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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연속 흉작이었지만,
    돼지농장 소송은 승리해
    [낭만파 농부] 씁쓸함-반가움 교차
        2021년 10월 26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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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햅쌀이 나왔습니다. 2년 연속 최악의 흉작이지만 그래도 좋은 쌀을 보내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다만 현지 쌀값 급등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 인상요인이 누적돼 불가피하게 공급가를 현실화했습니다. 이 점 헤아려주시고 좋은 쌀로 갈음하시기를~ 무농약-무비료 우렁쌀! 생태가치 담긴 두레쌀! 게다가 밥맛 없으면 쌀값 돌려드려요^^”

    올해 벼 수확량은 ‘역대급 흉작’이라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막상 현실로 마주하고 나니 몹시 씁쓸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갈 길 가야지 했는데 가을장마로도 모자랐는지 무시로 가을비가 쏟아졌다. 나락이 젖으면 콤바인 작업을 할 수가 없는지라 여적 절반밖에 거둬들이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햅쌀을 기다리는 이들의 성화가 빗발치니 급한 대로 수확이 끝난 나락을 찧기로 했다. 하지만 이래저래 흥이 날 리 없어 여전히 코가 쑥 빠져 있는 처지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인지 반가운 일이 생겼다. 며칠 전 선고가 내려진 비봉 돼지농장 행정소송 1심에서 우리 주민들이 이긴 것이다. 정확히는 완주군의 ‘돼지사육업 불허가 처분’에 불복해 업체 쪽이 낸 ‘처분 취소’ 청구를 재판부가 기각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완주군이 불허가 처분의 근거로 제시한 세 가지 사유가 모두 적법하고 정당하다고 보았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 지은 지 27년 된 돈사가 너무 낡아 관계법령이 정한 사육시설 기준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업체 쪽은 ‘개보수’ 의지를 강조했지만 허가신청 단계에서 세부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업체 쪽 신청대로 돼지 1만 마리를 사육하는 경우 수질오염총량제에 따른 오염부하량이 초과된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셋째, 농장이 ‘가축사육 제한지역’에 위치해 위법하다는 것이고, 재판부가 참여한 현장검증을 통해서도 환경오염 우려가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결국 완주군의 완승이라 할 만하다. 형식으로는 완주군의 승소지만 돼지농장이 가동됐을 때 그 피해를 몽땅 뒤집어써야 하는 주민들이야말로 실질적 당사자인 셈이다. 그 때문에 주민대표 세 명이 ‘피고 보조참가인’ 자격을 얻어 재판에 직접 참여했던 것이다.

    소송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년 8개월 동안 이어졌다. 업체 쪽은 농축산재벌의 위세를 과시라도 하듯 손꼽히는 대형로펌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실체적 진실’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판결문 어디에도 ‘주민의 환경권’ ‘생태정의’ 같은 용어를 찾아볼 수 없고, 재판부 또한 불허가처분이 적법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봤다고 밝혔음에도 그 의미는 자못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허가로 인해 침해되는 공익이 중대하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고, 이는 자본의 이윤보다 공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법정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업체 쪽이 항소를 제기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1심 재판부가 밝힌 법리가 워낙 명쾌한 터라 2, 3심이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주변 법조인들의 분석이다.

    물론 여러 차례 밝혔듯이 주민들이 진정 바라는 건 소송에서 이기는 게 아니다. 법정다툼이라는 대결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이 아니라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이 점에서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완주군이 농장부지를 매입해 환경친화적으로 활용할 것’을 호소해왔다. 1심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업체로서는 패소가 아프겠지만 농장을 매각할 명분을 얻었다는 점에서 ‘최종적 패소’보다는 다행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업체 쪽이 이 점을 깊이 헤아리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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