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사회적 책임은 고용과 납세다
        2006년 12월 15일 1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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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과 6일, 심상정 의원실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토론회가 연이어 개최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이처럼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른 것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시민단체들이야 오래 전부터 그것을 요구해왔고, 총자본의 입장에 서있는 노무현 정부 역시 한국 재벌 체제의 지속성을 위해 ‘사회적 책임’이라는 유연화 전략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기업이 이미지 홍보 중심의 공격적 마케팅을 펴고 있고, 기업 사회적 책임 국제기준(ISO 2600)의 적용도 2년 앞으로 다가와 있다.

    ‘기업 사회적 책임’ 강조는 재벌 유연화 전략

    기업의 구성원이 사회 구성원이고, 기업의 사업 대상이 사회인 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나, 누구에게 유리한가와는 무관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과 기업 외 사회 주체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문제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평가할 것인가이다.

    안타깝지만 우리 나라 노동조합은 아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우리 나라의 기업별 노조들은 전투적이되 기업의 틀은 절대 벗어나지 않는, ‘기업과의 적대적 의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경제 관련 시민단체인 경실련의 경우 전체 수입 중 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지나지 않는 반면 기업에 의존하는 후원금과 사업수입은 90% 가까이나 된다(원유미,「시민단체의 재정자립화 방안 연구」, 2002). 요즘 많이 생긴 환경, 여성, 연구 관련 시민단체 재단들은 아예 재벌 기부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언론은, 기업 평가에 부적절한 자발적 공범이다. 지난 주 칼럼에서 비판한 바 있는 <한겨레>의 ‘기업 사회공헌’이나 <문화일보>의 ‘1사 1촌이 희망이다’ 캠페인은 어떤 수사를 붙이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싶은 기업의 자가 발전과 광고 수입의 절묘한 결합일 뿐이다.

       
     ▲ 삼성의 기업이미지 광고 <함께해요 희망으로-복지관편>
     

    ‘기업의 사회 책임’이 기업과 언론, 시민단체끼리의 상부상조로 빠지지 않으려면, 임의적 납품업자가 아니라, 공정한 심판을 내세워야 하고, 현 시점에서는 좋든 싫든 정부에 그 역할을 맡겨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할 것인가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경실련이 ‘경제정의기업 대상’을 준 삼성SDI는 함께하는시민행동에 의해 ‘가장 탐욕스런 기업상’을 받았다. 경실련은 ‘기업활동 공정성’과 ‘사회봉사 기여도’를 이유로 꼽았고, 함께하는시민행동은 노조활동 탄압을 선정 이유로 삼았다.

    기부나 자선, 봉사는 기업의 1차적 책임이 아니다. 이미 한국 기업의 매출액 대비 사회공헌 지출은 일본 기업들을 넘어섰다. 한국 재벌들에게 자선이나 봉사는, 일주일 내내 나쁜 짓 하다, 그 죄사함 받는 주일기도회가 되고 말았다.

    문화, 교육, 복지, 환경에 대한 기여도 곧이곧대로 보아주기 어렵다. 하필이면 그런 시설이 목 좋은 부동산에 자리하며, 하필이면 그 시설이나 재단이 총수 일가의 소유이며, 하필이면 그곳에서 불법 상속이나 비자금 세탁이 일어난단 말인가. 재벌의 면세 사업을 ‘사회적 책임’이라고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한국 재벌들의 1차적 책임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상법을 적용해야 할지, 형법상의 범죄단체 조직 조항을 적용해야 할지 헷갈리게 하는 수준의 한국 재벌이 진정으로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겠다면, ‘좋은 일’ 한다며 요란 떨기 전에 법부터 지켜야 한다. 공정거래법, 세법, 노동조합법 ……, 지킬 법 많고, 거기서 좋은 일 하면 된다.

    오지랖 넓은 한국 재벌들은 제 나라도 버린 미국 빈곤층 아동들까지 도와준다며 온갖 설레발을 친다. 그 아이들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얘야, 내게 주는 돈은 노동자들 불법 해고하고, 수천억 원 탈세해서 마련한 소중한 돈이란다. 아껴 써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가? 추운 겨울 산동네 찾아가서 연탄 쌓아놓고 홍보 사진 찍는 것인가? 재벌 일가의 고상한 취미에 맞추어 교육사업, 문화사업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것인가? 언론이나 시민단체와 함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회책임 보고서’와 ‘사회공헌상’을 나눠가지는 것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피고용자들을 법대로 대우하고, 법대로 세금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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