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동적 지배집단과 결탁은 명백한 해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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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4일 06: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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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 4호에 실린 나의 글 ‘대북 접촉과 북한에 대한 입장, 그리고 당과 <전진>의 과제’에 대해 ‘다함께’ 신문 ‘맞불’의 한규한 기자가 비판 글을 투고했다. (레디앙 12월 14일자) 내용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사실관계 확인과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한다.

    내 글은 <전진>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개인 견해

    첫째, 한규한 기자는 글의 첫머리에 “의견그룹 ‘전진’이 기관지 <전진>에 뒤늦게 입장 하나를 발표했다”고 썼다. 기관지를 읽어봤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나의 글은 전진의 입장 발표가 아닌 회원 개인의 기고문일 뿐이다. 전진은 모든 회원들의 정견과 어투와 표정까지 똑같이 정리되는 어느 조직과는 다르다. 나의 기고문에 대해서는 전진 회원들 내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 의견들이 활발히 토론되기를 바랄 뿐이다.

    둘째, 한규한 기자 명의로 투고한 글의 진정한 주체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의 말미에는 “‘다함께’는 이런 입장이 ‘전진’의 공식 입장이 아니길 바란다.”라는 언급으로 끝을 맺는다. ‘다함께’를 1인칭 주어로 놓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 글은 ‘다함께’의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나의 논리전개도 그런 전제를 바탕으로 시작할 것이다.

    셋째, 당부의 말씀이다. 그 글이 한규한 기자 개인 입장이 아닌 ‘다함께’의 입장이라면, 차후로는 그에 걸맞게 책임을 담보할 명의로 올려주시길 바란다. 조직의 이름으로든 조직을 대표할만한 책임 있는 인사의 이름으로든 말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한규한 기자는 나의 글에 대해 “왜곡, 형식논리, 자가당착으로 점철돼 있다”고 크게 꾸짖으며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눠서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첫째부터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정치사상의 자유와 간첩행위를 분리한 나의 글에 대해 한규한 기자는 국가보안법의 폐해와 공안당국이 조작한 간첩 사건들을 지적하면 반박한다. 내가 말한 간첩행위는 명백한 사실로서의 행위인 것이지, 공안당국이 조작한 사건까지 포함한 것이 아니다.

    일반론에 특정 사실 끄집어 반박

    하나의 일반적 원칙을 제시한데 대해, 그에 해당하지 않는 특정한 사실들을 끄집어내어 반박한다면 동문서답이 될 뿐이다. 나의 기고문 서론 부분에도 명시했듯이 특정한 사건의 진실이 어떻게 밝혀지든 나의 결론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행위와 간첩행위는 뒤섞을 일이 아니다. 북한의 간첩을 국보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특수한 법체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진보적 투쟁에 자의적으로 덮어씌울 수 있는 이른바 ‘이적행위’와는 구분된다.

    한규한 기자는 “‘북한을 이롭게 한 행위’를 방어할 수 없다는 논리로는 국가보안법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데, 나는 그런 논리를 펼친 기억이 없다. 상대방의 논리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거나 난독의 소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다.

    둘째, 한규한 기자는 나의 글을 토막 내어 전혀 다른 취지로 재편집한다. 그중 압권인 부분을 통째로 인용해본다.

    그는 북한 정권이 “대안 사회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에 북한과 내통하는 행위는 “반동적”이며 “해당 행위”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체주의자들은) “정치적 청산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사법적 정리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보안경찰에 자수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한규한 기자의 글 중에서)

    위의 작문은 첫머리부터 왜곡이다. 내가 북한과의 내통을 해당행위로 규정한 것은 북한이 단지 대안사회가 될 수 없어서만이 아니다. 북한은 민주노동당 강령을 한반도 전역에 걸쳐 실현하는데 있어서 적대되는 억압적이고 반동적인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당원으로서 그런 세력과 내통 협력하는 것이 해당행위임은 지극히 당연하다.

    정치사상의 자유와 정당 당원의 정치행위는 달라

    끝부분의 작문도 나의 서술을 거두절미한 왜곡이다. 그는 나의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보안경찰에 자수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멋대로 해석한다. 물론 당사자들이 원한다면 탈당도 선택지의 일부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적 청산”이라는 서술 앞에 “반민중적 오류를 청산”할 것을 요구했다.

    오류를 청산하라는 것이 어찌 탈당 요구로 환원되는가. 나는 그들이 반동적 지배집단에 대한 추종노선을 청산하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로 거듭나서 당을 위해 헌신하기를 바란다.

    한규한 기자는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이 반제투쟁에 열심이라며, 그들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전체 운동에 대한 공격을 방조하는 행위”라고 호통친다. 내가 해당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반동적 지배집단과 결탁한 특정한 행위당사자들이지, 주체주의자 일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분별 못하고서는 발전적 논쟁에 이를 수 없다.

    개인이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따르든 정치사상의 자유는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당원으로서의 정치행위는 다르다. 당은 강령을 중심으로 특정한 정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체다. 당 강령에 위배되는 정치사상은 당이라는 공적 집단 내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 더구나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을 넘어서 반동적 권력집단과 내통하고 협력한 행위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한규한 기자의 왜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익의 데마고그와 후진 대중의 압력에 굴종해 미국의 대북 압박보다 북한 핵실험 규탄을 먼저 내세웠던 ‘전진’의 입장이야말로 ‘자주’적이지 못하다.” (한규한 기자의 글 중에서)

    전진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공식 성명에서 사태의 선차적 책임이 미국에 있음을 제일 먼저 강조했다. 그럼에도 위의 인용문처럼 선후를 뒤바꾸며 왜곡할 용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위의 글에는 전진의 입장에 대한 왜곡과 함께 매우 위험한 대중관이 숨어있다. “후진 대중”이라니? 오늘날 남한 대중들의 비판적 대북관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일방적으로 주입된 ‘뿔난 도깨비’ 수준이 아니다.

    ‘후진 대중’은 없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원천은 억압과 빈곤이며, 당면한 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한 다수 대중의 거부는 핵무기 자체와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현실적 근거를 갖는 것들이다. 이를 가리켜 “후진 대중의 압력”으로 일축해버린다면 그 ‘배짱’만은 가상하다고 볼 것이다.

    한규한 기자는 수직적 지도와 국제 좌파운동의 사례연구를 뒤섞으며, 전진을 같은 층위로 끼워 넣는다. 국제 좌파운동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그것을 수직적 지도에 비유한다면 억지 치고도 지나치다.

    그는 또 진보정당간의 대등한 교류를 수직적 지도-보고 체계와 뒤섞어버린다. “진정한 좌파라면 ‘당의 자주성’을 국제 교류 일반과 대립시키지 않는다”는 그의 점잖은 가름침은 또 하나의 왜곡의 산물이다. 나의 기관지 글에는 진보정당간의 국제적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며, 다만 이중멤버십에 기초한 지도-보고 체계는 상급단위의 단일 국적성에 의한 해악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국제적 교류와 지도-보고 체계 뒤섞어

    그것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있어서 별로 자랑스러운 전통이 아니다. ‘다함께’ 동지들이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다지 불쾌해할 일도 아닐 것이다.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지도를 받는” 집단이 어디인지는 스스로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장황한 왜곡만큼이나 답글도 길어졌다. 사실 나는 ‘다함께’ 동지들이 나의 글을 뭐라고 평가하든 별로 괘념치 않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글의 운명보다는 당의 운명이다.

    이 지면을 통해 재차 강조한다.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 속에서 정치노선의 오류를 범한 동지들은 지금이라도 과오를 청산하기 바란다. 그것만이 당이 당면한 위기의 중요한 한 축을 해소할 길이 되는 것이며, 그들이 진정한 사회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아울러 ‘다함께’ 동지들에게도 당부 드린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길이 곧 반동적 지배집단과 결탁한 세력을 옹호하는 일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적의 적은 동지’라는 유치한 관념의 소산일 뿐이다. 나는 ‘다함께’ 동지들이 갖고 있는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향한 신념에 동의하며 그 진정성을 신뢰하고 싶다.

    그럼에도 ‘다함께’ 동지들이 작금에 제출하는 입장들에는 특정 정파에 대한 경쟁심을 담은 정치공학적 혐의를 지울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생각이 기우이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자본과 제국주의의 지배에 맞서 투쟁하는 동지로서 좀 더 발전적 토론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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