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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국방전략과 군비증강, 그 한계
    [국방칼럼] "더 많은 지출이 아니라 더 나은 지출"
        2021년 11월 08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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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가의 경제력은 ‘국내총생산’(이하 GDP) 규모로 평가된다. GDP의 전신인 GNP(국민총생산)는 2차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이 낳은 발명품으로서 국가는 GDP 통계를 이용해서 전쟁을 비롯한 여러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자국의 잠재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 GDP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는 전쟁을 수행할 여력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찰스 히치’는 군사력의 척도인 국방비에 대해서 국가가 보유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변환시킨 비용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국가는 ‘GDP에서 국방분야에 할당해야 하는 몫의 규모’를 놓고 늘 고민하게 된다. 아쉽게도 이 문제를 풀어줄 객관화된 기준이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이해당사자들은 ‘대통령의 의지’를 예산으로 보여달라고 떼를 쓴다.

    국방비 책정 과정에서 ‘증가율’은 대단히 중요한 성격을 갖는다. 첫째, 한국은 예산 편성에 있어서 외부변수에 좌우되기보다는 전년도 예산에 기반하여 당해연도 예산을 결정하는 점증주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각 분야의 매해 예산 증감율 추이는 차후 예산 편성의 기준점이 된다. 1990년대 초까지는 1975년에 신설된 방위세를 활용하여 GDP의 5.5~6%를 국방비에 고정적으로 투자하였으나 전력증강계획인 ‘율곡사업’의 대규모 비리로 인해 이 방식에 의한 국방비 증액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둘째, 한국 국방비는 외환위기가 진행되던 1999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팽창해왔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행정부 모두가 국방예산 증대를 통한 ‘군사력 증강’이라는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해 왔다. 한국 군부는 ‘국방비 결정에 있어서 국가경제와 국민복지 문제는 기본 고려요소가 아니며 국가의 생존과 안보문제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주장한 미 경제학자 ‘오스카 모겐스턴’의 안보지상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2009년 8월 이상희 국방부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른바 ‘진보∙좌파정부’에 미치지 못하는 국방비 증가율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편지를 보낼 정도로, 한국 군부는 국방비 증가율이 국가안보의 바로미터이자, 대통령의 안보관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이해해 왔다.

    사진 : 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자 공보(중앙선관위) – 자유주의 성향의 후보가 이례적으로 안보 대통령을 자임했으며 극우성향 조원진 후보의 국방비 50조 공약을 임기 내 달성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 증액 현실과 의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직전 보수정권들이 노무현 행정부의 8.76%보다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이 낮은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안보는 보수’라는 기존 통념을 뒤흔들었다. ‘안보대통령’을 자임하는 민주당 후보의 색다른 주장은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국방비가 더 늘어난다’는 ‘새로운 가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문 행정부의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은 6.5%이고, 전력증강비용인 방위력개선비 증가율은 7.38%이며 전 정부 대비 국방비 총액 증가율은 37%에 달한다. 이 실적은 이명박(5.32%, 5.86%, 29%), 박근혜(3.98%, 4.65%, 17%) 행정부의 통계치를 월등하게 앞서는 것이다.

    최근 포린폴리시에 실린 ‘나단 박’의 글에 언급된 김정섭 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의 발언을 보면 문 행정부의 국방비 증액 의지는 애초에 군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2016년 한국국방연구원은 2030년까지 15년간 연평균 3.6%의 국방비 증가율을 전망하였고, 정권교체 직전인 2017년 3월 국방부 계획예산관실은 2025년까지의 국방비 증가율을 연평균 3.8%, 그 이후 2030년까지는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이 국방부는 차후 어느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국방비 증가율이 획기적으로 인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취임 후인 7월18일 군 지휘부와의 오찬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2.4% 수준인 국방예산을 임기 내 2.9%까지 올리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보수정권의 국방비 증가율에 내심 불만을 갖고 있던 군부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다. 노무현∙문재인 두 중도우파 정권이 북한에 대한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서도 보수정권보다 군비증강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기조이다. 이처럼 국가안보전략에서 상충되는 두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은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비롯된다.

    1996년 김영삼 행정부가 8.15 경축사에서 발표한 남북관계 3대 원칙은 첫째 ‘북한의 고립을 바라지 않는다’, 둘째 ‘북한의 안정을 원한다’, 셋째 ‘일방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이다. 반면에 1998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행정부가 취임식에서 발표한 남북관계 3대 원칙은 첫째 ‘무력도발을 용납치 않는다’, 둘째 ‘북한을 흡수할 생각이 없다’, 셋째 ‘가능한 분야부터 남북 화해협력을 추진한다’이다. 김영삼 정권의 남북관계원칙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김대중 정권에서는 첫 번째 원칙에 들어가 있다. 이는 남북대화를 패배와 굴복으로 받아들이는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한 자기검열이다.

    문 대통령은 18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을 쟁점화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시 선거공보물과 공약서에는 안보 관련 공약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보수주의가 아닌 다른 신념체계에 들이댄 가혹한 사상검증이었다. 이후 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18대의 ‘평화와 공존’에서 19대에 와서는 ‘안보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림 : 분쟁곡선(Curve of Conflict) – 폭력적인 분쟁의 과정은 분쟁의 강도(세로축)와 분쟁의 지속시간(가로축) 이 두가지 관점으로 추적할 수 있다.(미국평화연구소)

    위 그림은 ‘마이클 런드’의 ‘분쟁곡선’이다. ‘갈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조되기도 하고 감소하기도 한다. 이 곡선은 갈등이 변화하는 과정과 분쟁곡선상의 서로 다른 국면들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첫 번째 단계는 적대감이 쌓이고 긴장이 고조되며 폭력의 발생이 확대되는 과정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갈등이 전쟁에 의해 최고수준에 이르렀다가 진정되는 과정이다. 세 번째 단계는 갈등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과정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방외교(Prevention Diplomacy)가 중요하다. 세 번째 단계에서 화해로 가기 위해서는 평화구축(peacebuilding)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해서 전쟁의 정점에 이르렀다가 1953년 정전협정 체결을 통해 갈등을 진정시키고 평화를 정착(peacemaking)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매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2단계에 장기간 머물러 있는 이유는 상대를 대화와 협력의 대상으로 보느냐, 아니면 경계와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느냐라는 선택의 길목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문재인 행정부는 위기관리(핵·WMD 대응체계)라는 틀 속에서 평화정착(종전선언)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에 대한 위기관리에 몰두하여 군비증강에 치중할 경우 평화정착이 지체되어 평화구축 단계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과거의 ‘세력균형’ 이론가들이나 현대의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단은 힘(군사력)이라고 주장해왔다. ‘공격적 현실주의자’인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국가와 재래식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호주국립대의 ‘앤드류 카’ 부교수에 따르면 중견국은 강대국처럼 다른 국가를 강압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국을 방어할만한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중견국의 목표는 주변국가도 전쟁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스스로 침략을 재고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군사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방위충분성’이라고 한다.

    문재인 행정부의 ‘균형있는 협력외교’는 노무현 행정부의 ‘균형적 실용외교’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계승하고 있다. ‘균형자론’은 한국이 미국 주도 국제질서 아래에서 벌어지는 강대국 간의 끊임없는 갈등의 악순환 속에서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의 발언권 또는 자율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문재인 행정부의 ‘자주국방’은 이러한 입장에서 추진됐다. 이미 1990년대부터 영토수호 위주의 방어체제에서 탈피해서 국가핵심이익을 보호하는 개념으로 군사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적의 도발을 응징∙보복하기 위한 독침전략, 공세적 방어로 침략자를 괴멸시키는 고슴도치전략 등이 논의되었다. 원래 박정희의 ‘자주국방’ 개념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미군철수’에 따른 전력공백에 대처하기 위한 수동적 대응 차원에서 확립되었으나 이제 북한을 넘어 새로운 미래 위협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으로 확장됨으로써 대규모 국방비 증액에 대한 추가 부담과 문제점들이 파생되었다.

    스마트파워의 맥락에서 본 한국의 자주국방은?

    2004년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성찰의 일환으로 ‘스마트파워’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스마트파워’는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칭하는 ‘하드파워’와 가치관, 문화, 과학기술, 교육, 외교 등을 의미하는 ‘소프트파워’를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활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앞으로의 세계는 강제력, 물리력에 기반한 ‘전통적인 힘’과 흥미, 매력, 소통이 주는 ‘새로운 힘’을 복합적으로 갖춘 국가가 번영하게 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스마트파워’라는 관점에서 본 한국의 자주국방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되었다. 자주국방의 핵심이 ‘소프트파워’인 ‘작전통제권’의 환수였음에도 주창자인 박정희 정권 이래 제대로 실현하려는 노력이 미약한 가운데 ‘하드파워’ 일변도의 전력증강사업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한국군은 전략, 개념, 군사교리를 독자 정립할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미국의 군사이론을 그때그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이다. 이는 한국군의 균형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방예산만 폭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자주국방은 ‘정치구호’ 또는 ‘레토릭’에 불과했다.

    예컨대 지난 3월31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AH-64E ‘아파치 가디언’ 헬기를 추가 도입하는 사업비 3조1700억 원의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 추진기본전략을 의결했다. 이 사업은 육군의 ‘입체고속기동전’ 교리에 기반한 무기도입사업이다. ‘입체고속기동전’이란 얼마전 작고한 윤용남 전 합참의장이 1980년대 미육군의 ‘공지전투’(Airland Battle) 교리를 도입하여 육군에 전파한 것이다. 전투부대와 교신한 전투기와 공격형 헬기가 출동해서 전달받은 좌표에 타격을 가하는 것을 ‘근접항공지원’(CAS, Close Air Support)이라고 하는데, 입체고속기동전은 공군의 임무인 근접항공지원을 육군이 자체적으로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육군과 공군은 근접항공지원을 위한 별개의 조직과 별도의 무기체계를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부대구조와 작전영역이 서로 중첩될 수밖에 없다.

    그림 : 다영역 개념(Multi-domain) 미회계감사원(GAO) 미육군은 기존의 공지전투에서 벗어나 바다, 우주, 사이버공간 같은 회색지대로까지 전장 개념을 확장한 다영역 작전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육군이 군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차후 수용할 가능성이 있으나 중국을 겨냥한 작전개념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국방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군은 더많은 예산 확보를 위해 미 공군의 자원 할당 방식인 ‘하이 로우 믹스’(High-Low Mix)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하이 로우 믹스’는 소수의 외과의사와 다수의 간호사로 구성된 병원수술실 진용이 인력운용과 수술 진행에 매우 효과적인 조합인 것처럼 고성능과 저성능의 무기체계로 복합전력을 구성하면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한국 육군은 육군항공의 전투력을 대형공격헬기인 ‘아파치 가디언’과 소형무장헬기인 ‘LAH’로 이원화하여 운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라는 단일전장에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군이 게릴라에서부터 전략핵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전장에 적응해야만 하는 미국군의 개념을 접목하려는 것은 예산은 팽창시키되, 인력과 전력유지비는 절감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사례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표적타격’(Kill chain)’개념이다. 원래 킬체인은 미 공군의 ‘이동표적교리’(Dynamic Targeting Doctrine)에 나오는 용어로써 목표 달성을 위한 6단계 절차(탐색, 식별, 추적, 표적선정, 교전, 평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2000년 6월 미국 ‘헨리 스팀슨센터’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사일방어체제(TMD)’라는 실무보고서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미사일방어체제의 한계를 거론하며 주한미군에게 효율과 비용, 위협 우선순위라는 측면에서 미사일방어체제보다 효용성이 큰 공군력에 의한 반격작전(counter-offensive)을 추천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미공군의 교리를 한국군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킬체인은 육군의 현무 지대지미사일을 주축으로 하는 타격개념으로 뒤바뀌었다. 중요군사교리가 특정군의 이기주의로 인해 왜곡되다 보니 국방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국방개혁과 자주국방을 내세울수록 군사력의 미국 종속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국방예산 확대는 미국이 요구하는 단골소재이다. 우리나라의 국방비 책정이 1990년대 초까지 GNP 5.5~6% 수준에 고정된 것은 1978년 미국 카터정권의 요구를 박정희정권이 수용해서이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방문한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은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국방예산 감축 여부에만 관심을 가졌다. 한국이 외환위기에서 벗어나자, 2003년 6월 방한한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한국 정부가 현재 GDP 대비 2.7%인 국방예산을 더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며 국방비 인상을 촉구했다.

    이미지 : 엠비씨뉴스 (1998년 1월 22일) – 동맹국의 경제위기 앞에서 이런 공개 발언은 자제했어야 했다.

    이처럼 미국이 한국의 국방비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이다. 첫째는 방위비 분담금이다. 한국 국방비가 늘어날수록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서 분담금의 안정적인 증액을 보장받을 수 있다. 문재인 행정부가 지난 3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증액방식을 기존의 물가상승률 연동에서 국방예산 증가율 연동으로 타결함에 따라 분담금의 대폭 증액이 가시화되었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자로 향후 국방비 증액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한 건 잘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는데 이는 정부의 협상실책을 지나치게 감싼 발언이었다. 미국은 향후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방식이 자국에 불리할 경우 차기협상에서 새로운 요구조건을 내걸 것이다.

    두 번째는 무기판매이다. 미국의 국방비 증가 요구는 방위력개선비의 증액, 다시 말해서 ‘미국 무기를 더 사달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지난 5년(2016~2020년)간 한국의 무기 수입액 13조3천여억 원 중에서 미국산 무기 수입액은 10조3,647억 원으로써 전체 수입액의 77.8%에 달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무기수출액에서 57.5%를 차지하는 항공기와 16%를 점유하는 미사일은 한국방위산업이 아직까지 확보하지 못한 최첨단 과학기술로 제작된, 미국군수산업을 대표하는 무기체계이다. 수입액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행정부떄 계약해서 현재 배치중인 F-35A 스텔스 전투기(사업비 7조4천억)이다. 문재인 행정부에서도 ‘P-8A’ 해상초계기(1조9천억), ‘MH-60’ 시호크 해상작전헬기(9,600억) 패트리어트 ‘PAC-3 MSE’유도탄(4,000억), ‘SM-2’함대공유도탄(3,400억) 등의 도입이 확정됐다. 한국이 미국 무기의 ‘독점경쟁’ 시장이라는 것은 미국 보잉이 ‘F-15K’ 전투기 59대의 성능개량사업비로 4조 원, E-737’ 조기경보통제기 4대의 성능개량사업비로 1조6,300여 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제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무기수입시장 독점을 수용하는 명분은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다. 상호운용성은 다국적군이 합동작전을 수행함에 있어 부여된 임무를 달성할 수 있게 효과적,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나토군이 말하는 상호운용성은 동맹군이 같은 무기를 운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기체계들 간의 원활한 통신과 정보교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토군이 사용하는 유럽제 무기가 동맹군 간의 합동작전에 불편함이 없으면 그만이다. 무엇보다도 상호운용성은 1990년대 초 나토군이 유럽이 아닌 중동지역에서 전쟁을 하게 되면서 중요성이 부각된 개념이기 때문에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한국군이 이 개념을 무조건 추종할 필요는 없다. 결국 무기체계 종속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국방비 간섭이 막대한 국방예산의 팽창을 유발하게 되므로 정작 미국이 우리나라 국방개혁과 자주국방의 수혜를 누리는 셈이다.

    군사안보적 위협과 위험의 차이

    한국의 국방전략은 위협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위협’과 ‘위험’의 차이를 무시하려고 든다. 국제정치에서 위협은 힘(군사력)을 앞세워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국가의 의사, 의지 또는 자세를 말한다. 국가는 대체로 주변국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국방전략을 수립한다 위험은 불안정한 상태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써 조건에 따라 위협으로 확대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군부는 북한을 현존위협으로, 주변국을 잠재위협 또는 미래위협이라는 희한한 용어로 구분한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을 위협으로 보느냐, 위험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국방비의 책정규모가 달라진다. 주변국 군사력의 위험성을 냉철한 분석없이 개연성만을 가지고 위협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첫째, 전력증강이 필요하다, 둘째 국방비를 증액해야만 한다, 셋째 군사활동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리로 귀결된다.

    예컨대 한국의 국가방위권역은 크게 보면 주전장인 한반도를 비롯하여 중국의 칭다오, 다롄, 일본의 히로시마가 포함되는 한반도 주변 500Km를 포괄하는 절대방위권역과 500Km를 넘어서 2,000Km 범위의 동아시아 일대를 말하는 감시권역(또는 억제권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절대방위권역은 한국군이 제한적인 응징과 보복을 구사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

    감시권역에서 군은 위기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감시∙정찰 등의 정보활동에 주력하며 외교활동이 모든 행위에 우선한다. 그런데 군이 추진중인 항공모함과 언론에 회자되는 준중거리탄도유도탄(MRBM)은 한반도 주변 500Km 이내 절대방위권역에서 운용할 성격의 무기체계들이 아니다. 우리가 미∙중 갈등에 휘말릴 여지가 다분한 가운데 막대한 국방예산을 들여 한반도 주변 작전환경에 부합하지 않는 무기들을 보유하려는 움직임이 과연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 전방위 안보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국방역량 강화는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이라는 그늘에 가려버릴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와 급신장한 한국 해군력은 중국의 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한반도 주변 영역을 벗어난 군사활동의 확대는 한미군사동맹의 작전지역범위를 확장하고자 하는 미국의 이익에 복무할 위험이 크다. 바로 이 지점이 한미동맹의 성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문제는 문재인 행정부가 박근혜 행정부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전작권 환수는 한반도 안보 주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뀌는 것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의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문 행정부는 전작권 환수에 대한 확실한 기한을 정하지 않았고 조건 충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 이전 정부의 잘못된 합의내용을 시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함으로써(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태도와 비교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국방예산만 쏟아붓는 결과를 만들었다. 노무현 행정부 당시 전작권 전환을 미국 무기 수출의 호기로 역이용한 미국의 행태가 문 행정부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이 합의는 전작권을 이관받고 싶지 않았던 박근혜 행정부와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변화로 인해 전작권을 이양하고 싶지 않았던 미 오바마 행정부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탄생한 작품이다. 따라서 집권 초부터 한∙미 대통령 간의 정치적 결단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고 최소한 평시작전권 환수 당시 돌려받지 못한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s Delegated Authority)이라도 환수를 했어야 하나 여전히 진척된 사항은 없다.

    문재인 행정부는 ‘글로벌파이어파워닷컴’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군사력순위(GFP)’에서 한국이 임기중 6위까지 올라옴으로써 군사강국, 자주국방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문 행정부의 국방전략이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경로종속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개념은 처음에 특정한 경로를 채택하게 되면 나중에 보다 좋은 방향이 나타나더라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기존 경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로 변경에 수반되는 비용과 갈등을 감안하면 기존 경로를 고수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의 모순은 과거에 만들어진 정책, 제도, 비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사진: 1978년12월27일 9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 특집기사(경향신문) –문재인 행정부가 박정희의 부국강병론에서 자유롭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문재인 행정부는 박정희가 설정한 부국강병 이데올로기라는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는 쉬운 길을 택함으로써 노무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전작권 전환에는 미온적이나 국방예산 증액에는 적극적인 한국 군부의 절묘한 이중태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문민 출신 국방부장관을 발탁하지 않고 군부 스스로 국방개혁을 실행하게 한 것은 검찰개혁이라는 이른바 ‘지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비검찰 출신 인재를 적극 발탁한 사실과 비교된다. 이런 한계로 인해 문재인 행정부의 군사강국 기조는 그렇게 많은 국방비를 써서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는 조선일보 특유의 비아냥과 군비경쟁으로 안보딜레마가 가중됨으로써 평화정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냐는 대화파 학자들의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 의장이자 메르켈 내각의 외무장관으로서 2017년 3월 미 틸러슨 국무장관의 국방비 증액 요구에 반발한 ‘지그마어 가브리엘’은 “더 많은(MORE) 지출이 아니라 더 나은(BETTER) 지출에 관해 말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도주의 원조와 경제개발 원조와 같은 비군사적인 공공외교방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 국방칼럼 연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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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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