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지도자, 포퓰리스트 이명박
    생각도 행동도 않는 선배 김근태
        2006년 12월 19일 05: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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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선거가 1년이나 남은 현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지난 대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노무현의 지지율이 정몽준에게 크게 뒤진 3위였던 것을 반추해 보면, 누가 후보가 될지조차 모른다는 게 가장 솔직한 표현이다.

    어쨌거나, 근래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는 보수정치권의 자타천 대선 후보군은 대략 여섯 명쯤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이명박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김근태와 정동영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민주노동당 후보들에게도 밀리는 열린우리당의 대안으로 부각되곤 하는 고건도 레이스의 한 편을 차지하고 있고, 손학규는 대장정을 통해 기사 회생했다. 

    리더십은 조직력도 선동력도 아니다

    정치인에게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우리는 더 많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 대권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조직력이나 선동력으로 오해해 왔다. 그것은 법률상의 것이든 또는 초법적인 것이든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한과 자원이 집중돼 있었고, 따라서 대권의 전취가 정치의 종료이다시피 했던 옛 정치가 낳은 자연스러우나 왜곡된 인식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김영삼과 노무현의 국정 운영을 경험하며 리더십 논의의 진의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선출직 공직자의 임기 중 어떻게 살게 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고, 정치인에게 권력 위임의 적절성을 묻는 시험이다. 요컨대, 대통령 임기 중 자원과 시간의 낭비, 이해 충돌의 최소화를 위한 시뮬레이션이다.

    문제는 어떤 시험문제를 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연예인 마약사건을 보며 “뽕 맞는 게 어때? 노래만 잘하면 되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홉시 뉴스처럼 “공인이 그러면 안 됩니다”며 정색할 수도 있다.

    근래에 여러 언론매체가 쏟아내는 대권주자들의 리더십 분석은 대체로 ‘스타일’이나 ‘유형’을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심리 분석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석이 정치인의 행위 기원을 깊이 따지거나 예측할 수도 있겠지만, 대통령 개개인의 취향보다는 특정한 세력의 집합적 의사결정이 정착되고 있는 한국 현실 정치에는 적합한 분석틀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세 개의 분석틀 – ① 자기 철학과 시대 비전 ② 지지 기반과 동원 자원 ③ 커뮤니케이션 능력 -을 여섯 명의 후보들에게 적용해보려 한다.

    1. 자기 철학과 시대 비전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이 세세한 정책에 밝거나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은 싫어한다는 가치 기준, 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다는 대강의 지향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류가 철학자 아닌 정치인에게 사회를 맡긴 이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자기 철학이 국민이 요구하는 바나 사회발전 방향과 부합, 호응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은 특정한 시기, 특정한 사회에서, 특정한 권한을 가지고,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철학자가 아닌 정치인에게 사회 운영을 맡겨 왔다.

    철학이나 비전 측면에서는 김근태, 이명박, 손학규를 꼽을 수 있다.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는 그의 오랜 재야활동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약자에 대한 옹호, 조금은 남아 있는 진보성, 통일 필요성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는 쓸 데 없는 수사로 자신의 지위를 스스로 낮추기도 했지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관철시킨 논쟁이나 “하늘이 두 쪽 나도 국민연금을 지키겠다”는 발언은 재야 입당파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같은 ‘의장님’ 명찰을 달았으되, 변절을 미덕 삼는 386 국회의원들의 천박함과는 꽤 거리가 있다.

    ‘고문당한 재야인사’라는 이미지가 국민과의 괴리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만, 김근태가 내세우는 정책들, 경제 형평성 제고, 복지 확대, 남북 간 화해협력 강화 등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 요구로 제기되는 정책에도 부응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자기 머리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전민련 활동 당시에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김근태가 아닌 장기표였고, 열린우리당에서는 천정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김근태는 대체로 남이 제기하거나 싸운 후에 나선다.

    김근태, 그냥 모시는 선배일뿐 이념적 지도자 못돼

    386 후배들에게 있어서조차도 김근태는 ‘모시는 선배’이지 이데올로기적 지도자는 전혀 아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뭔가를 제기하거나 이끌지 못하는 그가 국민에게 시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김근태 캠프의 회심의 역작인 ‘빅딜’은 자유주의 정부의 수장이 되고자 하는 자가 내걸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이다. 그런데 김근태가 빅딜의 한 당사자인 노동운동을 끌어들이고, 협상 테이블을 유지해나갈 수 있을까? 김근태에게는, 1960년대 초부터 노조 강연을 다닌 김대중이나 노동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노무현과 같은 노동운동 경력이 없다.

    김근태의 비교우위는 대북 관계에 있는데, 한나라당조차도 다음 대선에서 완강한 반북 정책을 펼 가능성이 적으므로, 이 비전으로는 차별화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의 요구가 사회경제 문제에서는 뜨거운데, 대북 문제에서는 뜨듯미지근하다는 점이다. 민족 문제에 집중돼 있는 김근태의 경력과 아이디어는 민주노동당과 사회운동의 민족해방파 사람들을 포섭하기에는 쓸모가 있지만,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명박의 철학과 비전은 이중적이다. 그가 이중적이라기보다는 국민이 이중적이다. 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 통합에 대해 인텔리들은 비판적인데, 그런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별 이익도 거두지 못한 서민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경부운하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철학과 비전의 이중성

       
     ▲ 이명박 전 서울시장
     

    경부운하는 자신의 건설업 경력, 성공적 정책의 지속 강화, 국민들의 고성장 욕구를 통합시킨 합리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경부운하 등의 이명박식 정책 시행이 결국 복지 자원의 축소와 빈부격차 심화로 귀결되어, 지지 이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은 며칠 전 사석에서 경쟁후보의 사생활에 대한 루머를 직접 언급했다. 그 루머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경쟁자의 사생활을 자기 부각의 논거를 쓰는 행태, ‘권력욕’이라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에 대한 경계는 대개의 유력 후보들에게는 불문율이지만, 이명박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그가 아직은 너무 거칠거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박정희와 정주영에게 교육받은 낡디 낡은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즘은 이런 걸 ‘비전’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명박은 여섯 명의 주요 대권주자 중 유일한 포퓰리스트이고, 경부운하는 대선 1년 전의 아젠다세팅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성공작이다. 이명박은 한국민의 모순적 욕구에 가장 일치한다.

    손학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언제나 ‘중도개혁’ 이미지로 나온다. 그런데 중도개혁이라 칭해지는 조류의 실체는 신자유주의이고, 손학규는 주요 대권주자 중 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소신을 가지고 있다. 그가 경기도지사로서의 치적으로 으레 앞세우는 것은 해외투자 유치와 영어마을 조성이다.

    손학규, 가장 강력한 신자유주의 소신의 보유자

       
      ▲ 손학규 전 경기지사
     

    손학규의 지지도가 과히 높지 않은 것은 그의 소신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에 임하는 국민들은 버릇처럼 ‘중도개혁’에 표시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정책에는 늘상 반대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고건, 정동영에게 철학이나 비전을 묻기는 곤란하다. 세 사람의 캠프에서도 수천 쪽짜리 자료집을 내놓을 수야 있겠지만, 언론도 나도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에 대한 지지 집단이 철학이나 비전 때문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유신 공주’, ‘대독 총리’, ‘스타 앵커’일 따름이고, 이 세 사람 중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자, 이제 어찌할지 이야기해봅시다”라는 모험이다. 물론 김영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을 만큼 모험을 즐기는 국민이기는 하다.

    2. 지지 기반과 동원 자원

    역동적인 한국 정치에서 5년 임기를 맘 편히 지낸 대통령은 없고, 앞으로도 상당히 오래 동안 한국 대통령은 매순간마다 선거를 치르며 살 운명이다. 따라서 지지 기반이나 자원은 안정적 국정 운영과 상시적 정권 재창출, 정치 의사 전파를 위한 필수 준비물이다.

    지지 기반이나 자원 측면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김근태, 손학규를 살펴 보는 게 재미 있다.

    가난을 벗고 입지전을 이룬 이명박은 정치적 지지 기반 역시 스스로 마련했다. 경북 출신에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이 그를 대권에 가장 근접시켜 준 것은 아니다. 그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과 수도권, 중간소득 계층에서의 폭넓은 지지 덕분인데, 이는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쌓은 것이다.

    특히 개발주의 부동산 정책은 잠재적 중산층인 고소득 노동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점만 따지자면 그는 유능한 정치인이고, 쉽사리 꺼지지 않을 기반을 갖춘 안정적 주자다.

    박근혜의 가장 큰 약점,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사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의 가장 큰 약점은 박정희의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점이다. 그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박정희의 그늘 덕분인데, 대선에 가까이 갈수록 박정희의 추억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향하고 있다. 지지율 선두를 달릴 때에도 ‘한나라당 대통령감’에서는 2위로 밀리고, 대통령보다는 총리로 더 높은 지지율이 나오는 따위가 그런 것이다. 영남 주민과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여성인 박근혜를 대통령의 보조자로 인식하고 있다.

    어쩌면 박근혜가 선택해야 했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엄한 아버지 – 자애로운 어머니’ 전략이 꽤 성공적이었으므로, ‘자애로운 어머니’도 박근혜의 선택지 안에 충분히 들 수 있었다.

    그런데 박근혜는 ‘영부인 후임자’로서나 현실 정치인으로서나 육영수를 벤치마킹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한나라당 안에서의 권력 확대와 안정화를 위해 ‘엄한 아버지’ 상을 보이는 등 양성성을 선택했다. 이것이 박근혜에 대한 지지가 섹슈얼리티에서든 젠더에서든 제대로 확장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국민들이 김근태와 지역을 연상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김근태의 지지 기반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김근태의 지지 기반은 열린우리당의 개혁 성공 여부와 부침을 같이 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이미 회복 불능 사태다.

    게다가,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새판짜기’는 김근태의 지지 기반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선 탈락을 의미할 뿐이다. 그가 애용하는 ‘민주개혁세력 연합론’은 노무현 당선으로 성공한 바 있지만, 유권자인 ‘민주적 시민’들에게 환멸적 경험을 주며 용도 폐기된 지 오래다.

    손학규는 “민주화와 세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이 말 그대로라면 그는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되어야 했다. 열린우리당 노선으로 한나라당에서 일하고, 지식인 집단 이외의 지지를 얻어본 적 없는 손학규가 갈 수 있는 길은 유력한 무소속 제3후보다.

    정치인보다 인테리어 인부들이 많은 고건 사무실

       
     ▲ 고건 전 총리
     

    몇 번의 ‘정치쇼’ 후에도 고건의 사무실에는 정치인들보다 인테리어 인부들이 훨씬 많이 찾아든다. 이러저러한 공식 비공식 정치매체들은 고건 캠프의 ‘정규 멤버’가 아니라, 경우의 수에 따라 달라지는 ‘후보 명단’을 보도한다.

    정치적 합종연횡 과정에서 우연히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고건의 집권은 선출보다는 한국 정치지배블록의 협상과 추대에 가까울 것이고, 국정운영은 상시적 불안 상태에 있게 된다.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최규하를 벌써 부활시켜서야 되겠는가?

    지지 기반 측면에서는 고건과 정동영이 가장 퇴행적이다. 상종가를 달리다 한 자리 지지율로 주저 않은 정동영, 그 뒤를 이어 거품이 빠지고 있는 고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전라북도 연고 외에는 내세울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합종연횡 중에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명박 박근혜 김근태 같은 열정적 지지 그룹이 없고, 대통령이 되더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3. 커뮤니케이션 능력

    CEO는 결정하고 명령하지만, 대통령은 결정하고 설득해야 한단다. 전두환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답하겠다. 전두환은 총으로 말했고, 노무현은 짜증을 내며 뒤돌아 앉았다.

    여섯 후보 모두 낙제점

    내성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는 성격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듣고 말하고 설득하는 정치인의 소양은, 공적 사회활동 경험, 특히 정치나 준정치 활동을 통해 배양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는 여섯 후보 모두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서울시청 공무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명박은,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1970년대에는 “We can do it!”이 멋진 구호였겠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시대착오가 아닐까.

    ‘카우치 알몸 노출 사건’ 때 이명박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 문화계의 항의가 거세지자 이명박은 홍대 클럽을 직접 방문하여, 화해와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가 이명박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보여준다.

    손학규가 ‘박카스 광고’ 같은 국토 대장정에 나섰을 때, 그의 캠프 사람 중 몇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드디어 접으시려는구나.’ 접기는커녕 기세등등하게 서울로 입성한 손학규는 북한에 대한 성토로 정치를 재개했다. 하지만 그는 캠프 보좌진에게조차 ‘대학교수’로 비쳐질 정도로 설득력이 부족한 듯하다. 국민과 대화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손학규는 정치브로커들에게 ‘문구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까다로운 고객’으로 악명 높다. 이것은 꼼꼼한 성격에서 오는 장점이 아니다. 대통령의 이런 ‘장점’은 민주주의의 기능 분화 측면에 대한 몰이해이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권한이 무한대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국민은 이런 현상을 고달프게 경험했다.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에 하달되는 계몽 커뮤니케이션 말이다.

    정동영, TV 카메라 앵글 안으로 자신을 고립시켜

       
     ▲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전직 ‘스타 앵커’인 정동영은 기회 있을 때마다 빼어난 말솜씨를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말은 국민과 상호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노무현의 그것처럼 일방적인 것이다. 노무현은 국민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며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정동영은 TV카메라 앵글 안으로만 자신을 고립시킨다. 대통령과 국민이 원맨쇼 진행자와 청중의 관계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적극적 의사 전달자인 앞의 세 사람에게서는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박근혜, 고건, 김근태에게서는 이렇다 할 커뮤니케이션 노력도 발견하기 힘들었다.

    결 : 박정희를 되살려야 하나?

    여섯 명의 보수정치권 대권주자 중 네 명이 운동권 출신이다. 그런데 그 여섯 명 중 적어도 서너 명이 박정희를 흉내 낸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유주의 세력에 신물 난 국민들이 박정희와 함께 한 ‘좋았던 시절’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박정희의 대업을 이을 수 있을까?

    박정희 리더십이 얼마나 취약했는지 다 잊었나

    박근혜는 아웅산 수지보다 아로요에 가깝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가 당선된다는 것은 박정희의 현연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정치권력 복귀를 의미할 뿐이다. 박정희에게 채용돼 일곱 명의 대통령 밑에서 장수한 고건이 박정희를 운위하는 것은 블랙코미디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대통령이 위기에 처할 때 ‘행정 달인’으로 나라를 구하는 데 다시 한 번 나설 기회가 있을 것이다.

    ‘뜻(구상)’을 품고 있다는 점만 따져 보면 오히려 김근태가 박정희에 가장 가깝고, 박정희의 정치상징인 성장주의는 이명박이 대표한다. 이 두 사람이 박정희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박정희가 매우 취약한 리더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박정희는 총칼을 들고서도 윤보선과 김대중에 위협당할 정도로 약한 대통령이었다. 그가 지금까지도 지지받고 있는 것은 강력한 산업자본을 육성하고, 알량한 임금이나마 손에 쥐게 된 저임노동자들과 이중곡가제 혜택을 받는 농민을 포섭했기 때문이다. 그 지지집단을 구성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그리고 사자(死者)가 신전에 오르는 데는 망각의 20년이 더 필요했다.

    대권 후보 중의 누구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을 터이니 17대 대통령 임기 중 박정희 신화가 재연될 리는 만무하다. 박정희 리더십 신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선거 승리보다는 정책 교환을 통한 지지 세력 구축에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책의 현대적 긍정성은 ‘국가 개입’과 ‘형평성’에 있다.

    * 이 글은 진보정치연구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미래공방> 창간호에 실린 것입니다. 2007년 1월호로 창간된 <미래공방>은 21일경 배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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