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청소 아줌마의 미궁 속 죽음
        2006년 12월 20일 07: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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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은 홀로 살던 한 중년 여성 전용숙씨의 쉰 세 번째 생일이었다. 한달이 채 못된 지난 11월 25일 부천역 (주)SDK 청소 용역 미화원으로 입사한 전씨는 ’19일 특별 휴무’를 신청했다. 특별한 생일을 맞기 때문이었다.

    이번 생일에는 세 살 때 헤어진 딸과 오랜 세월 끝에 ‘데이트’를 앞두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밥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그 후 미용실도 가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이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특별 휴무가 예정 된 쉰 세 번째 생일은 5일장 끝에 치러진 발인식 날로 바뀌었다. 발인식엔 고용 업체 및 철도 공사 측 사람들이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언론 또한 전 씨의 죽음에 무관심했다.

    자신의 발인식 날이 돼버린 쉰세번째 생일  

    지난 15일 오전 8시경 그녀는 부천역 선로 옆 수풀에서 사망한 채로 선로원에 의해 발견됐다. 전씨는 입사한지 20일 만이다.  부천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전씨는 시신이 발견되기 전날 오후 5시 45분~6시 사이에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철로를 건너던 중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 부천역 철길
     

    그러나 사인만 밝혀졌을 뿐, 사고 경위와 사고를 낸 전동차 등은 사고가 발생한지 5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전모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이 추정하는 사망시간대에 사고 지역을 통과한 전동차는 3대에 불과하다.

    경찰은 전씨가 달리는 전동차의 측면에 부딪쳐 사망한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같은 추론은 철도공사의 사고조사반의 자체조사 결과에 근거한 것으로 경찰이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경험이 많은 기관사 한 명은 죽은 전씨의 상태로 봐서 측면 충돌보다는 정면 충돌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요청되고 있다.    

    또한 철도공사 쪽에서 부천역사에 있는 이마트의 원활한 영업을 위해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역내에 설치하지 않고, 철로 건너편에 가건물을 지어 미화원들을 이같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씨의 유가족은 "누이의 죽음에 따른 울분을 어떻게 표현하고 감당해야 할 지 모르겠다. 철도청이나 업체는 최소한의 인간적 성의조차도 보이지 않았다"라며 "들어간 지 20일밖에 안 된 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하고 또 그 후에도 사체가 오랜 시간 방치 된 것을 생각하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 할 수가 없다"며 분노했다.  

    유가족은 또 "누이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다른 분들의 상황이 환기되어 개선됐으면 좋겠다"라며 "무슨 한이 있더라도 누이의 죽음을 그냥 헛되이 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진상 규명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철로를 건너다가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난 14일, 전씨는 오후 2시에 출근해서 5시 30분께 부천 역 하행선 플랫폼에 청소하러 나갔다. 그러나 사고 당시 마지막으로 전씨를 목격한 동료는 7시 경까지 전씨가 보이지 않자 핸드폰으로 “퇴근하자”는 연락을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자, 전씨를 찾아 역사를 돌아다니다가 결국 혼자 퇴근했다.

    다음 날 선로반원들에 의해 발견된 전 씨는 작업용 고무장갑을 낀 체, 옷의 단추가 떨어져 청소복이 위로 올라 속살이 보이고 머리와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사체 주위엔 분리수거용 쓰레기 자루 및 청소 도구, 신발이 나뒹굴었다.

       
      ▲ 피해자의 떨어진 단추
     

    부천역과 주안역은 60개의 수도권 전철 노선 중 ‘예외적으로’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역구내 대신 선로 밖에서 별도의 가건물을 지어놓고 운영했다.

    이는 결국 미화원이 쓰레기 자루를 들고 4차선 선로 건너편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가기 위해 불법적으로 선로를 횡단하게 만들었다.  또 이를 관리 감독하는 용역업체나 철도청도 이미 ‘암묵적 승인’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유가족과 여성연맹은(위원장 이찬배)  △유족, 철도공사, 철도노조가 함께 진상 조사단을 만들 것 △ 선로에 설치된 분리수거장 이전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안전 대책 마련 △ 간접고용 및 비정규직 고용에 따른 사망 보상금 등을 한국철도공사에 촉구했다.

    여성연맹 이찬배 위원장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역 구내에 있지 않고 선로 밖에 설치 돼 있는 것은 미화원이 선로를 무단 횡단으로 건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언제라도 곧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았고, 전씨가 그에 따른 희생을 치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부천역의 경우, 역사 내 위치한 이마트의 상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철도공사가 쓰레기 분리장 가건물의 선로 밖 설치를 허용 한 것"이라며 "결국 역사 내 시설 관리 주체인 철도공사가 사망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철도청 – 용역업체 핑퐁게임 주고받아

    현재 철도청은 청소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용역업체에 일임했다며 그 책임을 넘기고 있다. 그러나 업체는 “안전 이행 시행 교육을 매일 충실히 했다”라며 “쓰레기 분리장 선로 설치 및 선로 무단 횡단을 근본적으로 용인해 준 철도청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오는 20일부터는 사고 시간 당시 전동차를 운행한 기관사들의 소환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기관사들의 1차 조사 결과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부천 남부서는 "아주머니가 전동차 옆에 가깝게 서 있다가 순간 균형을 잃고 흔들렸을 때 차의 측면에 치인 것 같다. 그럴 경우, 전차 운전차가 모를 수도 있다"라며 "전동차 사고의 경우 기관사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청소용역업체의 안전교육 책임 여부에 따라 형사상 처벌이 논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해 철도청과 같은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또 사고를 일으킨 전동차 조사에 대해서도 경찰은 조사의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철도공사 사고조사반에 진상조사를 맡겼다. 그 후 경찰은 " 전동차에는 아무런 사고의 흔적이 없다"라고 밝힌 철도청의 내부 조사를 받아들였고, "사고 후 15일 날 비가 왔기에 설사 흔적이 있다 해도 이내 지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철도청 vs 10년차 기관사-미화원 얘기 달라

    그러나 측면 사고로 단정 짓는 경찰과 철도청의 주장에 대해 10년차 기관사 A씨는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경찰이 찍은 현장 및 사체 사진, 사고 현장 도면을 본 A씨는 "사고 지점, 전씨의 부상 정도, 트인 공간의 현장 특성상 다른 객차의 측면 사고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운전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정씨 정도의 심한 부상이라면 해당 기관사가 사고 당시 어두워 사체를 보지는 못해도, 뭔가 이상한 것을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철도청과 경찰의 수사 의지에 강한 의구심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용역업체의 책임 이전에 ‘선로’를 관리 감독하는 철도청에도 1차 책임이 있다. 미화원이 분리수거를 위해 선로를 불법적으로 무단 횡단하게 만든 철도청의 과실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부천역을 관리하는 철도청 서부지부와 부천역에서 근무하는 미화원의 얘기도 엇갈렸다. 서부지부 담당자는 "안전한 다른 길이 지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지돼 있는 선로를 불법적으로  횡단한 건 미화원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부천 역에서 근무하는 한 미화원은 "십 수 년 간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모든 미화원들이 항상 그 선로를 일상적으로 횡단해 왔다. 위험한 줄은 알지만, 안전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부천역이나 용역업체도 모두 용인했다"라며 "분리수거를 할 시간에는 선로에 지나가는 ‘통로’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정해진 길은 멀고 시간이 많이 걸려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현재 사고 후 부천역은 선로 밖에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폐쇄하고, 역사 내 창고로 분리수거장을 옮겼다. 또 사건 후 선로 횡단 길이 막혀 지난 17일부터 미화원들은 정해진 먼 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성연맹은 “철도청도 경찰도 모두 전동차 사고를 인정했다. 사건 발생 당시 선로를 지나간 전차들의 모든 기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낸 기관사를 밝혀내지 못하는 것은 책임 회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며 “대형 마트의 상권을 보장해 주기 위해 청소 용역 노동자를 위험한 환경에 방치하고 ‘예견된 사고’를 만든 철도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유족과 여성연맹은 진상 조사 촉구 및 철도용역노동자의 위험한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철도공사 이철 사장의 면담 등 구체적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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