가 없다. 약에 넣을 수 없다)라는 문구를 유의있게 보았어야 하고, 그것을 보았다면 최소한 『산림경제』의「치약」편의 ‘水菖'(수창)은 약재로 사용하는 A. gramineus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의 현재 한의학의 견해가 단순히 일제강점기의 식물학자 모리 다메조의 『조선식물명휘』의 기록 이후 아무 검토도 없이 A. gramineus를 약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위 식물학자에게 이런 약전 따위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척보면 아는 척(脊)은 현대 식물분류학의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륵)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 인용논문은 창포(A. calamus)는 민간에서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약재의 뿌리를 잘라 절편으로 만들어 유통하면 구별이 어렵게 때문에 UPLC-PDA라는 분석방법을 통해 그 구별 방법을 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창포(A. calamus)를 약재로 사용하는 것은 기원종인 다르므로 ‘위품'(僞品; 가짜 상품)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문이 위 식물학자에게는 A. calamus를 약재로 사용하는 근거로 이해되고 그래서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처럼 누군가가 세상을 현혹하기 위하여 사슴을 말이라고 하면, 위 식물학자에게는 이것이 곧 사슴=말인 증거가 되어 버린다. 스스로 지록위마(指鹿爲馬)하는 것이 아닌지 살필 일이다.

    4. 소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라 우리의 옛 문헌과 현재의 창포속 식물 약재 사용의 현황 등을 근거로 ‘菖浦'(창포)와 ‘石菖蒲'(석창포)와 관련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현재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및 주요 한의학 문헌 등에 따르면 옛 문헌의 ‘石菖蒲'(석창포)에 대한 기원식물을 석창포(A. gramineus)로 보고 있으며, 일부 한의학의 문헌과 민간에서는 A. calamus(창포)를 석창포의 대용품으로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 현대 식물분류학에 의할 경우 석창포(A. gramineus)는 식별 형질로 잎의 중륵(주맥)이 뚜렷하지 않은 특징도 있지만, 창포에 비해 식물체가 상대적으로 작고 상록성으로 자라며 산지 계곡의 돌틈에서 자라는 생태적 특징이 있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菖蒲(창포)에 대해 명칭을 넓게 사용할 때에는 석창포뿐만 아니라 수창과 손도 포함하는 것으로 기록했으며, 약용, 식용 및 단오절의 풍습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창포의 종류로 수창과 손을 기록한 문헌(『동의보감』과 『산림경제』등)에서는 ‘脊'(척)이 없고 약용하지 않는 것으로 기록하였으며, 달리 약재에 사용하는 식물로 기록한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 우리의 옛 문헌 중 『향약집성방』과 『동의보감』 등에서는 ‘菖蒲'(창포)에 대해서도 유척(有脊)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石菖蒲'(석창포)는 ‘脊'(척)이 있고 산지 계곡의 돌 틈에서 자라며 뿌리의 1촌9절(또는 12절)을 특징을 가진 것으로 기록하였고, 약용, 식용 및 화훼용 재배식물 등에 사용하는 것으로 기록했다.

    – 우리의 옛 문헌 중 石菖蒲(석창포)에 대한 한글명을 기록한 문헌에서는 그 명칭을 ‘돌서리옛숑의마’ 또는 ‘돌밧ㅎ.ㅣ난창포’라고 하여 돌틈에서 자라는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을 근거로 하여 살피면 우리의 ‘菖浦'(창포)와 ‘石菖蒲'(석창포)와 관련된 인식과 문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菖蒲'(창포)와 ‘石菖蒲'(석창포) 모두를 ‘有脊'(유척)하다고 기록하였으므로 그 때의 ‘脊'(척)을 현재의 창포속(Acorus)내 종의 식별 형질의 하나인 a distinct midrib(뚜렷한 중맥)과 동일한 개념으로 볼 수 없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약재로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은 식물인 ‘水菖'(수창) 또는 ‘蓀'(계손)의 잎에 대해 ‘無脊'(무척)하다고 한 것이므로 이는 약재로 사용할 수 없는 식물을 구별하기 위한 개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계손은 A. gramineus로, 수창포는 A. calamus로 지칭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계손 또는 수창포를 A. gramineus를 지칭한 것으로 볼 근거도 전혀 없다.

    – 우리의 옛 문헌에서 ‘石菖蒲'(석창포)에 대해 돌틈에서 자라면서 1촌9절 등으로 표현하면서 약재로 사용한다고 한 것 그리고 식물체가 작은 특징으로 돌 틈 등에 식재하여 기르는 식물이라고 한 것은 형태적 또는 생태적 특징 및 약용으로 사용하는 민속적 이용 형태 등에서 부합하므로 현재의 석창포(A. gramineus)를 지칭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초기 식물분류학이 정착되는 과정 및 기타 우리의 민속에 대해 어떠한 왜곡이 발생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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