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반값'과 민주노동당
        2006년 12월 16일 09:3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부문으로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환매조건부 분양안과 대지임대부 분양안의 기본 취지에 대해서도 공감했다고 한다.

    재경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볼 때 이들 제도의 도입 범위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주택은 자산증식 수단이기에 앞서 주거 공간이고, 시장의 영역이기에 앞서 복지의 영역이라는 공감대가 미흡하나마 형성된 것은 평가할 만 하다.

    물론 당정의 이 같은 인식 전환이 자발적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여론의 힘에 밀려 강제된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박병원 재경부 차관은 널리 알려진 ‘분양가 상한제’ 반대론자다.

    흔히들 ‘민란이 일어날 분위기’라고 하는 부동산 민심이 강제력의 일차적 토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성난 민심은 그 자체로는 무정형이다. 물꼬가 틔어야 구체적인 강제력이 된다. 성난 민심을 ‘분양가 인하’로 방향지운 데는 홍준표 의원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홍 의원이 내놓은 ‘아파트 반값안’은, 명칭만 놓고 보면 사실관계와 동떨어진 정치적 수사에 가깝지만, 정부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쾌하게 짚었다.

    국민의 정서적 공감대를 간파하고 이를 매우 쉽고 간결한 슬로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홍 의원의 ‘아파트 반 값안’은 모범적인 정치 캠페인의 교과서적 사례로 보인다.

    그러나 단지 여기에서 그쳤다면 홍 의원의 캠페인은 대중영합적 정치의 한 사례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홍 의원이 돋보이는 대목은 ‘아파트 반값안’을 한나라당의 당론으로 관철시킨 뚝심과 정치력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영향력에서 여당을 압도하는 한나라당의 당론 채택은 반대편에서 여당 개혁파의 입지를 한층 넓히는 효과를 가져왔고 분양가 인하 요구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정부에 확인시켰다.

    ‘아파트 반값안’은 장점과 함께 한계 역시 분명한 대안이다. "민주노동당이 먼저 들고 나왔어야 할 법안"이라는 홍 의원의 비아냥은 그래서 적확하지 않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부동산 정국은 민주노동당이 주도해야 하고, 또 주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동산 문제야 말로 서민의 이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본 무대에서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이 뭔가 잘못 대응했다는 뜻이 아니다. 대응하는 모습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는 연속된 흐름이면서 그때 그때 결절점을 갖는다. 정치의 일상적 흐름이 비가시적 점선의 형태를 갖는다면 결절점들은 실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실선의 궤적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대개 정확하고 냉정하다. 일상활동을 통해 축적한 역량은 특정 이슈에 대한 대응력에서 그 정확한 표현을 찾기 때문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력 부재는 일회적인 실수라기 보다 당의 전반적인 문제를 집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 의원들이 경실련 간부로부터 ‘투기 무관심당’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사태만큼 당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없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