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가둬놓으면 속이 시원한가"
    2006년 12월 17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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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일요일 아침. 민주노총 법률원의 한 변호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미FTA와 비정규직 확산법안에 항의하는 12월 6일 범국민대회에서 연행돼 구속영장이 청구된 7명에 대해 9일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고 모두 풀어줬다는 소식이었다.

이틀 전인 8일 검찰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1,300명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고 식당아줌마들을 포함해 24개 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자진출두한 김영성 지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는 암울한 소식을 들었다.

"기사 괜힌 썼나" 후회스러웠던 한 주

한미FTA와 비정규직 확산법안에 반대한 노동자들이 연일 연행되고 체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은 가뭄에 한줄기 소나기같은 소식이었다. 오랜만에 들려온 기쁜 소식에 만사를 제쳐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레디앙>에 노동자들의 석방소식을 처음으로 올렸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 12월 12일 중앙일보 1면
 

이틀이 지난 12일 아침. <중앙일보>는 "FTA반대 불법 과격시위 혐의 7명 구속영장 모두 기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가까운 가판대로 달려가 신문을 사보았더니 1면 ‘톱기사’였다. 네이버와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들은 기사를 받아 대문에 내걸었다.

<중앙일보>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법원이 ‘불구속 원칙’이라는 이상론에 갇혀 폭력시위를 막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법원의 판결을 비아냥댔고 "불법 폭력시위를 막으려면 과격시위 주동자에게 법적 책임을 엄격히 물어야 한다"고 썼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기각당한 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기로 했다”는 기사의 마지막 구절을 읽다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중앙일보>가 이틀 전 <레디앙>에 실린 기사를 보고 이 기사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 기사 때문에 풀려난 사람들이 다시 구속되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법원마저 불법 폭력시위 조장 집단으로 몰아

기사를 쓴 <중앙일보> 기자는 집회 현장에 가지 않은 검찰 출입기자다. 그는 “검찰청 출입 기자라 집회 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검찰이 <중앙일보>에 기사를 줬는지, <중앙일보>가 검찰을 부추겼는지는 모르겠으나 거대 신문의 막강한 위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중앙일보> 톱기사의 위력은 엄청났다. 다음날인 13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다른 신문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기사를 실었고 법원의 판결을 비난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4일 검찰은 이 중 6명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했고 15일 이 신문들은 모두 검찰의 영장재청구 기사를 쏟아냈다.

‘마녀사냥’이 따로 없었다. 12일부터 4일간 보수언론과 공안검찰이 보여준 모습은 마치 ‘합동군사작전’을 방불케했다. 평화시위를 벌인 집회 참가자들을 ‘불법폭력시위대’로 매도하고, 법원마저도 ‘불법 폭력시위를 조장하는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6명을 ‘마녀사냥’의 심판대에 올렸다.

심판대에 오른 6명이 ‘저지른’ 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차별을 심화시킨다고 비판했던 비정규직법안과 한미FTA를 반대한 죄다. 이를 알리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반”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경찰이 금지시킨 집회에 참가한 죄다.

1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6명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다.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 아침, “금지된 집회 참가자 모두 석방되다”라는 제목으로 노동자들의 석방소식을 알렸던 기자에게 지난 일주일은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에서 언론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집단으로 뽑혔다. 한국사회 제1의 권력이 되어버린 통제할 수 없는 보수언론. 이제 노동자들의 석방소식도 마음놓고 알릴 수 없는 시절이 되어 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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