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팝 음악들
    [대중음악 이야기] 둘리스, 스틸하트
        2021년 10월 25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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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음악은 특정한 국가에서만 인기를 얻는다. 팝 음악의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노래도 있다. 예를 들어 1984년 미국에서 가장 크게 히트했던 노래들은 다음과 같은데, 한국에서는 전체 1, 2위였던 노래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표: 1984년 미국 Billboard Chart 전체 순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Billboard_Year-End_Hot_100_singles_of_1984

    한국에서는 발라드곡인 5위의 <Against All Odds>나 7위의 <Hello>가 가장 인기를 많이 얻었고, 록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Van Halen의 <Jump>가 가장 주목 받았다. 이런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데, 사람들의 취향은 다 다르고, 국가적으로도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글은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노래 몇 곡을 다룬다. 먼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둘리스(The Dooleys)의 <Wanted>이다.(관련 영상 링크)

    이 노래는 영국 차트에서도 3위까지 오르는 등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었으므로 유독 한국에서만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에서의 인기와 한국 및 일본에서의 인기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당시 한국에 팝 음악 차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 곡이 얼마나 인기를 얻었는지를 수치로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점은 확실한데, 한국과 어느 정도 유사한 성향을 보였던 일본 차트에서 이 곡은 10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이 그룹은 1981~1983년까지 매년 한국을 방문했다. 외국의 한 그룹이나 가수가 한국을 3년 연속 방문하여 공연한 일은 당시에는 둘리스가 처음이었고, 그 후에도 그런 예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영상은 1983년에 있었던 한국 공연에서의 <Wanted> 공연 모습이다. (관련 영상 링크) 이 공연은 KBS의 ‘100분쇼’라는 프로그램에서 방송되었다. 이 노래는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희극인 조혜련이 <아나까나 송>이라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가사를 가진 노래로 ‘리메이크’했을 정도였다.

    <Wanted>는 어쨌든 자국에서도 어느 정도는 인기를 얻었던 노래였지만, 다음 소개할 곡은 철저히 한국에서만 히트한 노래이다. Carry & Ron의 <I.O.U.>는 독일 그룹이 영어로 부른 노래인데, 구글 검색을 하면 한국인이 올린 글이나 영상만 나온다. 독일에서도 전혀 히트하지 못했고,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 노래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드라마에 삽입되었기 때문이었다. 1996년에 방영되었던 <애인>의 선풍적 인기와 더불어 이 노래도 히트했고, 그로부터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지도 높은 노래로 남아있다. 드라마 영상과 함께 들어보자.

    (관련 영상 링크)

    이 노래와 드라마는 두 가지 면에서 나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먼저 이 곡은 내 아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불러주었던 노래였다. 1997년 광화문 근처의 어느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들은 후 6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했다. 두 번째로, 이 드라마는 흰색 일색이었던 한국인들의 와이셔츠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파란 와이셔츠에 노란 넥타이라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조합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었다.

    이번 음악은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민폐를 끼치는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스틸하트(Steelheart)의 <She’s Gone>이다. 1990년 발매된 이 곡은 미국에서도 헤비메탈 장르치고는 상당히 알려졌고, 빌보드 싱글 차트 59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정말로 놀라웠다. (관련 영상 링크)

    놀라운 것은, 인기를 얻었다는 점보다도, 그 인기의 지속성이다. 26년이란 시간이 지난 2016년에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 스틸하트의 보컬 밀렌코 마티예비치(Miljenko Matijevic)가 출연했을 때의 반응을 보면 ‘젊은’ 이들에게도 이 노래가 꽤 알려져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영상 링크)

    한국인들의 록발라드 혹은 메탈발라드 선호는 이 곡 이전부터 유명했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에는 미치지 못해도 한국에서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노래가 있으니 그 곡은 스콜피언스(Scorpions)의 <Still Loving You>였다.(관련 영상 링크)

    1984년에 발매되었던 이 음악(관련 글)은 미국 차트에서 64위에 올랐고, 역시 헤비메탈 음악치고는 높은 순위에 올랐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고, 황인용이 진행했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1984년에 가장 인기를 얻었던 노래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이 노래는 1980~1990년대에 걸쳐 록 음악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방송되었던 노래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악은 먼저 소개한 <I.O.U.>와 비슷한 사례인데, 정말로 철저하게 한국에서만 인기를 얻었다는 점과 드라마에 삽입되었기 때문에 알려졌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수전 잭스(Susan Jacks)의 <Evergreen>을 들어보자.(관련 영상 링크)

    1992년에서 1993년까지 MBC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아들과 딸>(관련 글)은 당시에는 파격적인 작품이었는데,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여자 주인공이 결국 국어교사와 작가가 되는 것을 주요한 줄거리로 삼았고, 미혼모를 긍정적으로 그리기도 했다.

    결론을 내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의 발라드 선호’가 유별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력, 라디오 방송의 영향력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유가 어떠하든 이 음악들은 다 매력을 지니고 있고, 즐길만한 곡들이 분명하다.

    * ‘대중음악 이야기’ 칼럼 링크

    필자소개
    정재영(필명)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이다. 저서로는 「It's not Grammar 이츠낫 그래머 」와 「바보야, 문제는 EBS야!」 「김민수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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