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심회 관련 <전진> 비판…탈당하고 자수하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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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2월 14일 11: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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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일심회’ 마녀사냥에 계속 침묵하던 민주노동당 내 의견그룹 ‘전진’이 기관지 <전진>에 뒤늦게 입장 하나를 발표했다. 그러나 <전진> 4호에 실린 구형구 동지의 ‘대북 접촉과 북한에 대한 입장, 그리고 당과 ‘전진’의 과제’는 왜곡, 형식논리, 자가당착으로 점철돼 있다.

    정치사상과 간첩행위를 분리할 수 있나

    첫째, 그는 “간첩 행위는 정치사상의 자유에 관한 문제와 분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건 연루자들이 남한 운동에서 자생적으로 나온 사람들인 한 이것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분리하는 형식논리로, 보안경찰도 코웃음을 칠만하다.

    그는 회합-통신죄가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면서도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회합-통신 과정에서 이뤄진 ‘간첩 행위’라는 것은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것은 공안당국이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공안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단정적 전제”라며, 오히려 공안기관의 “공정한 수사가 진행되도록 요구”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의적 처벌의 주체가 동시에 공정한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서 좌파들의 활동을 ‘이적 행위’, ‘찬양-고무’, ‘간첩 행위’라며 탄압하는 악법이다. 통혁당, 인혁당, 중부지역당, 영남위원회 등 수많은 공안 사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와 꼭 마찬가지로 억압적이고 착취적이라고 주장한 국제사회주의자들(IS)조차 혁명적 주장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며 혹심한 탄압을 받았다. 따라서 ‘북한을 이롭게 한 행위’를 방어할 수 없다는 논리로는 국가보안법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다.

    이번 ‘일심회’ 사건도 우리 운동의 인사들이 ‘북한 공작원’을 접촉했다는 혐의에 근거하고 있지만, 공격의 진정한 표적은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민중 운동 전체다. 이를 노리고 국정원과 검찰은 별 것도 아닌 정보를 “국가 기밀”이라며 간첩죄를 적용했다.

    사실, 구형구 동지의 주장은 공안 당국의 ‘간첩’ 행위 규정에 동의해 탄압을 당연시한 ‘자율과 연대’(민주노동당 내 사민주의를 지지하는 정파-편집자)의 기회주의를 뒤늦게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민주노동당 탈당하고 보안경찰에 자수하라는 얘기

    둘째, 그는 북한 정권이 “대안 사회가 될 수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에 북한과 내통하는 행위는 “반동적”이며 “해당 행위”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체주의자들은) “정치적 청산과 더불어 필요하다면 사법적 정리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보안경찰에 자수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런 요구야말로 정치-사상의 자유를 지배자들이 제한하려는 것에 사실상 동조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해당적 태도’다. 민주노동당은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의 분위기 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다.

    또한,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이 북한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운동의 방편으로 채택했다 해서 그들이 북한 지배자들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저항 이데올로기로 채택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중국의 천안문 항쟁 때 학생들이 서구식 민주주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이나, 광주항쟁 때 시민들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개입이 군부 독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그렇다.

    북한 관료 집단은 민중을 억압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지만,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은 피착취-피억압 계급 운동의 일부다.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이 국가보안법의 제물이 되는 것은 그들이 ‘간첩’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남한 주체주의자들이 보안법 제물이 되는 이유

    정치 노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들은 한미FTA 반대 운동, APEC 반대 운동, 여중생 촛불 시위 등 반제국주의 대중 운동의 헌신적이고 유기적인 일부였다. 이런 활동가들을 방어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배자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효과, 즉 전체 운동에 대한 공격을 방조하는 행위다.

    셋째, 나아가 구형구 동지는 ‘다함께’(민주노동당 내부 정파 가운데 하나-편집자)와 당내 주체주의자가 당 밖의 당과 “수직적” “지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당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라며 “당의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주성”은 무엇보다 지배자들의 압력을 거부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북한 핵실험 이후 우익의 데마고그와 후진 대중의 압력에 굴종해 미국의 대북 압박보다 북한 핵실험 규탄을 먼저 내세웠던 ‘전진’의 입장이야말로 ‘자주’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당내 주체주의자들이 북한 관료의 단순한 전달 벨트인 것도 아니다. 설령 당내 주체주의자들이 북한의 ‘지도’를 받는다 해서 그것이 곧 당의 공식 활동으로 채택되는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남한 운동의 상황, 정치 지형, 당의 사회적-이데올로기적 기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내 주체주의자들의 실천은 1백% 스탈린주의라기보다는 많은 경우 (‘전진’의 최근 행보와 비슷하게) 개량주의적인 것이다. 가령 북핵 문제와 ‘일심회’ 사건에 대한 주체주의자들의 태도는 개인적인 것과 공개적인 것이 달랐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태도는 본질적으로 오히려 ‘전진’과 비슷했다.

    당내 주체주의자들 <전진>처럼 ‘개량주의적’

    구형구 동지는 또, 마치 ‘다함께’가 ‘해외 좌파’의 일방적-수직적 지도를 받는 것처럼 암시하면서 ‘다함께’의 국제주의적 활동을 왜곡한다. 예컨대 그는 지난 중앙위에서 ‘다함께’가 제출한 북핵 관련 수정 결의안에 ‘중동 문제’가 거론된 것을 트집잡는다. “한국의 노동계급과 민중에게는 현 시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진’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한반도 평화와 미국의 중동 전쟁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제적 시각의 결여는 문제다.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민주노동당의 자주성’을 해치는 “해외 좌파”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제국주의 “사슬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제국주의론적 인식의 결여를 보여 준다.

    그가 거부한다는 스탈린주의적 ‘지도’ 개념과 달리 각국의 운동이 서로 경험을 “보고하고” “지도받(는)” 것은 자랑스러운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전통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한 자본주의 시대에 국제적 전략과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백 년 전통의 국제 운동에서 배우고 그것을 민주노동당 안팎의 운동에서 공공연하게 토론하고 확산하는 것을 음해하려는 구형구 동지의 태도야말로 당 발전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다.

    국제주의의 부정

    사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전진’의 주요 이론가들도 국제 좌파 정당의 ‘지도’를 받아 왔다. ‘전진’은 브라질 노동자당의 참여예산제, 스코틀랜드사회당의 경험을 당의 모델로 제시해 오지 않았던가? 또, 지난 서울시장 선거 전략도 “런던 같아지기”를 표방하며 켄 리빙스턴의 <런던 플랜>에 기초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지도를 받는’ 게 ‘전진’의 문제다. 최근 ‘전진’이 지지하는 ‘사회연대전략’은 서유럽 사회민주당들의 우경화와 후퇴의 과정에서 취했던 태도와 비슷하다.

    이처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상호 “보고”와 “지도”의 형식보다는 그 내용이다. 진정한 좌파라면 ‘당의 자주성’을 국제 교류 일반과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노동계급 전체의 관점에서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판단한다.

    요컨대, 구형구 동지가 ‘당 밖의 당에게 지도를 받는 정파’ 운운한 것은 사실 자신의 기회주의와 개량주의를 관료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 ‘다함께’는 이런 입장이 ‘전진’의 공식 입장이 아니길 바란다.

     

    PS : 독자게시판에 <전진> 구형구 독자의 글을 올렸습니다. 아래를 링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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