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직복직' 등 핵심 빠진 산재법 개정안
    By tathata
        2006년 12월 15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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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위원회의 산재보험제도 개선안이 12월 13일 발표되었다. 노사정위의 개선안은 재정 · 징수, 요양-재활, 보험급여, 적용대상, 관리운영체계 분야 등 5개 분야, 42개 과제, 8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범위가 매우 넓고 포괄적이라는 점에서 과거 정부의 산재보험 개선대책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루어지는 범위만 넓어졌지 실제 산재보험이 내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거나 핵심적인 과제가 상당 부분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산재보험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게 된 데에는 산재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가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많은 노동자가 사업주의 은폐로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있어도 자신의 병이 산업재해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값비싼 치료비 부담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의 현실이 그 이면에 존재하였다.

       
     ▲ 지난 13일 노사정위원회 조성준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산업재해보험 개편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오른쪽은 이상수 노동부장관, 왼쪽은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용케 높은 산재보험의 문턱을 넘어도 원래의 직장과 사회로 돌아갈 희망을 차압당한 채 고통스러운 병실 생활과 편견과 무지로 가득 찬 도덕적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던 산재노동자의 처참한 현실도 그 한편에 존재하였다.

    더욱이 영세소규모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산재보험의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상은 오히려 더 산재보험에서 배제되는 역설적 현상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산재보험이 모든 노동자와 그 가족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하는 보편적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던 것도 사회적 의제 형성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독립적인 산재 판정기관은 장기적 과제?

    그렇지만, 산재보험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는 정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느새 부차적인 과제로 전락하고 경총 등 특정 이해집단의 경제 논리가 우선적인 가치와 과제로 부각되었다.

    그 결과 보험자인 근로복지공단이 사전에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잘못된 승인 절차를 개선하고 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노동자의 핵심적 요구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거나 중장기적 과제로 넘겨졌고, 보험급여에 대한 통제와 관리 강화가 주요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급기야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 노사정위 개선안이 산재보험에 대한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는 데에 미흡하고 산재보험의 재정적자 문제를 개선하기 어려울 정도 노동자 편향적이라는 막말이 등장하게 되었다.

    긍정적 변화 있지만 아쉬움 더 많아

    물론 재활급여를 신설하고, 소득이 낮은 노동자의 휴업급여율을 상향하겠다는 안은 긍정적 변화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원직장 복귀와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에 대한 비전과 원칙 없이 단지 산재노동자의 보험급여 혜택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한계적이다.

    재활급여만 하더라도 노사정위가 진정성을 갖고 재활에 천착하였다면 당연하게 재활급여와 함께 산재노동자가 원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대안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직업재활을 포함하여 재활체계의 구축과 이를 위한 시설, 인력 등 공적 인프라의 확충 및 예산 확대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합의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실천적 의지를 의심할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이렇듯 노사정위 개선안은 애초 그러한 정책이 필요한 산재노동자와 취약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졌다기보다 경총 등 특정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주요한 반영되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의 이면에는 노사정위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 현재 노사정위는 산재보험제도 개혁을 요구했던 핵심 당사자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빠져 있다. 산재노동자도 제도 개선안을 만드는 주체로 참가하지 못하였다. 제도 개선을 오랫동안 주장했던 핵심 당사자가 빠진 상황에서 마련된 개선안이 노동자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되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산재보험은 변해야 한다. 노사정위에서 제시한 개선안을 뛰어넘는 전향적인 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산재보험제도를 알거나 모르거나 재해를 입은 노동자라만 누구나 보편적 급여를 받을 수 있고, 근로복지공단 또는 정부가 운영하는 양질의 재활센터에서 충분하게 재활서비스를 제공받아 위험이 제거된 원직장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하며, 장애를 입어도 정상적인 사회적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산재보험제도가 개혁되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에게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산재 발생부터 직장 및 사회 복귀의 전 과정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서비스기관으로 변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민주노총을 포함하여 산재보험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산재노동자의 전면적 참여를 보장한 새로운 논의 틀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산재보험의 존재 이유에 근거한 미래지향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전제되어야만 노사정위 합의안은 노동자에게 독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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