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불러내는 자나 욕하는 자나
        2006년 12월 18일 04: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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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 속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복권시킨 건 YS다. 외환위기로 상징되는 YS의 ‘무능’은 소위 경제에 대한 지도자의 ‘능력’을 탈이념적인 보편 가치로 승격시켰다.

    그 최대 수혜자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정치를 했으나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식의 분열적 평가가 대세를 점한 것도 그 즈음이다. 먹고 사는 게 민주주의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성장신화’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 건 민주파가 주도적으로 받아들인 신자유주의다. 김대중 정부 이래 신자유주의 집권 10년은 ‘모든 견고한 것은 대기 속에 녹아내린다’는 격언대로 해체와 불안정을 삶의 일상적인 형식으로 만들었다.

    전체 노동자의 과반수 이상을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현실은 개발독재기의 완전고용을 탈이념적으로 신화화하는 배경이 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실장은 "요즘 여론조사를 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공’이 ‘과’보다 많다는 응답이 70~80%에 이른다"고 말했다.

       
     ▲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물론 ‘박정희 신드롬’의 가장 큰 그리고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죽은 자’라는 사실이다. 영화 ‘친구’에서는 주먹을 쓰는 일진급 학생 불과 몇 명이 단체 관람을 위해 영화관에 온 수백명의 다른 학교 학생들에 맞서 아주 멋들어지게 싸우는 장면이 있다. 대부분 맞는 쪽에 있었을 것이 분명한 관객들은, 그러나 때리는 자의 입장에서 그 영화를 즐기곤 한다. 절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아무리 그리워하고, 초혼가를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그가 살아돌아와서, 그 시절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조건들을 다시금 불러낸다면, 사람들은 조금 덜 먹더라도 ‘자유’가 있는 인간다운 세상을 더 원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적어도 다수가 그럴 것이다. 압도적 다수가 박 전 대통령의 독재를 거부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 보수적이라는 수많은 노인들이 청년이거나 중년일 때.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을 추억하고 불러내는 행위는 진취와 무관한 것이고, 진보와 반대 쪽 방향을 향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를 불러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젊은 이들의 박정희 숭배와 그들의 보수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10년을 주기로 박정희 신드롬에 기대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최근 ‘박정희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얘기다.

    민 의원은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에 기대고 있다면서 "이 전 시장의 전략은 굉장한 패착이자 퇴행적 성형수술"이라고 비판했다.

    민 의원의 지적대로 정치인들의 ‘박정희 따라하기’는 퇴행적이다. 이 전 시장측도 박 전 대통령과 ‘능력’을 매개로 이미지가 겹치는 것은 내심 즐기면서도 ‘이명박=박정희’로 등치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민 의원은 "이 전 시장측에서 전화를 걸어 ‘(박 전 대통령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나간 것은 실수였다. 앞으로 그런 일 없을테니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민 의원의 이 같은 지적은 말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딘가 공허하게 들린다. 또 당초 의도했던 이 전 시장에 대한 ‘견제효과’도 얻기 힘들어 보인다. 민 의원의 비판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여당이 정말 문제삼아야 할 것은 ‘박정희 따라하기’가 먹혀드는 사회경제적 현실이다. 김근태 의장의 표현대로 "강자의 승리에만 축복을 내리는 시장지상주의에 의탁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중산층과 서민을 생존의 공포 앞으로 몰고" 간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만든 건 지금의 여당이고 이른바 ‘민주세력’이다.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박 전 대통령을 복권시켜 놓고는, 이제 박 전 대통령 추종세력이 활개를 치고 다니니 ‘독재세력 반대!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박정희 충성세력과 역사정의의 심판을 위해 화끈하게 한판 붙자"(장영달 의원)고 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을뿐더러 이 전 시장의 ‘박정희 선글라스’ 못지 않게 퇴행적인 정치수법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개발독재의 참상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또 개발독재의 참상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입막음하는 명분이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민 의원이 말하는 ‘미래세력’이란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의 퇴행적 대립구도를 벗어나는 어느 지점에선가 기지개를 켤 것이다. 현재 여당의 모습을 보면 ‘미래세력’의 가능성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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