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국가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시선] 특별 사면으로 본 정치사
        2021년 10월 29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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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0월 26일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의 장례를 현 정부는 국가장으로 치를 것을 결정했다.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그를 ‘국민통합’을 위해 ‘화합 포용’했다는 것이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 ‘화합 포용’은 이미 1997년에 일어났다. 역사를 잠시 살펴보자. 1995년 12월 21일에 김영삼 정부의 검찰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기소했고, 이어 5·18 내란 사건에 대해서도 1996년 1월 3일에 추가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1996년 8월 26일 1심 재판부는 전두환에게 사형을,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997년에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노태우에게 징역 17년을 확정하는 최종 선고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1997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12월 22일에 특별사면되었다. 당시 김영삼은 2달도 되지 않아 퇴임할 예정이었고, 이처럼 정치적 논란이 클 수 있는 일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후임으로 확정된 김대중과의 공감이 없으면 할 수 없던 일이었다. 1997년 12월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김영삼(YS) 대통령에게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 김대중과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적이었다. 두 김 씨는 1970년대에는 박정희 정권과 목숨을 건 싸움을 벌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변한 것이었을까? 아니, 변한 것이었을까?

    현재의 한국 정치를 설명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1990년에 있었던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의 형성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이루어진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는 4파전이 벌어졌다. 노태우를 후보로 내세웠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세력이었다. 대통령으로는 노태우가 당선되었는데, 1988년의 총선에서 ‘여소야대’라는 결과가 생겨났다.

    정권의 안정을 꿈꾸던 노태우와 어떤 방식으로든 권력을 창출하기를 원했던 김영삼과 의원내각제 개헌을 통해 정치 생명 연장을 꿈꾸던 김종필은 ‘보수대연합’을 합의했고,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 정당을 만들어냈다. 민주자유당 창당을 ‘야합’이라고 비판하던 이들은 많았으나, 당시에도 그 의미를 제대로 들여다보았던 사람들은 있었다.

    그 의미는 6공화국 헌법의 제정으로 대통령 직접 선거가 부활하고, 유신 헌법이나 5공화국 헌법이 가졌던 여러 문제점이 사라지자, 즉,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만들어지자, 노태우와 김영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둘은 모두 ‘안정’과 ‘보수’를 원하는 이들이었다. 안정과 보수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집권했고, 철저히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시를 따랐다. 그의 예전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경제정책은 철저히 신자유주의로 일관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색깔은 달라 보였지만, 경제적인 색깔은 다르지 않았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을 합의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이 노태우와 화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사면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국 주류 정치 집단의 두 뿌리가 겉으로는 적대적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음을 알려주는 첫 장면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면에 합의했던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었던 보수정당 정권들의 특별 사면의 역사를 살피면, 현재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신이었던 정당들이 주도했던 정부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2002. 12. 31 연말 사면 (김대중 대통령) 대상자 중 ‘경제인’ 명단

    김선홍(전 기아그룹 회장), 박영하(전 대우 국제금융팀 과장), 박창병(전 대우전자 이사), 서형석(전 대우 기조실장), 신영균(전 대우조선 대표 이사), 양재열(전 대우전자 대표이사), 유기범 (전 대우통신 대표이사), 유현근(전 대우건설 이사), 전주범(전 대우전자 대표이사), 정태수(전 한보그룹 회장), 조수호(전 한진해운 사장), 조양호(전 대한항공 회장), 조욱래(전 효성기계그룹 회장), 추호석(전 대우중공업 대표이사) 출처 링크

    이 사면에서는 유난히 전 대우그룹 출신들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또 눈에 띄는 이들은 정태수, 조수호, 조양호이다. 정태수의 사면은 큰 논란거리였는데, 1997년 5월에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는데 5년이 조금 지나 사면된 것이었다. 한보의 비리는 1997년에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가져왔었고, 외환위기의 전조가 되기도 했었다는 면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확정된 상황에서의 김대중의 이 사면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이번에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의 ‘경제인’ 사면을 살펴보자.

    2005. 5. 15 석가탄신일 사면 (노무현 대통령)

    김동진(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이성원(전 대우 전무), 김석환(전 대우자동차 부사장), 김근호(전 대우자동차 상무), 조만성(전 대우중공업 전무) 노춘호(전 새한미디어 상무), 유홍근(전 동아건설 이사) 김재환(전 새롬기술 이사), 김용국(전 스텐더드텔레콤 대표) 우달원 (전 성우전자 사장), 안병철(전 고려석유화학 사장), 이종훈(전 대한통운 부회장)백성기(전 동국합섬 대표), 강세규(전 동국합섬 대표) 박성석(전 한라그룹 부회장), 정수웅(전 동양철관 대표) 박억재(전 동양철관 이사), 이유재(전 니트젠 전략경영실장), 이학수(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2005. 8. 15 광복절 기념 사면 (노무현 대통령)

    김연배(한화그룹 부회장)

    2007. 2. 12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 사면 (노무현 대통령)

    고병우(전 동아건설산업 회장), 김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박용만(전 두산그룹 부회장), 박용성(전 두산그룹 회장), 임창욱(대상그룹 명예회장), 장세주(전 동국제강 회장), 김연배(한화그룹 부회장), 김태구(전 대우자동차 총괄사장), 명호근(전 쌍용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이수만(에스엠엔터프라이즈 운영자), 정몽훈(전 성우전자 회장), 홍원식(남양유업 회장) 등

    2008. 1. 1 신년 기념 사면 (노무현 대통령)

    김우중(전 대우그룹 회장), 강병호(전 대우자동차 사장), 장병주(전 대우 사장), 김영구(전 대우 부사장), 이동원(전 대우 영국법인장), 성기동(전 대우 이사), 이상훈(전 대우 전무), 김용길(전 대우 전무), 김경엽(전 삼신올스테이트 생명보험 대표), 정몽원(전 한라그룹 회장), 장충구(전 한라그룹 기획경영실장), 문정식(전 RH시멘트 대표), 장흥순(전 터보테크 대표), 성완종(경남기업 회장) 출처 링크

    이학수, 김우중 등이 명단에 있었던 점이 돋보이며, 현재까지도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남양유업 회장의 이름도 등장하고, 최근에 해외 재산 도피 혐의로 주목받고 있는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이름도 등장한다.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이건희와 사돈이었던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도 들어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노무현 정부의 ‘경제인’ 사면 정책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정당들이 주도했던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경제 사범들, 그것도 재범 가능성이 매우 큰 경제 사범들을 그 어떤 근거도 없이 석방했다.

    2008. 8. 15 광복절 기념 사면 (이명박 대통령)

    정몽구(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승년(현대자동차그룹 구매총괄본부장), 이주은(글로비스 대표이사), 이정대(현대자동차그룹 재경본부장), 최태원(SK그룹 회장), 손길승(전 SK그룹 및 전경련 회장), 김승정(SK글로벌 대표이사), 김창근(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문덕규(SK글로벌 재무지원실장), 민충식(SK그룹 구조조정본부 전무), 박주철(SK글로벌 대표이사), 유승렬(전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김승연(한화그룹 회장), 김철훈(한화그룹 전략기획팀장), 김충범(한화그룹 비서실장), 김욱기(전 한화리조트 감사), 김윤규(전 현대건설 대표이사), 이내흔(전 현대건설 대표이사), 김재수(전 현대건설 부사장), 최원석(전 동아그룹 회장) 등

    2009. 12. 31 이건희 IOC 위원 특별 사면 (이명박 대통령)

    이건희(삼성그룹 회장)

    2010. 8. 15 광복절 기념 사면 (이명박 대통령)

    김준기(동부그룹 회장), 김인주(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 박건배(전 해태그룹 회장), 유상부(전 포스코 회장), 이익치(전 현대증권 대표), 이학수(전 삼성그룹 부회장), 조욱래(디에스디엘 회장), 채형석(애경그룹 부회장), 조기행(SK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 윤석경(SK C&C 대표이사)

    2013. 1. 31 신년 기념 사면 (이명박 대통령)

    권혁홍(신대양제지 대표이사), 김길출(한국주철관공업 회장), 김영치(남성해운 회장), 김용문(전 현대다이모스 부회장), 김유진(휴니드테크놀로지스 회장), 남중수(전 KT 사장), 박주탁(전 수산그룹 회장), 신종전(한호건설 회장), 오공균(사단법인 한국선급 회장), 정종승(리트코 회장), 조현준(효성 섬유 PG장), 천신일(전 세중나모여행 회장), 한형석(전 마니커 대표이사) 출처는 위와 동일

    이명박 정부 때 사면되었던 이들의 면면은 참으로 놀랍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그리고 이 사람, 이건희가 있었다. 이건희는 ‘2009. 12. 31 이건희 IOC 위원 특별 사면’이라는 명분으로 혼자 사면되는 특권을 누렸다. 노무현 때도 사면되었던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이명박 때도 또 사면되었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이름도 있고, 애경도 있고, KT도 있고, 효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때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는 사면된 경제 사범들의 수는 줄었다. 그렇지만 대기업 ‘총수’에 대한 특혜는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특별 사면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에 의하면,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대기업의 회장 부회장 등은 범죄자가 아닌 경우가 드물다는 말을 해도 좋을 지경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범죄자들은 어떤 설명도 없이, 혹은 경제 발전과 사회통합이라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문구들에 의해, 사면되었다.

    정리하면 이러하다. 1990년의 민주자유당 창당으로 현재의 거대 정당 중 하나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노태우와 김영삼과 김종필이라는 적으로 보였던 이들이 하나가 된 것은, 통일민주당이라는 보수 정당이 민주정의당이라는 보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김영삼과 합의했던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은, 김대중 또한 김영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살짝’ 보여주었는데,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과 대기업 관계자 사면은 그것을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으로 크게 달라 보였지만, 대기업 관계자 사면만 놓고 보면 큰 차이를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2021년 10월이 되었고, 노태우가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큰 고민 없이 노태우 국가장을 발표했고, ‘국민통합’ 같은 말을 내세운다. 노태우가 김영삼을 포용하고, 혹은 김영삼이 노태우를 포용하고, 김대중이 김영삼과 함께 ‘국민통합’을 위해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했을 때, 현재 일어나는 일들은 그 전조를 보였다.

    그들의 후계자들은 두 개의 거대 정당을 이끌고 있으며, 서로를 적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서로를 포용하며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대기업에 유리하고 노동자와 자영업자에게 불리한 환경의 유지를 위해서 그들은 대동단결하고 있다. 상대방이 ‘해먹는’ 것을 그들은 비난하지만, 그들 또한 무언가를 먹기 위해 탐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들은 법치를 강조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그들을 대표하는 대통령들은 판사들의 세 차례에 걸친 판결조차 우습게 여긴다.

    사진 출처: YES24

    현 정부는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역사적인 사기적 선거구호를 ‘사람이 먼저다’로 바꾸었을 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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