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아닌 가치 추구했던
    한 컴퓨터 천재의 분투와 비극
    [정의로운 경제] 자본에 굴복한 디지털 혁신의 배신
        2021년 11월 01일 09:3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100년 동안의 놀라운 기술혁신은 누구에게로 갔는가?

    “오늘날 기업들은 생산성을 더 잘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여분의 시간을 직원들이 즐길 수 있는 자유시간으로 바꾸진 않습니다. 대신 훨씬 더 많은 업무를 맡겨서 그 시간을 쓰게 하죠” 영국 RadiaActivePR 이라는 광고회사 창업주 리치 레이의 얘기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성과가 노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로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탄식이다.

    그런데 사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90년 전에 전혀 다른 예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30년에 쓴 짧막한 글 <손자세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아주 흥미있는 미래를 상상했는데, 100년 뒤(2030년이다)쯤 되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규모는 4~8배 정도 커질 정도로 성장할 것이고 그 결과 노동시간이 일주일에 15시간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는 당시보다 4배 이상 경제규모가 커질 정도로 성장해도 “여전히 만족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돈에 대한 욕망을 대체할 긍정적인 뭔가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재산축적에 집착하는 행위가 이제는 더이상 시민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케인즈는 2030년대쯤 되면 “부의 축적이 더이상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심지어 ”소유물로서의 돈에 대한 사랑은 본래의 성격 그대로 다소 혐오스럽고 병적인 성향으로 인식될 것이다. 삶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수단으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뚜렷이 구분될 것“을 전망했다.

    그러니 케인즈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놀라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제프 베조스나 마크 주커버거 같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기고 시가총액이 1조달러가 넘는 거대기술 기업의 성장으로 귀결될 것을 꿈에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순진하게도(?)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들을 주15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도록 만들어주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기술혁신은 이렇듯 노동자의 자유가 아니라 부자의 부를 더 늘리는 쪽으로만 움직이고 있을까?

    법망의 허점을 찾는 인공지능으로 부자가 된 스탠포드대학 학생

    이 대목에서 세계적인 기술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로 무대를 옮겨보자. 스탠포드 학생 조슈어 브로더(Joshua Browder)는 과거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사람들의 주차위반 딱지에 대해 자동으로 행정소송을 해주는 인공지능 챗봇을 개발한다. 이 앱은 의외로 성과가 좋아서 초기에 주차위반 무효소송 승률을 무려 60% 이상 기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원래 지방정부로 들어갈 수십억 원의 범칙금을 위반자들이 내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인공지능 법률소송 챗봇을 활용하면, 이혼소송도 손쉽게 할 수 있는 등 편리함을 줄 수 있다고도 했단다.

    그는 이 솔루션을 확장해서 <DoNotPay>라고 하는 법률소송 서비스 챗봇을 만들었고, 실리콘 밸리 벤처 캐피탈로부터 큰 투자를 받는 등, 이를 계기로 스탠포드대학이 낳은 또 한 명의 유명한 스타트업 경영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주차위반 딱지를 받은 사람들은 짜증도 나고 벌금도 내는 것이 억울한 마당에, 간단한 인공지능 챗봇이 해결해주는 것을 대단한 혁신이라고 칭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같은 학교인 스탠포드대학의 철학, 정책학, 그리고 공학분야 교수 세 사람은 자신의 제자가 주차위반 소송 챗봇이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성공적으로 사업화시킨 것은 물론 이 사업을 더욱 확장시키려는 야망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에 따르면 당초에 ‘주차위반 딱지’라는 제도가 왜 나오게 되었냐고 묻는다. 그것은 도로의 자동차 주행의 방해를 막거나, 소방도로를 확보하거나, 장애인 등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 등 중요한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 도입된 제도라는 것이다. 즉, 주차위반 단속은 공공의 목적을 이루게 해줄 뿐 아니라, 지자체가 주차위반 벌금을 징수해서 더 많은 시민들 편익에 투자를 할 재원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차위반을 회피하는 인공지능 개발에 대해 아무리 벤처 투자자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사회적 관점에서 얼마나 혁신적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냐는 것이다. 세 교수는 이렇게 따져 묻는다. 주차위반 소송 챗봇이라는 혁신이 “누구의 문제를 풀어주는가? 과연 그 문제는 풀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그 해법은 과연 인류와 사회를 위해서 유익한가?”

    모두를 위한 정보 접근을 위해 애쓰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이들 세 교수는 같은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또 한 명의 제자이자 컴퓨터 천재인 애런 슈워츠(Aaron Swartz)를 호명한다. 일찍이 14세 나이에 유용한 인터넷 정보를 자동으로 피드해주는 RSS(Really Simple Syndication)을 개발했고, 15살에는 보다 쉽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reative Commons)의 초기 설계에 참여할 정도였다.

    물론 그 역시 스탠포드 대학 1학년에 그 유명한 와이 컴비네이터(Y-Combinator) 벤처개피탈의 도움으로 일종의 SNS사이트인 레디트(Reddit)를 공동창업해서 청년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 대목까지만 보면 앞서 예시한 조슈어 브로더같은 여느 스탠포드대학 천재들과 크게 달라보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시점부터 다른 스탠포드대학 동료들처럼, 자신의 기술적 재능으로 돈을 버는데 몰두하기 보다는, “어떻게 사람들이 정보에 편리하게 접근하고 상호작용할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런 지향 때문에 그는 잘 알려진 위키피디아 커뮤니티에는 이미 2006년부터 참여하기도 했고, 2008년에는 <게릴라 오픈엑세스 매니페스토>를 작성해서 우리는 세상과 정보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천명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활동가’가 된다.

    슈워츠는 정치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에 관한 정보를 모아서 공개하는 사이트 와치독(Watchdog.net)을 설립하는가 하면, 미국 시민의 자유와 권리, 정부개혁에 집중하는 웹사이트인 ‘디맨드 프로그레스(Demand Progress)’의 집행이사로도 활동하는 등 그야말로 정보의 공개와 자유로운 접근을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한다.

    애런 슈워츠의 얘기를 그린 단행본

    그리고 마침내, 학술논문이 집중화돼 폐쇄적으로 관리되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 그는, 2010년 MIT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JTOR로 알려진 학술논문저장시스템 접속해서 400만건에 해당하는 학술논문을 대량으로 다운로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실제로 자신의 컴퓨터로 다운로드하여 공개했다. 미국정부는 컴퓨터사기남용법(Computer Fraud and Abuse Act) 위반 혐의를 걸어 형이 확정되면 수십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갔고, 그는 2013년 결국 26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명의 스탠포드대학 교수들은, 조슈어 브로더처럼 기술적 재능으로 돈을 버는데 집착하는 제자들은 지금껏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주창하면서 돈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위해 싸우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제자를 이제 사람들이 까맣게 잊었다고 개탄하면서, 최근에 펴낸 단행본 <Sytem Error>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활동을 자세히 되살린다. 그들의 지적대로 왜 지금도 많은 이들은 조슈어 브로더는 기억하면서 애런 슈워츠는 까맣게 잊고 있는가?

    기술혁신과 벤처 자본의 잘못된 만남

    세 명의 교수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그것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기술자들이 초창기의 진정한 해커(Hacker) 정신을 팽개치고, 벤처캐피탈 투자자들과 긴밀히 엮이면서, 엄청난 주식가치를 만들어내고 부를 쌓는 것으로 오직 성공의 척도를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이제 혁신의 성과가 주식가치 상승이 아닌 직원의 노동시간 단축으로 돌리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물론 회사 빌딩에 탁구시설이나 일부 레저 시설 정도는 들여놓겠지만).

    미래학자이자 컨설턴트로 알려진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Kim Pang)이 쓴 <쇼터(Shorter)>라는 책에서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 혁신의 성과를 노동이 아니라 자본축적에만 쓰는 성향을 이렇게 비판했다. 혁신이 어디에 쓰일 때 사회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가 부상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미화하는 새로운 노동, 성공 모델이 등장했고, 일 중독자들이 영웅으로 떠올랐으며, 과도한 노동이 자랑스런 훈장감으로 대우받았다. 결과적으로 현재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과도한 노동은 누군가에게는 부를 안기는 원천이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짐이 되었다.”

    * <정의로운 경제> 연재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정의정책연구소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