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제재 해결 낙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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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8일 03: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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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18일)부터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가 시작된다. 이와 동시에 ‘BDA(방코델타 아시아 은행) 워킹그룹회의’도 함께 개최된다. 일부에서는 최근 미국의 변화된 태도를 보면서, 이번 회담에서는 어떠한 성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들도 나온다.

    얼마 전 BBC는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북한이 영변 핵 원자로를 동결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국내 일부 언론들도 이러한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된 북핵 6자회담 본회의.  각국 대표들이 우다웨이 중국 수석대표의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낙관적이지 않은 금융제재 해결

    사실 BDA의 북한 관련 계좌에 동결된 자금들이 모두 불법자금인 것은 아니다. 2,400만 달러에 달하는 동결 자금 중에 상당한 액수는 영국 등 외국 기업들의 대북 합법 투자와 관련한 자금들이다. 미국은 일부 자금들이 자금세탁 목적 혹은 기타 불법적인 자금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추정하고 판단하는가에 대해서 미국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의 일부가 합법적인 것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태도는 아니다. 외국 기업들의 투자자금 그리고 북한 무역관련 분야의 합법적인 운영자금이 2,400만 달러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은 그럴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부인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토록 금융제재에 집요하게 매달렸던 이유는 그것이 간만에 잡은 ‘쾌’였기 때문이다. 이미 오랫동안 북한을 봉쇄해왔기 때문에 가용한 단독 제재 수단을 가지지 못하였던 미국으로선, 북한 지도부를 실질적으로 옥죌 수 있는 BDA 문제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해 9.19 공동성명 다음 날 미국은 BDA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미국이 실상 핵 문제의 해결에 큰 의의를 두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BDA 계좌 동결 문제에 대한 북한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미국으로 하여금 BDA 문제의 효과성을 인식하게 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회담의 조건으로 내건 이유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금융제재가 실제로 북한에 대한 압박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이 핵시설의 동결 등을 조건으로 금융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꾀하려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이는 명백한 손해이다. 이러한 협상 전술은 인권 문제, 납치 문제 등 다종다양한 ‘북한 문제’에 좋지 못한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이 추구해왔던 전략들을 고려한다면, 금융제재의 부분 완화와 핵시설의 동결을 맞바꾸는 형태의 합의 도출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실제로 그러한 전략을 쓴다면 이는 미국과의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어려운 결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선 남한과 중국이 그러한 북한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6자회담, 신뢰의 위기

    지난 11월 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금융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한다는 전제에서 6자회담에 참여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 문제와 6자회담의 진행을 연계시킬 것임을 보여준다. 김계관 외무성 부상 역시 17일 제재 해제가 선결 조건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번 6자회담은 지난 해 9.19 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추가적인 논의 진전을 이루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중요 지점들에서 입장을 달리한다.

    미국은 북한의 핵 실험이 9.19 공동성명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북한이 협상을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논리를 편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한다면 전쟁의 종결을 선언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언론들은 이를 변화로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해 5월 미국이 ‘대담한 제안’을 하였을 때에도, 그리고 9월 공동성명에 합의하였을 때에도 미국은 이러한 입장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실험 이후로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회의적인 미국은 북한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후퇴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북한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회담의 약속을 꼭 잡아야 할 것이다. 일단은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면서, 추가적 상황 악화가 없는 상태에서의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 모두 정책의 실패를 인식하고 새로운 전략 수립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막된 북핵 6자회담 본회의에서 하고 김계관 북한 측 수석대표를 비롯한 대표단들이 중국 우다웨이 수석대표의 연설을 굳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에 대한 제언

    미국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는 ‘자기 충족적 예언’의 함정을 이제는 인식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북한은 불량국가이며, 핵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미국의 인식은 실제로 북한의 핵 실험을 야기하였다.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따라서 협상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인식은 북미 사이에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

    미국이 여전히 외부로부터이든, 내부로부터이든 북한의 체제변환을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대화의 전제는 공존이기 때문이다. 페리 보고서가 지적하였듯이 북한의 체제변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결국 핵 비확산체제의 동요와 붕괴를 재촉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 미국은 북한 핵이라는 의제가 가진 무게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체제 위협을 거론하며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철회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말만 가지고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미국에게 북한과의 공존을 원한다는 몸짓을 취하라고 주장한다. 제재 철회도 그 중 하나이다. 북한은 미국이 그렇지 않으면 체제방어를 위한 자위적 수단인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느끼는 위협과 불안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어떻게 인식할지 모르나, 북한이 바라보는 ‘조미 사이의 핵 문제’와 미국이 바라보는 ‘북핵 문제’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무게가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해법이 다르다. 핵 문제에는 그러한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고, 따라서 핵 문제를 ‘조미 사이의 전면적인 대결’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 의제를 현실적으로 핵 폐기와 체제안보 문제로 돌려놓아야 한다. 실상 중국과 남한의 인색한 지원에 기대어 사태를 늦추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처지가 불리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북한이 주도하는 평화의 공세는 가능하며, 근본적 해결은 어렵더라도 ‘악화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평화적 관리’는 가능하다. 최대주의적 목표보다는 최소주의적 목표를, 최소공배수적 접근보다는 최대공약수적 접근을 취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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