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이라도 인간취급 받아본 적 있어?"
        2006년 12월 14일 05: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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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양반! 우리 대리운전기사에 대해 좋게 좀 써주소"

    "어이! 이봐, 형씨! 좋은 점이 뭐가 있나? 응? 빨리 벗어나야 되는 이놈의 대리운전기사를 좋게 쓰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당신 이짓 하고 단 한번이라도 인간 취급 받아본 적 있어? 그래?"

    14일 새벽 2시. 대리운전기사들을 실은 15인승 승합차에선 작은 말다툼이 일었다. 짙은 화장의 거리 강남역에 밤이 깊어지면, 낮과는 다른 생존의 치열한 정글이 펼쳐진다. 양 손에 쥐어진 PDA에 코를 박고, 계속 누군가와 정신없이 통화를 하며, 단 1초에, 단돈 1,000원에 목숨을 거는(?) 대리기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이들의 고달픈 밤을 위해 강남역 사거리에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막장 버스’가 다닌다.14일 새벽, 기자는 강남역에서 일산까지 여섯 번 왕복하며 대리기사를 실어주는 승합차에 동승해 기사들의 애환과 표정을 기록했다.

       
      ▲ 14일 새벽 기자는 강남에서 일산까지 대리운전을 실어나르는 15인승 승합차에 동승했다.  
     

    대리기사의 발이 돼주고 있는 셔틀버스는 시외로 나간 기사들이 중심지로 복귀할 수 있게 한 시간에 한 번씩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오간다. 기존엔 대리운전협회에서 30여대의 셔틀버스를 운행 했으나, 택시업계에서 ‘여객자동차운수 사업법 위반’이라고 반발해 현재는 개인 사업자들이 ‘불법(?)’으로 운행하고 있다. 셔틀버스는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다니며, 1인 당 3천 원을 받는다. 

    ‘박리다매’로 팔리는 대리기사.

    그나마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기사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최근 대리기사가 급격히 늘어나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비’로 택시를 타는 기사들도 적지 않다. 한국에 대리운전이 처음 생기기 시작한 건 88올림픽 당시 음주 단속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핸드폰이 보편화 된 97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해, 경기 불황과 맞물려 지금은 ‘신종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대리운전협회는 "아직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전국적으로 대리 운전 업체의 수가 약 5,000여 개에 이르고, 종사자는 10만 명, 연간 2~3조원의 수입을 창출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협회에 가입된 업체 측 통계일 뿐, 실제 대리기사들이 체감하는 사업의 규모는 "뜨내기까지 포함해 약 30만에서 4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대리 운전기사의 운임비는 일반 택시비를 밑돈다. 보통 서울 시내에서 1만 5천원 안팎의 요금으로 대리 운전을 할 경우 운이 좋아(!) 택시 대신 셔틀버스 비용 3천원을 ‘복귀비용’으로 잡고, 수수료 20%를 회사에 반납하고, 기타 비용(약 1천~2천원)을 제하면 사실 손에 떨어지는 건 몇 푼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돈이라도 벌고자 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 업체쪽에선 전혀 아쉬울 게 없다.

    대리운전을 한 지 1년 6개월이 된 강모씨(56)는 "콜비 수수료로 30%를 떼이는 건 정말 너무 하지 않아? 게다가 그 돈 받아서 업체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상황판 보며 그저 전화만 걸어주는 거잖아"라면서 " 어떤 곳은 무려 50%까지 떼 가기도 하는데, 살기가 어렵다 보니 그 자리조차도 구하기 힘들 지경이야"라며 한숨을 쉬었다.

    앞에 앉아 있던 김 모씨가 "사람이 계속 몰리니깐 업체에선 박리다매로 대리 기사를 계속 저가에 넘기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서비스도 형편 없어 지고. 무엇보다도 한 푼이라도 아쉬운 건 우리 쪽이지 업체가 아니잖아요"라며 가라앉은 쉰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대리 운전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폭싹" 이라고 단 한 마디로 얘기한 강씨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식사를 두 끼로 줄여 몸이 고되긴 하지만, "노숙인부터 사장까지 태우며 사람 사는 얘기를 많이 듣고 또 숱한 희비를 겪으면서 세상살이를 배우는 게 그래도 재미있다" 라며 일에 대한 보람을 피력했다.

    술 취하면 실수해도 무조건 괜찮은 거요?

    연말연시면 대리운전기사의 사건 사고가 언론에 단골 뉴스로 등장한다. 하지만 뉴스 뒤 그 구조를 살펴보면 이미 예견된 사고에 불과하다. 요즘엔 대리업체간 경쟁이 심해 서울 시내 대리 운임비가 1만 원을 밑도는 곳도 생겼다. 이 싼 운임을 맡고 있는 기사들은 주로 면허만 가진 초보자로서, 무보험에, 신분에 대한 검증이 없어 다툼의 소지를 많이 남긴다.

       
       ▲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대리운전자들  
     

    아직 대리운전 관련 법이 없는 가운데, 기사 자격 조건과 교육은 업체가 자율적으로 맡고 있다. 하지만 업체 또한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으며, 그 마저도 하지 않은 곳이 태반이다.

    대리 운전사들의 자격 조건도 전혀 법제화돼 있지 않아 그저 ‘운전면허’ 와 업체 ‘오더’를 받을 수 있는 PDA 폰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들도 몰리고, 또 대리운전자들이 사고를 낸다 해도 현행법상 차주가 책임을 지게 된다.

    똑같이 일하고도 택시 기사보다 한참 낮은 운임을 받는 대리 기사 입장으로선, 단 돈 1,000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과속’을 하게 되고, 또 이용하는 손님이 술에 취한 사람 이다보니 자연스레 사건사고가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한다.

    요금 시비가 붙어 술 취한 손님에게 세 번이나 맞았다는 신홍식(42)씨는 "손님들이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선 이젠 적응이 돼서 괜찮다. 하지만 술 취하면 실수를 해도 무조건 괜찮다는 식의 생각이 아쉽다"라며 "대리운전기사가 이제는 법제화 돼야 할 시점이다. 단, 대리를 하시는 분들이 신용불량자 등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온 사람들인 만큼 그 사각 지대마저 포용 할 수 있는 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버스 안에 있는 기사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우리도 질 나쁜 대리 기사 때문에 피해를 보는 입장이다. 법제화가 되면 그런 사람들과 영세 업체들이 자연스레 정리 될 것이다,  지금은 거진 택시비의 반값인데, 최소한 택시비는 받아야 하지 않겠나?, 법제화가 돼야 업체, 기사, 고객 모두가 서로 존중하며 안전하게 일 할 수 있는 것이다" 등등 자신들의 의견을 쏟아냈다. 

    승합차에서 만난 대리 기사들은 ‘반말로 시작해 반말로 끝나는 손님들의 매너’엔 이미 ‘이골’이 나 있었다. 기사들도 손님들에게 할 말이 많았다. 이유 없이 맞고, 또 잠든 손님을 깨우지 못해 세 시간을 추위에 떨고, 민망한 에로 영화가 상영되고,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불러 다녀도 기사들은 ‘손님이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조건 이해해야 할 때가 많았다. 투 잡을 뛰느라 밥 먹을 시간조차도 없는 그들에겐 손님들의 시비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단 그냥 참는 편이 훨씬 더 이익인 것이다.

    건교부와 경찰청 핑퐁게임만 주고받아

    "저야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놈인데,(웃음) 형씨는 많이 좀 벌었어요? 오늘 어때요?"
    "아휴, 말 마쇼 (PDA 를 검색하느라) 손가락이 아프도록 눌렀건만 오늘 완전 삥이네"

    새벽 3시. 이 무렵이면 투잡을 가진 대리기사들이 철수하고 전업 대리기사들이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시간이다. 어떤 이는 연신 "죄송합니다. 지금 급히 가고 있습니다"라며 전화를 하다가 결국 셔틀에서 내려 총알택시를 타고 손님을 모시러 가고, 또 어떤 이는 수지맞는 명당을 찾아 정보를 주고받고, 또 어떤 이는 전화로 술 취한 손님의 ‘꼬장’을 들어주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거리엔 눈이 어두워 돋보기를 낀 체 PDA를 더듬거리는 노년층부터 힙합 및 양복 차림의 젊은이까지 각양각색의 대리 기사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오더’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은 봄 날씨라 거뜬하다"고 기자에게 너스레를 떠는 그들이었지만 코끝엔 콧물이 서려있었고, 잔기침이 새어나왔다.

    이런 대리기사들과 본의 아니게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콜을 받고 최대한 빨리 가야 하는 대리운전기사와 이를 실어주는 셔틀버스 기사이다. 행여 기자가 셔틀버스 기사에게 말을 건넬라 치면 좌석 곳곳에서 "빨리 갑시다! 콜 받았습니다" 라며 항의가 들어왔다.

    이런 재촉에 웃음을 건네던 셔틀버스 운전기사 이모씨(62)는 기자가 한 좌석을 차지해서 그만큼 ‘영업 손실’을 봄에도 불구하고, 대리운전기사의 처우가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특별히 기자의 동승을 허락했다.  낮엔 학원차를 운행하며 투잡을 뛰느나 수면 시간이 채 5시간이 안 딘다. 

    그는 "난 이제 나이 때문에 곧 은퇴를 할 것 같다. 나야 이젠 쉴 일만 남았는데, 셔틀 버스 운전하며 만난 대리운전기사들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대리쪽이 현재 엄청난 고용시장을 창출하고 있는데, 정부가 너무 무심히 이들을 내팽겨쳐버린 것 같아 답답하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지금과 같은 무법지대에서 이 사람들이 야밤에 콜을 받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잡기 위해 빨리 뛰느라 사고라도 나면 대형 사고가 터지는 건데, 생각만해도 정말 끔찍하다"면서 "대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진 게 몸 밖에 없어 그걸 밑천삼아 목숨을 내 놓고 달리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현재 국회엔 대리 운전 보험 및 대리 운전사의 자격 조건 등을 담은 ‘대리운전업법’이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과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 의해 제출된 상태이다. 하지만 택시단체의 압력으로 인해 이 법안의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와 경찰청이 서로 핑퐁계임을 벌이며 몇 년째 법안 심사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한국대리운전협회 법제실장 이창석씨는 "정부가 현재 관리 감독을 미루고 있는 상황인데, 이제 더는 방관해선 안 된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로 대리를 선택한 사람들을 정부가 포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고 반문하며 "법제화가 되면 난립했던 영세 업체들도 사라지고 문제 있는 기사들이 걸러지면서 결국 그 이익은 안전하고 질 높은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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