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조작이라면 가열차게 폭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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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5일 03: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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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이정훈 선배님.

    이미 바람에 날이 서기 시작한지 오래이고, 안방에서도 불을 잠시라도 때지 않으면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차갑기 그지없는 옥중에서 고생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로의 인사와 함께 소개를 올리면 저는 선배님보다 여섯 학번 아래의 학교 후배입니다.

    학교에서 마주칠 가능성조차 희박한, 까마득하다 못해 하늘 위의 하늘같은 선배님께 느닷없는 인사를 드리게 된 뜻은 선배님이 보내 주신 ‘당원 동지’들에 대한 편지에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추억은 되살리지만, 감동은 없는 편지

    마음은 여러 갈래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 중 우선 마음의 발길이 닿았던 것은 과거 툭하면 모교 학생회관 앞에 붙어 있던 결의의 글들의 추억이었습니다. ‘급고~’의 타이틀 아래 붙어 있던 "모모 결사대 모 지역 타격!!" 하는 제목과 더불어 그 투쟁에 동참하고 감옥에 갈 것을 자원했던 분들이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나, 동기들에게 남긴 편지들이 날카롭고 때론 동글동글한 ‘운동권체’ 매직으로 쓰여 있었지요.

    "어머니 동이 터 옵니다" 로 시작해서 "식민지 조국 해방에 한 알 밀알이 될 수 있다면" 정도로 감동을 자아내다가 ‘미제 축출’이나 ‘노동해방 투쟁’ 만세로 갈음하던 그 글들은 지나던 청년 학도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고 종주먹을 쥐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 이정훈 당원의 부인 구정옥씨가 지난 13일 열린 후원주점에서 이 당원의 옥중서신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민주노동당)
     

    선배의 글은 그 시절 대자보의 추억을 충실히 되살려 주시긴 하셨습니다만, 애석하게도 그날의 감동은 추호도 살려 주시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의 또 다른 갈래는 선배의 글에 감성적으로 동화되기보다는 선배의 글에서 제가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내 선배가 ‘당원 동지’들에게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발견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우선 저는 선배님이 얘기하신 바, " 민족의 절반이 생활철학으로 여기는 상식적 사상을 허가 없이 접할 자유"가 우리에게 없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 그 ‘민족의 절반의 생활 철학’을 스스로의 인생관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설파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합니다.

    주체철학 전파 권리 보장돼야 하지만

    동시에 저는 ‘민족의 절반인 생활 철학’ 또한 무오류의 성역이 아니라 비판받아야 하며, 그에 대한 모든 비판과 반대와 이의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을 방패로 삼는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합니다.

    선배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쪽 정치와 변혁 활동의 주체는 남쪽 활동가이며 자신의 신념과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기자신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은 상식이요, 순리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땅의 진보정당 내에서 그 주체성을 버리고 북한의 신념과 북한의 판단에 따라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것은 묵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수사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저는 알지 못하고, "국정원보다는 동지의 말을 믿자"는 말에 소극적이나마 동의를 표하지만, 그 소극성에 적극성을 불어넣어 주시려면 최소한 선배님을 비롯하여 함께 감옥에 있는 분들이 국정원의 수사 결과가 명확한 허위임을 증명해 주셔야 했습니다.

    한 정당의 당 간부들에 대한 일목요연한 보고서가 당 간부의 손에 의해서 타국 (같은 민족이나 엄연히 다른 나라고, 그 나라에도 국정원같은 조직이 있습니다)의 정보 요원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 혐의라면, ‘그 혐의 자체가 조작되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우스꽝스러운 해당 행위이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 스스로 그 행위자를 당기위에 고발하겠다’는 서슬 정도는 보여 주셨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선배는 당 중앙위원까지 지내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끝끝내 선배님은 아름답지만 손에 쥐어지지 않는 뜬구름만 편지지에 띄우셨습니다. 아들에게 분단조국의 고통을 물려 주지 않겠다는 얘기 감동적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살리자는 사상"에 대해 한 별을 우러러보는 듯한 선배님의 일편단심에는 존경심이 절로 우러납니다.

    국가보안법 뒤로 숨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을 살리자는 사상과 한 정당의 당 간부 명단이 고스란히 타국의 정보요원에게 보고되었다는 사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불쌍할만큼 외면하셨습니다. 심하게 말씀드리면 경멸스러울 정도로 국가보안법의 그림자 뒤로 숨으셨습니다.

    아마도 선배님은, 또는 선배님은 아닐지라도 당내의 어떤 분들은 그 행위 자체를 "나라와 민족을 살리자는" 행동의 일환으로 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동시에 당내에는 그것이 사실일 경우, 선배님이 말씀하신 바 비주체적이고 북한에 대해 외사랑 (짝사랑도 아닌)을 보내는 망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둘간의 간극을 해소하고 국가보안법 철폐에 어깨 걸기 위하여, 선배님의 명확한 입장 표명과 사실 규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북한 사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그 "민족의 반쪽의 생활 철학"을 삼천리 반도 전체로 확대시키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생각하는 이들이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북한과 그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생각이 생판 다른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 나설 것만을 목청 돋우는 일은 글자 그대로 정치적 사기질입니다.

    또한 당내의 정보를 설렁설렁 북한에 보고까지 했다는 혐의가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는 감동적인 언사로는 아무것도 덮을 수 없습니다. 신념의 고백은 그 신념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우나 그 신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공염불에 불과하거나 때로는 ‘병신육갑’으로까지 비하된다는 사실을 선배님도 익히 아시리라 믿습니다.

    신념의 고백과 신앙의 고백은 달라야 합니다. 신앙은 설명할 이유가 없이 스스로 충만하면 그만이지만,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은혜와 감동이지만, 신념의 고백에는 그 신념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과 뚜렷한 논거가 있어야 합니다.

    선배님은 도대체 왜 잡혀가신 겁니까

    다시 한 번 선배님의 편지를 읽습니다만, 민족공생, 사상의 자유 등등 아름다운 원칙 (갑자기 이회창이 떠오르네요 ^^) 얘기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선배님이 맞서 싸워야 할 국정원의 수사와 그들이 뒤집어씌운 혐의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논리적 설명이 없습니다. 도대체 선배님은 왜 잡혀가신 겁니까. 선배님은 민족을 사랑하고 분단을 반대하는 사상을 가진 것 그뿐입니까? 국정원이 독심술 도구라도 특허를 낸 겁니까?

    집뒤짐을 해서 케케묵은 주사 문건들을 증거로 "이적표현물 탐독"으로 걸었다면 말씀하십시오. 혹시 즐겨 듣는 음악에 인터내셔널가가 있다고 잡혀간 것이라면 일러 주십시오. 그냥 북한 사람들과 술 한 잔 했는데 그게 이적단체 구성원과의 접촉으로 걸렸다면 황당함을 무릅쓰고 전해 주십시오.

    하지만 왜 잡혀갔는지, 그 혐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조작인지를 밝혀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국정원의 말이니까 무조건 믿지 말라 하시면 선배님의 친구들을 제외한 이들에게 칼끝이라도 들어갈 것 같으십니까.

    국정원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선배님은 더 명료하고 단호해 주셔야 합니다. 저희 학교의 모토를 조금 바꿔 말씀드린다면 보다 단순하지만 합리적으로, 무식하지만 지혜롭게, 과격하지만 솔직하게 입장을 밝혀 주셔야 합니다.

    국정원 조작을 가열차게 폭로해 달라

    민주노동당 전 중앙위원 이정훈 동지께 질문합니다. 사실여부를 차치하고 한 당의 당직자가 다른 당 간부들의 정보를 타국의 정보요원에게 누출시켰다면 그것이 해당 행위임을 인정하십니까? 여기에 예! 라고 힘차게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전혀 없었으며 그 모든 것이 국정원의 조작이었음을 가열차게 폭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힘을 편안히 모을 수 있는, 현명한 대답을 기대해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배님의 편지는 그 유의미성을 현저하게 잃고 선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의 심금만 공허하게 울리는 신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추운 날씨…. 옥중 생활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정훈 당원의 편지 전문

    http://news.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2&art_no=372485&jact=art_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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