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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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8일 12: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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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소농(小農)의 나라였다. 토지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나누어 받은 수많은 자영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重勞動)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그 사회경제적 토대는 토지개혁으로 만들어졌고 토지개혁을 한 사람은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대한민국을 이승만이 만들었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을 역사적 사실로서 반박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누가 만들었나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을 때, 아니 그 이전에 좌우합작으로 마지막 임시정부를 구성하던 시절부터 전제가 있었다. 그건 새 나라를 노동자 농민의 나라로 만들자는, 토지개혁하고 보통선거권을 실현하자는 폭넓은 합의였다.

       
     ▲ 죽산 조봉암(사진위), 재판중인 조봉암과 진보당 인사들(사진아래) 
     

    독립운동 시절부터의 약속, 그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는 데 조봉암이 역할을 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조선공산당 인천시당 위원장이었던 조봉암은 1946년 6월 출당 당하고 6월 23일 인천에서 열린 대중 집회에서 성명을 발표하여 공산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948년 5월 10일 단독 선거에 참여하여 제헌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8월 2일 초대 농림부 장관에 취임하여 이승만 정권에 참여했다. 당시에 그는 얼마나 많은 욕을 먹고 얼마나 많이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을까?

    1950년 5월 30일 제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부의장을 지낸 후에 1952년 전쟁 중에 치러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여 11.4%를 득표하였을 때 또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을까? 혹시 돈키호테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까?

    중도좌파 노선과 조봉암의 외로움

    전쟁이 끝난 후 <우리의 과업>을 발표하여 중도좌파 노선을 분명히 하였을 때는 어떠했을까? 변증법적 지양이든 변화든 발전이든, 아니면 당신께서 주장했던 대로 사상적 성숙이든 인정되지 않고, 오직 극좌에서 극우로 ‘전향’밖에 인정되지 않는 나라에서.

    아마 현실 정치가로서 그가 생각한 대한민국은 좌우합작의 임시정부와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공화국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동자 농민의 나라였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 생각은 현실이기도 했다.

    바로 그래서 조봉암은 그토록 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그는 아마도 여운형의 서거로, 극좌와 극우의 대립 속에서 그리고 민족상잔의 전쟁 속에서 잊혀져가던 좌우합작 노선을 집요하게 이어나가려 했을 것이다.

    건국을 하면서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날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없었다면 그 후의 발전이 있었을까? 아니다.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이 보여주는 무기력한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평등한 나라’는 다시 꿈이 되었지만

    물론 60년이 지난 지금, 평등한 대한민국은 사라지고 상위 10퍼센트의 국민과 하위 10퍼센트의 국민의 소득이 50배 차이가 나는 나라로 되고 토지,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으로 근면 정신과 성장 동력은 소멸되고 있으니 평등한 나라는 다시 꿈이 되었다.

    우리 역사에 여운형에서 조봉암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었기에 최인훈이 <광장>을 쓰고 신동엽이 시를 쓰고 그가 사형 당한지 48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는 사기(史記)의 한 구절을 다시 읽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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