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정밀 노동자들 10년 만에 파업
        2006년 12월 16일 04: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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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계와 증권가에서는 S&T그룹(회장 최평규)을 STX, 유진, 프라임그룹과 더불어 떠오르는 4대 중견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평규 회장은 1979년 27세에 삼영기계공업를 설립한 후 2003년 통일중공업, 2004년 대화브레이크, 2006년 대우정밀을 인수하는 등 최근 몇년 사이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성공시켰다. 단기간에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되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떠오르는 4대 중견기업 S&T그룹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평규 회장’은 경영의 귀재가 아니라 금속노조를 부정하고, 산별교섭을 거부하는 ‘노동자 착취와 탄압의 대명사’ 일뿐이다.

    최 회장이 설립했다는 삼영, 그리고 인수합병한 통일중공업, 대화브레이크 등 모든 사업장에서 S&T자본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경영은 당연히 노동탄압을 불러왔고 노동조합과 극심한 마찰을 빚어왔다.

       
     
     

    S&T자본은 지난 9월 15일 대우정밀 인수해 이름을 S&T대우로 개명하면서 성대한 출범식을 가졌다.     

    대우정밀 지회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S&T콘소시움과 인수협상을 벌일 당시부터 구조조정을 빙자한 대량 해고와 노조 타압의 대명사인 S&T자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연구해 왔다. 물론 S&T자본도 노동조합을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해 왔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S&T자본은 김택권사장을 내세워 ‘생각 즉시 행동’이라는 구호를 들고나오면서 소위 ‘경영체질 개선’에 나섰다.

    드러나는 S&T자본의 ‘일방주의’

    S&T자본은 현장 직제개편, 사원 연봉제 도입, 사무관리직사원들에 대한 임금 동결을 강요하면서  그 본색을 드러냈다.

    우선 직제개편의 내용을 보면 이전에 노사가 합의하는 현장 임직급체계 제도개선을 통해 현장 관리직으로 기장, 직장, 조장의 체제를 유지하여 왔는데 S&T대우는 지회와 한마디 논의도 없이 기존의 체제를 폐지하고 파트장 체제를 도입하면서, 87명의 인원을 47명으로 줄이는 한편 나머지 인원을 직책 해임시켰다.   

    그리고 사원들에게는 연봉계약서에 직접 서명할 것을 강요하였다. 연봉제의 내용에는 별도 조항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봉액을 가감 조정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일방적인 독소 조항이 들어있다.

    고용불안과 임금삭감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을 가중시키고 사무관리직 사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명확한 의도였다. 

    S&T자본의 다음 차례는 노동조합

    매각협상으로 미루어졌던 06년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S&T자본의 화살은 노동조합을 겨냥했다. 어느날 조합원들이 출근해 보니 공장 앞에 그어져 있던 족구라인이 지워져버린 것(노동조합과 협의도 없이). 빗발치는 조합원들의 분노의 목소리와 노동조합의 항의로 족구라인이 복구되었다.

    9월 25일 시작된 2006년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단체교섭의 차수가 거듭되면서 회사의 ‘본색’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10월 24일 열린 7차교섭에서 회사측은 ‘임금 동결’을 주장하더니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과정에서도 ‘임금 동결’을 굽히지 않았다.

    워크아웃 상태에서도 대우정밀은 해마다 100억원이 넘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2005년도에도 7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S&T자본이 사무관리직의 임금동결에 이어 지회와의 교섭에서도 ‘임금동결’을 거침없이 들고나오자 노동조합은 ‘기어코 올 것이 왔구나’라고 판단하고 S&T자본과의 일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11월 8일 조합원 696명중 624명이 참석한 쟁의행위찬반투표는 90%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조합원들은 말로만 전해만 듣던 S&T자본의 노동착취와 노조탄압의 악명을 불과 2개월이 채 못되어 몸으로 느끼고 생존권을 지켜줄 수 있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력을 확인하였다.

       
     
     

    최 회장은 대우정밀을 인수한 지 며칠 안된 9월 18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 식구가 된 S&T대우 노조는 7~8년 무파업 전통을 이어 온 매우 성숙한 노조"라 추켜세운뒤 "수시로 노조를 만나 모든 문제를 대화로 풀어갈 예정"이라며 대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2시간 경고파업이 예정되어 있던 11월 10일 오전, 대의원을 포함한 확대간부들이 인근에 자리한 금속노조 정관지회 신신기계 현장위원회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집회에 참석하려하자 ‘불법’이라며 딴지를 걸더니 신신기계로 노무과 직원을 몰래 보내 2층사무실에 숨어 집회 장면을 촬영하는 모습이 조합원들에 발각되었다.

    노동조합은 사진촬영을 하던 노무과직원을 현장에서 붙잡아 카메라 메모리칩을 회수하고 인사위원회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금속노조 간부의 정문통과를 수시로 가로막고 나섰으나 간부들의 단결된 힘으로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사측, 12월 5일 직장폐쇄 단행

    S&T자본의 노조탄압을 면밀히 연구하며 대비책을 마련해온 대우정밀지회는 단기간의 승부보다는 끈질긴 투쟁으로 S&T자본의 탄압을 돌파한다는 전략 아래 교섭을 병행하며 ‘지정파업’을 이어갔다. 부서를 지정하여 예고없이 1시간 혹은 두시간, 네시간씩 벌이는 파업에 회사는 당황하였다.

    재고없이 생산된 부품을 실시간으로 GM대우로 납품하는 S&T대우는 지회의 지정파업에 사무관리직을 동원하여 대체근로에 나섰다. 그러나 지정파업으로 멈춰선 기계를 돌리던 사무관리직은 지정파업이 풀리면 한두시간만에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는 등 우왕좌왕.

    급기야 S&T대우는 ‘임금 3만원 인상안을 지회가 거부했다’며 12월 5일 오후 1시부로 방산부문과 교육생을 제외한 민수부문 조합원 434명(전체조합원 700명)과 전사업장 출입에 대해 직장폐쇄를 단행하였다.

    대우정밀 지회(지회장 문철상. 지회 이름을 바꾸지 않음)는 ‘교섭석상도 아니고 사장이 지회 간부와의 간담회자리에서 임금 3만원 인상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회사의 태도는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지회 간부와 조합원들을 이간질시키려는 음모’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즉각적인 쟁대위 회의를 소집해 ▲파업기조는 유지한다 ▲전조합원은 출근한다 ▲방산을 포함한 전체 조합원을 5개조로 나누어 순회 철야농성에 돌입한다는 투쟁원칙을 확정하고 즉시 식당에 농성장을 마련하고 장기투쟁 태세에 돌입하였다.

    1996년 조수원열사 투쟁 마무리 이후 대우그룹이 붕괴되면서 대우정밀은 수차례 회사이름이 바뀌고 경영진도 바뀌는 과정에서 노사간의 극심한 대결은 없었다. 결국 S&T자본이 인수하면서 10년만에 대우정밀 조합원들은 사생결단의 투쟁으로 내몰린(?) 셈이다. 

    직장폐쇄 2일차인 12월 6일. 아침 출근시간에 대우정밀 인근 도로가 막혀 울산으로 가는 국도가 막히고 그여파가 금정구일대까지 확산되는 교통대란이 발생하였다. S&T자본이 직장폐쇄를  한다며 하나밖에 없는 회사의 정문 차량출입을 막아서자 노동조합의 지침에따라 출근투쟁을 벌이기 위해 회사로 오던 조합원들과 사무관리 직원들의 차량을 포함하여 1천여대의 승용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도로를 꽉 메워버린 것. 조합원들은 차를 길거리에 그대로 세워놓고 정문을 뚫고 사내로 진입하였다.

    인근 주민과 언론뿐 아니라 경찰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들은 S&T자본은 이후부터는 정문 안에 있는 사원아파트로 차량이 진입, 주차하는 것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차량출입을 통제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출근투쟁을 막아보려던  S&T자본의 KO패.

    파탄나는 ‘직장폐쇄’

    사무관리직을 생산현장에 투입하여 GM대우에 납품기일을 지키며, ‘희망조합원’은 직장폐쇄에서 제외한다는 S&T자본의 ‘작장폐쇄’ 전술은 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선 사무관리직의 자조와 굴욕이 깊어져 가고 있다. 연봉제에 임금동결 서명까지 강요당했던 사무관리직은 현장에 투입되면서 육체적 피로는 물론이고 불량품에다 가끔씩 발생하는 산재사고까지 당해야 하는 처지.

    "그냥 생산직이 편하겠다." "이거 할라꼬 임금동결하고 연봉제 서명했나"는 푸념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최평규 믿지 못하겠다"며 벌써 다른 회사 일자리 알아보는 사무관리직이 늘고 있다는 소문이 현장에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사무관리직의 업무인 연구개발, 해외수주 협상 지원, 생산현장 지원 등이 밀리거나 전혀 이루어 지지않아, "회사가 정상화되더라도 엄청난 후유증이 예상된다"거나 "해외에서 수주활동을 하고 있는데 본사에서 업무지원이 되지 않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이에 반해 조합원들은 지회의 지침에 따라 한명의 이탈자없이 매일 출근하여 오전 보고대회 등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에는 퇴근한다. 순회 철야농성조 140여명은 농성장인 민수식당에서 삼삼오오 모여 장기, 독서, 영화관람을 즐기는가 하면 탁구장과 체력단련실을 찾아 운동을 즐기기도 한다.

    철야 농성장에서 만난 방산부서의 한조합원은 “이 생각 저 생각 없다. 무조건 지회의 지침에 따른다. 임금이 문제가 아니다.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 미래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며 “느슨해진 조합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좋은 계기인 것같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결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며 이번 투쟁의 성격을 설명한다.

    회사의 태도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S&T자본에 밀리지 않는다"는 조합원들의 강고한 단결력에 직장폐쇄까지 단행했던 회사쪽이 변화할 조짐을 보인 것은 직장폐쇄 1주일째 되는 12월 11일. 회사는 노조에 교섭 재개 요청을 해온 것이다.

    ‘직장폐쇄’를 단행한 그날 철야농성장이 마련된 민수식당에 수도와 전기를 끊었던  S&T자본이 12월8일부터는 철농조140여명에 대해서는 점심을 제공한다든지, 조합원들의 사내 출입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측이 먼저 교섭요청해온 것은 뜻밖의 일. 대우정밀 지회는 ‘회사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 그러나 회사가 교섭을 요청해올 경우에는 교섭에 임한다’는 방침에따라 12월 12일 오후 2시 본교섭을 재개하고, 회사측의 요청에따라 실무교섭에 돌입하였다.

    대우정밀 지회와 조합원들은 S&T자본이 저지른 공격적인 직장폐쇄로 인해 발생한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S&T자본이 해법을 내놓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3일 동안 계속된 실무교섭에서 S&T자본은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고있다.

    조수원열사 11주기 추모제

    12월 15일 오전 11시. 민수식당에 마련된 조합원 농성장에 방산부문까지 포함한 700여명의 전조합원이 모였다. 11년전 ‘병역특례해고자 강제징집 중단’을 요구하며 복직투쟁을 전개하던 중 자결한  조수원열사 1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투쟁의 와중에 맞게 된 조수원열사 추모제. 11년전 그 처절했던 열사투쟁의 영상이 상영되고, 10년만에 또다시 S&T자본에 의해 사생결단의 투쟁전선에 나서게된 대우정밀 지회 조합원들의 힘찬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엔 S&T자본의 ‘일방주의’를 저지하고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어느때보다 결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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