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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세계 꿈꾼 이들의 삶과 생각들
    [책소개]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박노자/ 나무연필)
        2021년 10월 23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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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 갈수록 막다른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분위기는 국내외에서 모두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100여 년 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겪으며 배태한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적 유산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대안적 근대의 선구자들이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를 두고 고민한 만큼, 우리도 이들의 고민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_머리말 중에서

    세계를 자신의 시야에 두고
    조선의 대안적 근대를 고민한 선구자들
    그간의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들의 이야기

    일본의 식민지 출신으로 조선의 독립과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몸을 던지고 생각을 펼쳤던 이들의 열전이라니, 지금과는 자못 다른 시대의 소수파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오래전 역사의 뒤안길에 있던 이들의 발굴로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지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의 고민이 대안적 근대의 정초를 마련하는 데 기반이 되었으며, 그것이 현재까지 유효하게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들은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근대인이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들을 앞서 고민한 이들이었다.

    이들이 주로 활동한 시대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매우 특별한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인 1918~1939년 사이, 일명 전간기(戰間期)로 불리는 때다. 이 시기는 세계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의 위기였던바, 전쟁 후의 혼란이 잦아들 무렵 세계 대공황이 밀려왔으며 불평등, 빈곤, 제국주의적 침략, 차별 등의 문제가 터져 나와 거의 전 세계가 혁명과 반란, 각종 독립운동의 화염에 휩싸이던 때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미래를 고민하던 이들에게 그만큼 세상을 바꿀 꿈을 꾸는 기회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선구자의 운명은 이러한 것일까. 냉혹한 현실 가운데서 미래를 바라보고 살았던 이들의 삶은 지독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정작 본인들의 미래는 대부분 고통과 때 이른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그야말로 당대의 최첨단에 서 있었다. 몸은 식민 치하의 조선에 있을지언정 시야를 넓혀 머나먼 서구 세계의 움직임과 이론에도 기민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보았다. 일본의 도쿄, 중국의 상해와 연안, 소련의 모스크바 등 한반도를 넘어선 곳들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혹독한 위기의 시대에 선구적으로 미래를 내다보려 했던 열 명의 사회주의자,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조선의 지식인 사회, 그 중심에 있던 사회주의자들

    조선의 사회주의자로 필자가 가장 먼저 주목한 인물은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학술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연구자 생활을 이어가다가 모교에서 교수를 지낸 철학자 신남철(申南澈, 1907~1958)이다.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운동으로서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상으로서의 역사도 함께 짚어봐야 한다는 점에서 신남철을 우선 살펴보았다. 그는 해외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조선에서 원전을 읽고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국내파로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경성제대는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주의 이론을 생산하는 기관이었다. 일본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식민지 대학의 교수직은 마음 편치 않은 자리였다. 그럼에도 본국과의 거리감 때문인지 특히 경성제대 철학과는 일본 학계와 견주어보더라도 리버럴한 분위기였다. 이곳의 교수였던 사회주의자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는 조선의 노동운동가 이재유를 교수 관사 지하 토굴에 숨겨주었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신남철은 바로 그의 제자로 마르크스의 저작을 독일어 원전으로 배우면서 19세기의 유럽 문화까지 폭넓게 학습한, 세계성을 바탕으로 조선의 문제를 고민한 연구자다.

    그는 집단적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개성적이고 실천적인 개인을 모색하면서, 동시에 관념주의자가 전체주의에 이용될 수 있는 측면을 잘 지적한 이성의 철학자였다. 또한 주변부 국가의 인텔리로서 변혁운동에 한발 들이게 된 자신을 규명해보려는 시도였는지, 세계 체제의 주변부에 혁명 전위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왕양명의 지행일치 철학과 결부해 설명하기도 했다. 신남철은 해방 이후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과 교수로 북한 철학계의 초기 기틀을 마련했으나, 주류에서 밀려난 뒤 병사한다. 남한에서는 월북 때문에, 북한에서는 주류에서 밀려났기에, 서서히 잊히며 재조명하기 어려웠던 안타까운 인물이다.

    경성제대 철학과를 거치며 사회주의자가 된 또 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박치우(朴致祐, 1909~1949)다. 신남철이 연구자로 자리매김했다면, 박치우는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도 현실에 적극 개입하기도 한 인물이다. 잠시 숭의실업전문학교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하자 그는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논의를 벌여 나갔다. 해방 뒤에는 박헌영과 뜻을 같이하며 활동하다가 월북한 뒤 빨치산 양성 기관인 강동정치학원에서 정치부원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그 스스로 빨치산이 되어 남한으로 내려왔고, 결국 태백산 지구 전투에서 사살된다.

    이처럼 극적인 삶을 살아간 박치우는 개념사 정리가 돋보이는 철학자였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 개념에서부터 부르주아의 자유주의를 거쳐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자유와 개인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그의 글을 보면, 그의 사유가 과거를 아우르면서도 현재적이고 세부를 들여다보면서도 폭넓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전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침략을 서슴지 않던 상황에서 파시즘의 뿌리를 탁월하게 분석해낸 이론가이기도 하다.

    한편 이 책에서 다룬 인물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이는 바로 임화(林和, 1908~1953)일 것이다. 혁명적 낭만 시인이자 유기적 문예를 주창한 이론가 임화는 민족 문학과 계급 문학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고민한 지식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사회주의 운동사의 산증인이었으나 일제 말기에는 소극적으로나마 부역을 했고, 미제의 고용 간첩이었다는 누명을 쓰면서 북한에서 숙청된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필자는 임화가 당대의 주류 신화에 도전하며 보여준 방법론을 눈여겨본다. 주류 세력들이 즐겨 쓰던 ‘객관성’ ‘자유’ ‘순수예술’ 같은 개념들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하여 그 이면을 드러내고, 그것이 왜 주류 세력의 신화인지 설명해내는 지점에 주목해본 것이다. 이는 필자가 모든 담론 가운데 계급적 의제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면서 그 주관성을 들춰내는 임화의 방법론이 지금도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주의 양반가 출신으로 식민지 시대 최고의 명필로 불렸지만 우리에게는 잊힌 사회주의자 김명식(金明植, 1890~1943)은 그야말로 달필에다가 한국적 좌파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지적인 압축 성장의 시기를 살아가던 조선 사회주의자 1세대들의 도약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즉 그는 양반가의 자제로 전근대적 풍토에서 성장했으며 일본 유학을 거치면서 급진적 근대주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사회주의자로까지 나아간다.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선비로서의 뜻을 품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자로서 민족 문제와 근대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로서 그는 민족이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임을 직시하면서 이를 조선에 대입해보려 했다. 그런 과정에서 당대 민족주의의 거두였던 이광수와 거침없는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마르크스주의적인 민족주의 비판론을 대중화한다. 또한 식민 치하에서 명실상부한 자본주의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리면서, 파시즘의 발생 과정을 비롯해 그 과정에서 주변화한 중산계층과 금융자본의 역할, 근대 자본주의의 내재적 진화 논리와 파시즘 사이의 관계도 정밀히 연구한다.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남과 북에서 망각되었다. 하지만 식민 치하에서 그의 글을 읽은 이들이 차후 남북을 이끄는 지식인 집단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가 닦아놓은 한국적 좌파의 명맥은 초기의 북한을 비롯해 남한에도 가녀리게나마 영향을 미쳤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소수자로서 세계의 중심에 뛰어들어 조국을 고민했던 이들

    이 책이 조명한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남만춘(南萬春, 1892~1938)과 김만겸(金萬謙, 1886~1938)은 유독 많이 가려져 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재러조선인 2세 출신, 즉 디아스포라로 사회주의 활동의 세계적 중심지였던 러시아와 자신의 조국 사이에서 활동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은 러시아에서는 소수자 지식인이었고 조선에서는 조선인 활동가였다.

    사실 세계 체제의 주변부에서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고 유포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이러한 접경인들이었다. 조선에서는 남만춘과 김만겸 같은 디아스포라들이 급진화되어서 볼셰비키에 입당하고 조선 사회주의 운동에도 이바지한 것이다. 이들은 러시아와 조선을 오가고, 조선에서 러시아로 망명한 사회주의자들과 교유하며 보다 넓은 시야로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특히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적 조선 근대사론인 『압박받는 고려』를 통해 조선의 좌파에게 영향을 미친 남만춘의 기여는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 근현대 사회사 연구의 선구자로서 러시아 현지에서 활약했던 최성우(崔聖禹, 1898~1937)와 양명(梁明, 1902~?)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최성우는 남만춘, 김만겸과 마찬가지로 재러조선인 2세이면서 코민테른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이고, 양명은 중국 유학을 거쳤다가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뒤 상해와 모스크바를 무대로 활약한 인물이다. 중앙의 이론적인 틀로 주변부를 바라보고 주변부의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는 중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두 인물은 특히 이론가로서 주목할 만한데, 이들의 몸은 머나먼 타국에 있었지만 이들의 식민지 시대 조선에 대한 관찰은 상당히 치밀했다. 급진파 사회주의자로서 밑에서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폭동과 소요를 비롯해 조선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사건들에 하나하나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운동가로서 민중의 흐름을 열심히 추적하며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어낸 이들이다.

    한편 한위건(韓偉健, 1896~1937)은 중국공산당에서 활약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상해로 피신했으며, 이후 도쿄로 유학하여 와세다대 정치경제과에 다녔다. 급진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던 그는 유학에서 돌아와 《동아일보》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사회주의자로 활동을 벌인다. 하지만 1928년 지하 조선공산당이 무너지면서 일제의 검거를 피해야 했기에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렇게 중국으로 거처를 옮긴 한위건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상당히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활동하는데, 당시 중국공산당의 공식적인 영도권을 쥐고 있던 왕밍(王明)의 노선을 비판한 것을 계기로 주목받는다. 이후 마오쩌둥은 자신의 전집에서 실사구시한 사람, 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유물론적·변증법적 혁명관의 소유자로 한위건을 묘사하기도 했다. 조선, 일본, 중국에서 모두 살아본 노련한 운동가로서 그의 급진적 대중 노선은 중국공산당에 여파를 드리운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마지막 인물은 붉은 페미니즘을 선도한 조선의 엘리트 여성 허정숙(許貞淑, 1908~1991)이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한 그녀는 일본, 중국, 미국 등 다양한 나라를 돌아보았고, 일본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까지 구사할 줄 알았던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연설하는 운동가였으며, 중국으로 망명해서는 조선의용대로 활동하며 여전사이자 정치 지도자로 활약한다. 그리고 당대의 수많은 신여성들에게 드리워져 있던 가십의 회오리바람에서 줄곧 중심에 있던 인물이기도 하다.

    조선 사회의 최전선에 서 있던 그녀가 월북한 뒤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을지 모르겠다. 1920~30년대에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허정숙이 김일성이라는 최고의 가부장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힘센 이와 힘 약한 이의 동맹에 가까웠다고 평한다. 급진 페미니스트였던 그녀가 체제에 편입되어서 만든 젠더 정책의 급진성 또한 다시금 주목해볼 만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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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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